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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24. 2021

익숙한 곳의 두려움

싱가포르에서 2년 동안의 여름은 아주 긴 휴가 같은 시간이었다. 휴가라고 생각하면 마냥 쉬는 시간이었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쁜 일상이었다. 돌아보면 24 시간이 모자라게 빠듯하게 돌아가던 너무나 바쁜 하루였다. 어떻게 남아 있는 잔상과 기억들은 아름다웠던 여름휴가 같은 시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워킹맘의 하루는 싱가포르에서도 미국에서도 너무나 빠듯했지만, 싱가포르에서 시간은 빡빡했던 일상으로부터의 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나를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자유롭게 내 멋대로 살아가 볼 수 있던 시간들. 반복되는 것 같지만 같지 않은 매일 안에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을 다르게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이 바뀌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에 돌아와서 시차 적응뿐만 아니라 날씨 적응도 다시 해야 하는 시기였을까?  돌아온 미국의 여름 공기는 많이 달랐다.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덥고 습한 8월의 여름 공기였다. 너무 춥다. 8월의 여름이 춥다고 느끼는 나 싱가포르의 여름 날씨에 익숙해져 버렸다. 싱가포르로 이사를 가서 시간이 지나서 가을이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안 추워지는 것도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추워지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  평생을 그렇게 당연시하면 알고 살아온 그것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익숙하다고 해서,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어서 그게 맞는 건 아니다. 2년 동안 여름만 즐기고 오니, 당연 한건 없나 보다.  미국의 8월은 이미 호주의 겨울 날씨이고, 난 여름, 가을, 겨울 사이에서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새로운 근육이 생기고, 새로운 일상이 만들어지는 지금, 나는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 감사하다. 다시 여름이 계속되는 날들이 아닌, 다시 단풍이 지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 익숙해져야 하는가 보다.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싱가포르에 다녀오기 전 자주 갔던 공원에 도착했다. 그렇게 자주 오던 공원인데도, 왠지 모르게 낯설다. 두렵다. 싱가포르에서 어두운 아침에 달려 나가면서 하지 않았던 것이 안전에 대한 걱정이었다.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미국에 돌아와서 느낄 줄이야. 아는 이곳, 자주 왔던 곳에서 느끼는 낯섦과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몰라서 두려운지 모를 때가 있고,  정확히 알지 못해서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곳이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평화로운 고개, Peace Valley Park 

회색 하늘이었다. 구름 들만 나와있고, 아직 아무도 없어서,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던 아침이었다. 혼자서 천천히 뛰다 보니, 하나둘씩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걷고, 뛰고, 자전거 타고, 혼자 또는 여럿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눈인사, 손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눈이 마주 치니 서로 반가운 듯 웃는다. 말이 딱히 필요 없어서 더 좋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우린 어떤 인연이어서 이렇게 만나 지는 걸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거룩한 아침이었다. 처음으로 호수 한 바퀴를 달려서 돌았다. 걸었을 때는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1시간 동안 달려서 토요일 아침에 10 km  달리기 성공했다. 6.3 miles = 10.1 km 9'59" 1:02:55


8월 매일 천천히 꾸준히 움직였다.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해 보려고, 매일 달리다 보니 100마일에 매일 조금씩 가까워졌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해봐야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비록 결과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성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 노력과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성공할 가능성, 실패할 가능성,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렇기에 해보지 않은 것을 도전해봐야 한다. 시도하지 않은 도전의 성공 확률은 0 이기에 내가 그 무모한 도전을 할 때, 성공 가능성 이 실패할 가능성보다 높아진다. 


2019년 의 여름이 지나가는 8월 난생처음 한 번도 달려 보지 않은 긴 거리를 달려보기로 했다.  하프 마라톤 13.1 마일 26 킬로를 뛰어야 하는 거리이다.   It is always seems impossible until it's done. -Nelson Mandela 넬슨 만델라의 유명한 명언처럼 무언가를 해보기 전까진 뭐든 불가능해 보인다. 단순하게 결정했다. 달려 보기로 했다. 달려 보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되겠지... 11월 첫째 주, 프린스턴에서 내 인생 첫 하프 마라톤을 달릴 것이다.  2019년 여름 2 년간의 싱가포르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아보려고,  8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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