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by 세인


토요일 저녁. 외출 후 오랜만에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2,3시간가량 생겼다. 뭘 할까 그냥 집엘 갈까 하다가 서점에 들러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 한동안 읽고 싶었던 책, 새해에 읽어야 할 것 같은 자기 계발 서적을 몇 권을 집었다. 서점 안을 둘러보다 운 좋게 소파 귀퉁이에 비어있는 자리를 잡았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 기세로 당장이라도 집중해서 책에 달려들 것 같았지만... 카톡 알림에 10분 정도를 허비하다 창을 닫는데, 아이폰의 사진 어플에 나의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유일한 한 사람('글쓰기 멘토님'이라고 칭하겠다)이 나를 노려본다(?!) 겸사겸사 안부 카톡을 보냈는데.. 역시 아니나 다를까 글은 언제 쓰냐고 하신다.


사실 매일매일 글쓰기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기만 해 왔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말이다. 그러나, 벌써 연말연시도 훌쩍 지난 2월 중순이다. 오늘은 심지어 시간 여유가 있어 서점에 왔다고 했는데 더 이상 늘어놓을 핑계가 없던 찰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정말 나는 왜 매일 글쓰기를 미루는 걸까? 너무 잘 쓰고 싶어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글을 잘 쓸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다.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조차 인지 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미루고 미룬 것뿐이란 결론에 순식간에 이르렀다. 멘토님은 나의 브런치 작가 승인을 가장 기뻐해주던 분이기에, 한동안 새 글이 올라오지 않으니, 아마도 한참을 벼르다 겨우 꺼낸 얘기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 당장. 쓸게요.' 하고, 서둘러 골라놓은 책들을 정리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나는 글을 좋아한다. 활자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글을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글자체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곤 한다. (한글은 또 보기만 해도 얼마나 예쁜가)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 글을 접하지 않으면 하루가 그냥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드는 날도 꽤나 있다. 글 읽기를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더 좋아한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한 가지 주제로 원고지 글쓰기가 숙제였던 5학년 1년간, 난 많은 글을 썼고 그 숙제가 그다지 싫지 않은 것은 물론 즐기기까지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쓰던 일기장도 여러 권 집에 쌓여있다. N년째 올해의 목표가 글쓰기를 완성하고, 그 글을 책으로 출판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할까.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틀림없이 글을 쓰고 싶은 데, 하루하루 일상에 치이다 보면 그냥 훅, 이런 간절한 마음이 세상에 없던 욕망이 되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처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렇게 하루, 하루, 또 하루가 지나면 문득 한 달이, 두 달이 지나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 오늘의 결론. 늦은 감이 있지만 새해 다짐스러운 걸 해본다. 너무 잘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안 쓰고 싶은 것도 아니니 그냥 정말 써버리자. 25년 2월 15일 오늘부터 일주일에 하나씩은, 두 개씩은 나의 생각을 남겨보자. 그런 작은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던, 닿지 않던,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행동일 테니.


별생각 없이 집어든 자기 계발서.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것만 같고, 이 책을 읽는 시간에 그냥 그 '행동'을 해버리면 될 것 같다. 그래. 그냥 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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