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년 전만 해도 휴대폰은 주로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소통의 통구였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제는 ‘손안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기술도 함께 발전하는 법이니까요. 빠르고 편리한 세상을 손에 넣었지만, 한편으로는 잃은 것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과사용이 몇 가지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장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신체 여러 부위의 건강을 해칠 수 있지만, 오늘은 손 즉, 수부 관절질환과 관련 있는 방아쇠수지증후군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를 개원해 26년간 환자들을 진료해온 전문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20년 전에는 방아쇠수지증후군으로 진료받는 사람이 지금보다 현저히 적었습니다.
환자군을 보면
주로 손을 많이 사용하는 주부나 연주자
움켜쥐는 동작이 많은 운동(골프,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 당구, 검도, 낚시 등)을 과도하게 하거나
장시간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사람
혹은 손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업종 종사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1인 1 스마트폰 시대’와 ‘데이터 무제한 시대’, ‘5G 시대’의 도래는 엄지손가락통증 환자의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래머나 게이머 등 컴퓨터 관련 직업군을 비롯해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현대인 모두가 ‘방아쇠수지증후군의 위험군’이 된 셈이지요.
방아쇠수지증후군은 영어로 트리거 핑거(trigger finger)라고 하는데, trigger는 총의 방아쇠를 뜻합니다.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손가락 굽힘힘줄을 '굴곡건'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건'이란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힘줄을 뜻합니다. 굴곡건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5개의 도르래 인대가 있는데요, 손가락 힘줄이 지나가는 곳에 도르래 역할을 하는 도르래 막(Pulley)이 있습니다.
도르래 막은 손가락을 구부리는데 필요한 수축 근육을 감싸주는 막으로, 손가락이 손바닥으로 뻗어 나오는 지점에 터널처럼 막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근육의 수축으로 길이가 짧아진 힘줄을 손가락을 구부리는 기능으로 전환하는 도르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손가락 사용이 많을수록 도르래 막이 두꺼워지고 그 주변에 염증을 일으키게 되는데, 손바닥 쪽 도르래 부분이 두꺼워져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방아쇠수지증후군은 엄지손가락통증뿐 아니라 손바닥 통증, 특히 세 번째 손가락에서부터 손바닥까지의 지점에 불편한 느낌이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엄지손가락 통증이 있다.
-중지, 약지 손가락을 구부렸다 펼 때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손가락을 펼 때(억지로 손가락을 펴려고 하면) *딸깍 소리가 난다.
-손가락을 억지로 펴면 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손가락이 퉁겨지며 펴지기도 한다.
-손가락과 손바닥의 경계 부분의 관절에 통증이 있다.
-통증이 있는 부위에 부종과 압통이 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는 동작이 힘들다.
만일 위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방아쇠수지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참고로 위의 증상이 아침에 주로 심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시적으로 사라지기도 함)
*딸깍 소리의 정체는?
방아쇠수지증후군 환자들은 엄지손가락통증과 함께 손가락을 펼 때 '딸깍 소리(탄발음 혹은 튕기는 소리)'가 난다고 말합니다. 손가락을 억지고 펼 때 도르래 막에 눌려 있던 근육이 갑작스레 펴지면서 나는 마찰음을 환자들은 딸깍 소리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40~50대 이상에서 많이 발생했다면 최근에는 20~30대의 발생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층은 엄청난 속도의 한타(한글 타자), 영타(영어 타자) 타이핑이 생활화되어 있고, 스마트폰 타이핑은 속도 전을 능가할 만큼 손가락 사용 능력이 다른 세대보다 월등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그만큼 손가락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해 젊은층의 방아쇠수지증후군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늘어난 환자 대비, 젊은층의 치료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방아쇠수지증후군 증상은 단계별로 차이가 있는데 초기 즉, 정상적으로 운동 범위에 큰 지장은 없지만 약간의 딸깍 소리 등과 같은 마찰음만 나거나 혹은 경미한 통증(엄지손가락통증과 손바닥 통증, 약간의 움직임 제한 등)만 나타난다면 비교적 빠르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증도 이상 즉, 수동적으로 손가락을 펴야 하는 단계이거나 굽혀진 상태 혹은 굽혀지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는 고정 증상의 경우 치료 기간이 더 길고, 치료 과정도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통증과 불편함이 느껴지는 초기 단계일 때 신속히 치료를 받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손가락 사용이 많은 분이라면 평상시에 주먹을 쥐었다 펴거나 손가락을 손등 방향으로 지긋이 제쳤다가 다시 오므리는 등 ‘일상 속 손가락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긴장된 손가락 근육을 풀어주고 일과가 끝난 뒤 가볍게 손을 마사지해주는 것만으로도 방아쇠수지증후군을 예방하고, 엄지손가락통증과 손바닥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