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만 보이는 것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삼키어지지 않는 문장이다. 상처가 난 자존심을 다시 보듬어 주고, 이 결과에 대한 나의 선택과 태도를 들여다본다. 글쓰기,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가? 이미 꽉 차있는 나의 하루. 글쓰기 계속해야 하는 거냐고, 솔직히 물어본다.
어렸을 적 꿈이라고 말한다. 약사가 되지 않았다면,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왕성한 호기심 덕분에 글을 읽고, 소중한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하고, 그 매일의 일기가 모여 페이지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릴 적 꿈이라면, 이루어 보자. 다시 신청을 해보자. 다시 신청을 한다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이미 블로그, 브런치 플랫폼에서 글을 잘 쓰고 있는 멘토에게 조언을 구했다. 성심성의껏 나를 코칭해 주는 그 시간과 마음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그 코칭을 빨리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글쓰기,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쓰면 쓸수록 어려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할게 많았다. 일단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글을 읽고, 온통 글을 쓰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어같이 어려운 한국말로 글쓰기. 20년 동안 미국에 살았다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로 문법, 철자, 띄어쓰기, 맞춤법들이 쉽지 않다. 그래도, 매일 썼다. 많이 쓰다 보면, 잘 써지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매일 썼다. 그리고, 매일 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힘을 빼는 연습.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독자들의 마음에 전달되는 글을 써보자.
지금이 좋다.. 즐겁고 행복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9월 12일. 브런치 작가 신청을 다시 해보았다. 작가님이 궁금해요라는 질문을 정성스럽게 답했다.
나, 어떤 작가이기 전에 어떤 사람으로 인가? 생각해 볼 수 있던 기회였다.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8월 1일부터 하루 한 편의 글을 올리면서,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 매일매일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여러 가지 토픽을 글을 써보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던 기회였다. 그 매일의 글들이 모여서, 내가 어떤 글을 발행해야 할지 생각의 길이 들어설 수 있던 시간이었다. 블로그에 써놓았던 글들 중에서, 내가 애지 중지해서 썼던 글, 그리고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글들을 골라서, 작가의 서랍의 넣어 두었다.
9월 15일. 변함없는 새벽 일과로 아침을 열었다. 오늘은 그린 티가 아닌 마누카 허니가 들어간 달달한 꿀물로 시작을 했다. 가을이 성큼 왔는지, 온도가 떨어져 있던 아침이었다. 이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브런치에서 도착한 이메일.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아침, 혼자서 달달한 꿀물을 마시며 그 행복을 만끽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었던 작가 선배님한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혼자 오래 즐거워했다.
안타깝게도 하고 시작했던 문장의 끝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고 자꾸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안타까운 상황들을,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던 이유인 것 같다.
만약 지금 아니야, 너는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의 선택은 내가 정할 수 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마지막 강의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장벽에 비유했다.
The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y are
not there to keep us out. The brick walls are there to give us a chance to show how badly we want
something. Because the brick walls are there to
stop the people who don't want it badly enough. They are there to stop the other people.
The Last Lecture by Randy Paush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장벽은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장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 기회를 보여 주기 위해 존재한다. 장벽은 절실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마지막 강의 by 랜디 포시
장벽은 나를 멈추게 하려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다시 알려주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내가 다시 그 선택의 기회 앞에 섰을 때, 지금 내가 아니면 안 되게 만드는 선택과 행동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장벽을 같이 부서뜨리고 나갈 수 있는 멘토와 커뮤니티의 지지와 응원도 필요할 테니, 좋은 사람들을 잘 섬기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많은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것이다. 또 많은 도전을 할 테니. 성공이 커지는 만큼 비례하여 커지는 도전들과 따라오는 실패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한다.
잠시의 숨 고르기를 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꿔 오던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내 어릴 적 꿈 앞에 한 발짝 다가가는 기분, 이 가을날 이렇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