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탈출은 잊는 것이 아니다
꿈을 꾸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을 찾아가, 철저히 복수하는 꿈이었다.
깨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숨이 가빴다.
인간의 삶은 조각보처럼 수많은 경험이 엮여 만들어진다.
아직도 나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이었던 K군과 S군. 그들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3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
폭행은 없었지만, 일상적인 조롱과 소외, 고립. 그건 분명히 폭력이었다.
그 시절 나는 피해자였지만, 방치된 존재였다. 주변은 “애들 사이에 흔한 일”이라며 모른 척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때의 나는 작고, 무력하고, 억울했다.
졸업 후에도 오래도록 나는 분노 속에 살았다.
언젠간 반드시 되갚겠다.
그 다짐이 내 삶의 연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핍을 채우기로 했다. 도망치듯, 아니 살아남기 위해 공부했다.
자기 앞가림은 기본이라 생각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 나는 주짓수와 필라테스를 즐기며, 단단한 몸과, 더 단단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웃으며 지나칠 자신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교사가 되었다.
학급 안에 또 다른 ‘그때의 나’가 보이면 그 누구보다 먼저,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과거의 나를 경멸한다.
나는 나를 방어하지 못하던 그 시절의 나를 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가끔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복수하고 있다.
여전히 탈출 중이라는 뜻일까.
생각해본다.
진짜 탈출은 그들을 잊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의 존재조차 더는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탈출 아닐까.
나는 이제 복수심이 아닌 온전한 자유를 향해 걸어가려 한다.
내가 만들어낸 질서와 의미 속에서, 결핍을 성장으로 바꾼 나로 살아가려 한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넌 결국 너를 지켜냈어.
당신을 가장 많이 흔들었던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그 기억은 지금의 당신을 어떻게 만들었나요?
그리고 지금, 당신은 거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