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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인 Nov 06. 2024

잠 못 드는 밤, 이야기

2:56 am 

 평소 오후 시간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별생각 없이 회사에서 커피를 내려 천천히 퇴근할 때까지 한잔을 모두 말끔히 마셨다. 그래서일까. 평소 초저녁이면 하품이 나는 것은 물론, 머리와 베개가 접선한 뒤 10분을 못 버티는 내가, 새벽을 맞이하고도 잠을 못 들고 설치고 뒤척이고, 영상을 보다,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보내다, 결국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책을 읽었어야 잠이 왔으려나)


 세 번의 낙방(?) 끝에 어렵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아직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핑계지만 2주 전 홍콩을 4일간 다녀오고는 너무나 현업이 바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공연업이 참 좋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어떤 목적이 있어서도 아닌, 진심으로 재미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 할 일이 하나둘 늘어나 가끔은 (있지도 않은) 꼬리불이 붙어 빨리 꺼야만 것처럼 급하게 마음 졸이며 일을 해내가도 싫지가 않다. 나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소진되는 게 아니라, 나의 노력이 시간이 쌓여가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 무엇보다 '나의 노력이 공연을 보는 누군가의 행복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모든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일들을 정신없이 해내느라, 글을 써 내려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써야지, 한 번은 써야지' 하며 열흘 가까이가 지났다. 


 새벽 3시 즈음, 오래전 수도 없이, 귀에 박음질하듯 즐겨 들었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첫사랑', '새벽녘' 등을 한곡씩 듣다 보니, 잠이 오기는커녕, 아마도 내일 아침 (오글거려) 바로 지우고 싶을 새벽글을 쓰고 싶어졌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 MV의 수지


 이 노래들을 듣던 지난 20대의 나는 오늘 이런 밤을 생각이나 했을까. 시간이 흘러 내가 정말 40대가 될 거라고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그런 어르신(?)이 여전히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야들야들 이상해져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올 거란 건, 감히 생각을 못했다. 


 40대가 된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새지 않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내가 몇 살인지 알아내려면 한참을 세어봐야 하는 걸 보면. 그즈음에 멈춰버린 걸까. 아님 멈추고 싶었던 걸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오늘 이 현재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라는 것. 20대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떤 보상이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한없이 쏟아도 아깝지 않은 내 일이 있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 갖은 정성을 다해주는 마음 따스한 이들이 내 곁에 머물러 주고, 지난 시간들 동안 쌓아온 추억들이 있는, 무엇보다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 조금씩 나만의 답들이 생겨나가는 40대의 이 즈음을, 20대의 시절엔 알지 못했다. 


 공연업을 꿈꾸며 진로를 고민하는 20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지는 요즈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안하고 막연하기만 했던 나의 그 시절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모든 일들이 마음 같지 않았던 날들. 아무런 기회나 성공도 만족도 내겐 주어지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모든 것들이 마냥 아프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지내고, 하루하루를 견디면, '이런' 밤도 맞이한다는 걸 전해주고 싶다. 긴긴 이 밤이 서글프지 않고, 오랜만의 적막이 감사해지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밤의 공기만으로 마음속 깊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걸. 지금의 내겐 그저 예쁘기만 한 20대를 지내고 있는 그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잠 못 드는 2024.11.6 새벽에. 


PS. 오늘의 목표: 아침에 읽으면 엄청나게 오글거릴 이 글 지우지 않기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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