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전 같을 순 없어요

라는 말의 의미

by 세상 사람


“안녕하세요 김세인 님, 00 내과입니다.”


금요일 저녁, 문자가 하나 왔다. 시월 말 받은 위내시경 검사 결과였다. 여기에 구체적인 진단명을 쓰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반성이 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소화가 힘들었는지, 툭하면 경련이 왔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릴 때부터 위장이 민감했다. 유제품이나 해산물, 생과일 등을 먹으면 잘 탈이 나는 것은 물론, 음식 외적인 자극에도 취약해서 조금만 스트레스받아도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켰다. 그런 위와 장을 가지고서 어릴 때는 웬 술을 그리 마셔댔는지.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말이다. 예전처럼 술을 마시지 않은 지는 5년 정도 됐지만, 커피는 매일 챙겨 마셨다. 쌀보다 밀가루를 좋아했고, 초콜릿, 과자 같은 가공식품 역시 즐겨 먹었다.


만성위염에 시달리면서도 식습관을 뜯어고칠 엄두는 못 냈다. 그 좋던 술을 끊다시피 했으니 커피와 탄산음료는 괜찮겠지. 가공식품도 이 정도면 많이 안 먹는 편인걸. 맵고 기름진 음식도 가끔 한 번인데 어때. 그러면서 아프면 아픈 대로 적응하며 지냈다. 원래도 양이 많지는 않았는데, 자꾸 아프다 보니 점점 소식좌가 되어 갔다.


적게 먹는데도 아프다며 억울해만 했다. 무얼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바꿀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 먹고 살았나 돌이켜 보니 위장에게 미안했다. 가장 먼저, 식사가 불규칙적일 때가 많았다. 근래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는 챙긴다고 했지만, 뭔가에 열중하면 쉽게 밥때를 놓쳤다. 언제나 먹는 게 뒷순위로 밀렸다. 그러다 밤늦게 허기져서 주섬주섬 뭔가를 먹기도 하고, 채 소화가 덜 된 채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OTT 보면서 음식을 먹을 때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킨다는 점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다. 자각하고 나니까 모든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은 듯도 하다. 위 점막이 약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씹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운동량도 부족했다. 식사 직후 소파에서 쉬는 버릇도 소화에 안 좋았을 거고, 평소 활동량 역시 적어서 여러모로 악순환이 반복됐을 것이다.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척하면서 온몸으로는 실행하지 않았다. 필요성조차 체감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노력하는데 왜 또 아프지?’ 같은 질문을 반복했는데, 어제의 나에게 냉정하게 말해 주고 싶다. 아니, 노력하지 않았어,라고.


앞으로 완전히 밀가루 면을 끊을 수 있느냐, 바삭바삭한 스낵을 멀리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다그치면 더 먹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당분간’이라는 기한을 두고 식단 제한을 시작했다. 최소 한 달. 자극이 될만한 음식은 식단에서 제외해 보려고 한다. 특히 매운 음식과 튀긴 음식, 밀가루, 유제품, 카페인 음료, 탄산음료 등.


결심 이후 개최한 첫 번째 집밥 살롱 메뉴는 찐 채소와 삶은 달걀.


호박고구마와 양배추, 당근을 썰어서 찌고, 달걀은 부드럽게 반숙으로 삶았다. 간은 거의 하지 않았다. 큼직한 볼에 알록달록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담아 손님에게 내주며, 급하게 말고 한 시간 동안 천천히 꼭꼭 씹어 드시라 당부했다.


단골은 한 손으로 볼을 감싸고 포크로 가만히 고구마를 으깨며 말한다.


지난번 내시경 검사 날,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의사 면담에서 들은 말이 떠올라요. “이제 예전 같을 순 없어요.”라고 했거든요. 이별할 것들이 참 많네요, 몸도 마음도.


Seine



사진은 집밥살롱 단골 위 건강 회복기원 첫 끼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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