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엄마미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작품으로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라고 한다. 좋아하는 배우 공유와 정유미가 나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보지 않았다.
81년생 이세나
아마도 82년생 김지영과 많이 다를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미국에서 했다. 그렇게 평탄하고 별 탈 없이 지나가는듯했다. 만 30살이 되던 해 첫아기가 우리 가정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행복 가득할 것만 한 그해 나는 성장통을 제대로 맞았다.
그 보물 1호를 배에 품고 일을 하며 직장에서 첫 승진을 했다. 유럽 마켓에 C형 감염 치료제 허가 후 심사 평가를 받는 일이었다. 약학 경제학과 성과 연구로 정신없던 그날들 유럽으로 출장을 가고 회사에서는 신이 나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정신 줄 놓고 입덧을 하며 매일 하루하루 바쁘게 행복하게 그렇게 보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에 보물 1호를 맞이할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과분한 사랑이 넘치는 성대한 베이비 샤워를 받았고, 지금 이 행복을 기억하자며 임신 사진도 남겼다. 뭐가 더 부족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족한 게 없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사랑과 은혜는 과분했고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못했던 산후 우울증.
2011년 12월
전날 밤 양수가 터져 병원에 온 이후 20시간이 지나간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다. 내 몸과 연결되어 있는 모니터가 요란하게 울린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들어온다. 그렇게 나는 수술방으로 급히 옮겨지고 응급 마취 후 제왕절개가 시작되었다. 추워서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천장이다. 수술 회복실이었다. 배를 만져 보니, 아기가 없다.
" Where is my baby?" "Is she alive?" "Is she healthy?"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살아 있어요? 건강한가요? 절박한 질문들은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답이 없다. 두려움 속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침묵을 깨고, 간호사가 옆에 와서 말해준다. 아기가 지금 신생아 중환자실 (Neonatal Intensive Care Unit)에 있다고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부르러 갔다. 의사 선생님이 아프가 점수에 대해 얘기하신다. 아프가 점수 (A.P.G.A.R score) 너무 나도 잘 안다. 약대 마지막 학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로테이션을 했다. 5가지 항목 (외모와 피부색, 맥박수, 반사 흥분도, 활동성, 호흡)으로 신생아의 상태를 평가하는 점수이다. 출생 후 1분, 5분 후에 측정한다. 건강한 신생아는 5가지 항목 전체 합의 10점이다. 우리 아기의 아프가 점수가 1점이었다고 한다. 출생 시 호흡곤란증 으로 울지 않았고 전신이 청색증이었고 심폐소생술 후 지금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다고 얼마나 산소공급이 중단되었을지 모르니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서 치료를 받기를 권유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 잠깐 스쳐 지나가듯 그렇게 우리 아기를 처음 만났다. 감사하다. 지금 그 아기가 만 8살 건강한 3학년이다.
2012년 가을, 뒤가 뚫려있는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응급실에 앉아 있는 나를 만났다.
약사라면 알지 않아? 산후 우울증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약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모르고 있는 거 아니었잖아. 우울증, 산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던 그 생각.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시도를 했고, 실패를 했고, 응급실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났고 그렇게 치료와 치유가 시작되었다. 감사하다. 지금 그 아이가 만 38살 건강한 81년생 세나이다.
아직 82년생 김지영을 만나지 않은 이유이다.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난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아픈지. 지금도 아픈 사람들이 자꾸 보인다. 괜찮아라는 말도 조심스럽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 않은 날들이 괜찮아지기까지 아주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약사도 아플 수 있고, 치료가 필요했었다. 약물치료에서 시작으로, 치유는 계속되었다. 그 치유는 나랑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눌 때 완성되어 갔다. 직장에서 나를 끝까지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리더들이 있다.
고맙다 그래서 나는 그런 리더가 되려고 한다. 내가 배운 회복 탄력성을 나누면서 그렇게 쓰였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Resilience : 내가 생각하는 회복탄력성
내가 생각하는 회복 탄력성은 힘든 것을 견뎌내는 것만이 강한 게 아니라, 힘이 들면 힘이 들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오늘만 산다. 그리고 나의 하루를 마주한다. 매일 감사를 하고, 건강한 선택을 한다. Rain or Shine, I show up. 오늘을 온전하게 건강하게 살아내는 것이 나에겐 성공적인 하루이다. 빛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걸어가는 날들. 내 손을 잡아 주던 빛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 한마디의 감사가, 그 감사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오늘 꼭 필요한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걸어가던 나에게 왔던 빛처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매일 감사를 하니 감사할 일들이 매일 생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 82년생 김지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의 여리고 약했던 세나는 어느새 2020년 온전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