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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24. 2021

1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2019년 1월, 벌써부터 숨이 차다. 여름이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계획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야만 하는 2019년이다. 후아. 벌써부터 부담스럽다. 어깨가 뻑뻑하게 잔뜩 들어간 힘을 좀 빼고 2019년을 열어 보자고 시작했던 일 10 킬로미터를 뛰어 보자! 

 

2017년 여름부터 일 년 반 동안 매일 아침마다 꾸준히 달리기를 했지만, 10km를 쉬지 않고 뛸 수 있을까? 

이 말도 안 되는 호기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혼자 뛰기는 심심하니까. 친구들한테 같이 뛰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km 트레이닝할 건데 같이 할래?  나에게 돌아오는 한결같은 질문, 너 10km 뛰어 봤어? 한결같은 나의 대답... 아니... 안 해봤으니까 한다고 하는 거지... 그리고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들은 "내가 열심히 응원해 줄게, 그런데 달리기는 너 혼자 열심히 해"라고 웃으며 말해준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해본다. 내가 믿고 실천하는 기회 가능성 공식이다. 

 

You never know what you can do until you try, and very few try unless they have to.C.S Lewis 

 

싱가포르에서 만난 귀한 친구 Adeline 이 응답했다.  "나 신청했어..." "응? 벌써? 진짜 신청했다고? "나도 지금 신청할게!"  그렇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첫 장거리 레이스 10km를 같이 달려 보기로 했다.

 

2019년 1월 10일 목요일 일기장 페이지에 별표와 적혀있는 나의 문장이다. “Adeline 이랑 Marina Run 2019 Registration. Feb 23, 2019. Gardens by the Bay East" 1 마일을 10분 18초에 뛰었다고 자랑스럽게 적어 놨다. 기록을 해놓아서 다행이다. (나의 퍼스널 베스트였나?) 기록은 기억을 가능하게 한다.

 

첫 레이스까지는 6주 남았다. 1월에도 반팔 입고 달릴 수 있는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 시간 여유가 있는 주말에는 보타닉 가든을 달렸다. 1월에 베이징 출장은 겨울을 실감시켜주었고 다행히도 호텔에서 달릴 수 있었다. 출장을 가서도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하러 간다. 하루도 당연한 건 없는데, 또 내 하루가 일상이 되어서 당연하기를 바란다. 워킹맘의 마음은 무겁다. 아무리 자주 출장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에 달리면서 마음을 다시 잡는다. 오늘 할 일을 정리하며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일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한다.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싱가포르 창이 (Changi) 공항에서 미국 (Newark) 논스톱 19시간 비행 후 도착한 미국 동부의 1월. 잠시 잊고 추운 겨울의 1월.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낯섦이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비몽 사몽 보고 싶었던 사촌언니 집으로 간다. 정신이 없어도 옷을 갈아 입고 달리러 간다. 아침이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달리고 본다. 시차 적응을 그렇게 한다. 미국 출장 내내 아침은 달리기로 시작하며 시차를 무시해 본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긴 출장이 끝나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분명 내가 20년을 넘게 살았다 미국에 있다가 왔는데, 비행기가 싱가포르 공항 활주로에 닿자 마음이 놓인다. 나 집에 왔다. 1월이 따뜻한 싱가포르 일상의 그리웠다. 이렇게 1월의 트레이닝이 마무리되는듯했다. 싱가포르, 중국, 미국 언제 어디서나 아침이면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매일 아침은 달리기로 시작되었다. 장거리 달리기가 뭔지 잘 알지도 모르면서 달려 보기로 한 10,000m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의 아침 달리기가 나를 완전히 지켜 주고 있었다. 


2019년 2월 5일 싱가포르에서도 큰 명절인 Chinese New Year 연휴이다. 황금 돼지띠 (Year of Pig) 해라고 한다.  쉬는 날이니 아침에 만나서 뛰기로 했다. 이번엔 보타닉 가든 (Botanic Garden)에서 6:30 AM에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없긴 했나 보다. MRT 패스를 놓고 나와서 왔다 갔다 하던 아침. 뉴튼에서 오차드 (Orchard Rd)까지 한 정거장 뛰어갈까 하다가 집에 가서 패스를 가지고 나온다. 보타닉 가든 Tangling Gate까지 1마일 거리, 뛰어갔다. 보타닉 가든 안을 달리고, 좋아하지 않는 근력운동 하기. 싫어하지만 먹어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꾸역꾸역 미루다가, 결국 먹는 것처럼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근력 운동을 해본다. 역시 새로운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고 하기 싫어하니 잘못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해야 한다. 달리기를 잘하려면, 달리기만 연습해서는 달리기가 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운동을 골고루 해줘야 한다.  Adeline이 숙제를 내줬다. 프랭크 20초 버텨 보자. 온몸이 부들부들 20초가 너무나 길다. 어른이 되어도 먹기 싫은 야채같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살 수 없다. 좋은 어른이 되려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균형 있게 처리하는 법도 알아가야 한다고... 

 

2019년 2월 21일 레이스 당일 아침 8:00 AM.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도 아프고, 목도 좀 아픈 것 같고, 어젯밤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잘 못 잤다. 며칠 전같이 뛰기로 했던 친구 Adeline 이 준비가 덜 된 거 같다고 이번엔 미안하지만 혼자 뛰라는 문자가 왔다. 10km라는 거리는 둘 다 처음 뛰어보는 장거리이기에 같이 뛰고 싶지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있을 부상 때문에 두 번 물어보지 못했다. 같이 트레이닝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같이 달리지 않더라도 와서 응원해달라고 했다. 웃으면서 당연하다며 레이스 장소까지 대려다 주겠다는 그녀, 고마워 내 친구!  그렇게 혼자 달리나 싶었는데, 오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같이 달려 보겠다고... 그래! 같이 달리자. 우리는 레이스가 시작되는 Bay East Garden으로 함께 향했다. 


6:30 PM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레이스를 뛰려고 출발점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나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멀리서 보이는 마리나 베이 샌드 (Marina Bay Sands) 호텔. 이 와중에 더 멋있어 보인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레이스를 뛰기 위해 나왔을 것이다. 드디어 레이스는 시작됐고, 페이스가 적힌 풍선을 달고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페이스 메이커 뒤를 따라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저번 주말부터 트레이닝을 해왔던 곳이다.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 달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무사히 완주하기만을 기도하면서 뛰었다. 가장 나다운 아름다운 페이스를 지켜가며 달리자고... 


내 페이스대로 오래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꿈이 이루어진다. 너무 감사한 무사 완주 순간이었다. 1월 10일 나의 무모한 도전을 기꺼이 함께 해주었던 친구 Adeline과 신이 나서 우리의 영광적인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출장이 없는 주말이면, 보타닉 가든으로, 마리나 베이로 싱가포르 아름다운 곳들을 같이 달리며 트레이닝을 했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했다. If you want to go fast, we go alone. If we want to go far, we go together. - African Proverbs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먼 길을 머나먼 싱가포르에 와서 만난 친구랑 같이 달렸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10 km ; 59분 21초

첫 레이스, 최고 신기록일 수밖에 없다. 2월에 싱가포르에서 반팔을 입고 달린 것도, 10 km를 쉬지 않고 달린 것도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꿈은 이루어진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레이스 여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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