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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01. 2020

천천히 꾸준한 연습이 최선의 준비이다.

첫 10m 레이스 : 2019년 2월의 싱가포르  

2019년 2월 2일. 아침 6시 간신히 일어났다. 집 앞 뉴튼 (Newton) 역에서 블루라인을 타고 다섯 정거장 베이프런트 (Bayfront) 역에서 내려서 Adeline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투벅 투벅 걸어가며 생각한다. 성급했어... 왜? 왜 한다고 했을까? 준비가 너무 안돼서 가기 싫었는데, 되는대로 준비해서 나갔다. 


Newton MRT stop © SEINA

아직 어두운 아침이다.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동안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아침의 5분은 정말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이렇게 혼자 보기 아까운 아침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봐도 봐도 신기하고 멋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다. 지금 이 순간을 가슴속 행복 창고에 저장해 본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SEINA
6:53 AM © SEINA 

혼자서 나와서 뛰려고 했으면 피곤하니까, 힘드니까, 온갖 핑계를 대어서 나오지 않았을 토요일 아침이다. 같이 뛰기로 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같이 뛴다. 나름 아침형 인간이 나와 다르게 일찍 일어나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는 친구가 아침에 나랑 같이 달려주려고 나왔다. 나에게 주말 시간을 내어주는 너, 너는 사랑이야. 내가 더 잘할게, 나는 인복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 꼭 이런 은인들이 나를 이끌어 준다. 이 시간을 남겨보자. 내 머릿속 기억이 다해 버릴지라도, 카메라로 사진으로 담아두고, 일기장에 꾹꾹 눌러써둔다. 마음속에 새기듯 그럿게 기록을 해둔다. 같이 달린 거리, 그 장소, 그 느낌 고스란히 소환할 수 있게... 

With Adeline © SEINA


2019년 2월 5일 싱가포르에서도 큰 명절인 Chinese New Year 연휴이다. 황금 돼지띠 (Year of Pig) 해라고 한다.  쉬는 날이니 아침에 만나서 뛰기로 했다. 이번엔 보타닉 가든 (Botanic Garden)에서 6:30 AM에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없긴 했나 보다. MRT 패스를 놓고 나와서 왔다 갔다 하던 아침. 뉴튼에서 오차드 (Orchard Rd)까지 한 정거장 뛰어갈까 하다가 집에 가서 패스를 가지고 나온다. 보타닉 가든 Tangling Gate까지 1마일 거리, 뛰어갔다. 보타닉 가든 안을 달리고, 내가 싫어하는 근력운동 하기. 싫어하지만 먹어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꾸역꾸역 미루다가, 결국 먹는 것처럼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근력 운동을 해본다. 역시 새로운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고 하기 싫어하니 잘해지기가 더디다. 하지만 해야 한다. 달리기 를 잘하려면, 달리기만 연습해서는 달리가 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운동을 골고루 해줘야 한다.  Adeline이 숙제를 내줬다. 프랭크 20초 버텨 보자. 온몸이 부들부들 20초가 너무나 길다. 어른이 되어도 먹기 싫은 야채같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살 수 없다고. 좋은 어른이 되려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균형 있게 처리하는 법도 알아가야 한다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6:37 AM Tanglin Gate, Botanic Garden 보타닉 가든 탱그린 게이트 © SEINA 

Adeline 같이 달리고 꿀맛인 커피 마시면서, 우리 언제부터 친해졌지? 생각해 본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부터였을 거야. 그래 우리 회사에서 같이 파티를 기획하다가 만났었다. 좋은 인연은 그렇게 우연하게 시작된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을 때 그렇게 이어진다. 

2018년 Chinese New Year © SEINA 

2019년 2월 9일. 눈을 떠보니 5:30 AM이다. 밖은 아직 어둡지만, 준비하고 MBS (Marina Bay Sands)로 뛰러 나간다.  저번 주에 Adeline 이랑 가봤던  길이어서 인지 혼자 나온 어두운 새벽이지만 발걸음이 가볍다. 

뭐든 처음이 해보는 것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하는 건 쉬운 것 같다. 거의 5km 3.2 마일  36 분 59초 에 달려 본다. 레이스 반 정도의 거리이다. 밖에서 달리는 게 익숙해진다. 

2020년 2월 9일 
점점 멀리 달려가 본다. 

2월 매일 아침 달린다. 주중에는 집 근처에서 달리고, 주말은 멀리 달려 나가 본다. 2월에 매일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밖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2019년 2월 16일 일어나 보니 7AM. 오차드에서 보타닉 가든까지 뛰어간다. 너무 예쁘게 잘 정리 정돈되어있는 도시 안에서 내가 숨 쉬는 곳, 보타닉 가든. 요즘 더 자꾸 사랑에 빠진다. 콘크리트 속 정글 같은 아름다운 도시 싱가포르. 구석구석 정이 든다. 추워야 하는 게 당연한 2월이다. 반팔 입고 달릴 수 있는 싱가포르의 2월에 감사한다.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한 오늘 이 지금을 살고 있는 싱가포르 너무 좋다. 시간이 흘러 돌아본다면 너무 그리울 이 시간 지금 마음껏 누려 본다. 

 

Singapore Botanic Garden 보타닉 가든 © SEINA 

5pm 오늘 오후 레이스 이름표 픽업 가야 하는 날이다.  Adeline 이랑 만나서 레이스 참가할 준비물 픽업을 하고 나니, 나 정말 뛰는구나.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든다. 운동화에 트랙커를 달고, 내 번호표를 한참 바라본다. 


내 첫 10 km 레이스  이름표  © SEINA


2019년 2월 17일. 아침에 일어나니 5AM이다. 뛰러 나가야 하는데, MRT 가 6AM부터 운행한다고 한다. 

이 새벽부터 BayFront로 향한다. 오늘 달려본 거리 ~ 8km (5마일)이다. 오늘 회색 바지를 입었는데, 민망하게 땀으로 범벅이다. 다음 주 레이스 때는 꼭 까만 바지를 입고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연습과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천천히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했다. 이제 다음 주면 내 인생 첫 10 킬로미터 레이스이다. 무사히 건강히 다치지 않고 마치길 기도해 본다. 


길게 달려보았다.© SE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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