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나 친정에 어르신이 계신지 않은 이후로 추석, 설날 같은 명절에도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목적이 희미해졌다. 최근 몇 년까지만 해도 형제, 자매를 만나러 명절 때마다 7시간 이상 운전해서 만나보고 오곤 했는데몇장시간 운전해서 형제, 자매들을 명절 때 만나기 보다는 평소에 자주 만나는 것이 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가족여행을 선택했다.
남편과 헤벨이 여행가본 기억이 없다는 강릉을 여행지로 정했다. 숙소도 다급하게 취소한 것을 간신히 잡았다. 블로그 혹은 인스타에 강릉 여행지 다녀온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강릉 여행지를 정했다. 그런데 블로그, 인스타에 나온 여행지를 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서있다.
헤벨은 한,두번 줄서서 SNS에 맛집에 줄을 서보기도 하였으나 나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내가 모든 사람들이 소개하는 맛집에 들렀다고 블로그에 올릴 것도 아니고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지, 타인의 블고그와 인스타를 보고 뒤를 쫓아다니는 것이 진정 나의 여행이 될까 싶었다.
헤벨은 사람들이 없는 가게에 들어갔다. 한적한 식당, 커피콩빵 가게, 커피숍을 다녔다. SNS에서 자랑하는 맛집이 아니어도 헤벨이 맛본 고즈넉한 가게에서의 젤라또, 커피콩빵, 갓 구은 빵, 커피도 좋았다. 어떤 작가가 말한
‘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하나'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남들이 가면 나도 가야하나? 가을 꽃구경, 천만관객의 영화를 꼭 봐야하나, 다른 사람들이 추천한 맛집이 나에게는 맛집이 아닐수도 있을진데 말이다. 사람은 모두 다름을 알기에 남들이 좋다고 나까지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주무진항 근처의 예약한 숙소에 오후 7시 쯤에 도착하였다. 바닷가 앞 바로 앞에 오션 뷰가 보이는 멋진 숙소였다. 파도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주무진 항의 유명한 바위들이 해변가로 즐비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눈으로 파도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고등학교 역사 책에서 접했던 조선시대의 무역항이며, 유명한 항구인 주문진항을 발로 밟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생선가게, 대게가게, 수산시장 등 선착장에 사람들로 붐비는 보름달 달빛아래의 주문진항의 모습이 정겨웠다.
바다에 떠있는 보름달도, 오랜만에 손님으로 북적이는 가게 주인들의 웃은 얼굴이 사뭇 보름달처럼 보여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짠 비린내음의 항구의 맛에 얼굴을 찌푸려졌으나 감각 순응이라는 인간의 특성 상 5분을 견디지 못하고 비린내음의 냄새보다는 사람의 정겨운 냄새로 주문진항구의 추억이 내 뇌리속에 남아버렸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변가를 걸어보자고 가족들이 나왔지만 사춘기를 둔 남편과 나의 바램은 허무하게 20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보름달 빛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면서 언제 잠을 잤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아마도 새로운 장소에서의 잠의 불편함이었을까 싶었다. 커텐을 열고 바다나 구경하려고 커텐을 열었는데 숙소 앞 바닷가의 바위 위에 노란색 무언가가 흔들거렸다.
’사람같기도 하고, 저게 뭐지 ?‘ 하면서 벗어놓은 안경을 쓰고 먼저 시계를 보았다. ' 2시 20분 이었다. '
바위 위에 노란색 모자를 쓰고 서있는 남자분이 보였다. 바위 위에 서있는 남자분이 위험해보였다.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는 새벽이었다.
바위의 면적이 남자 한명이 서있기에 충분히 넓기는 하였으나 위험해 보였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남자 분은 중년 쯤 되보였다. 등산 차림이었고, 파도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듯 해보였다.
무슨 외침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없는 외침을 하고 계셨다. 손을 하늘 위로 들어오렸다가, 바다로 향해 손을 뻗으면서 마치 파도에게 달에게 하소연을 하는 모습같았다.
새벽에 바위 위에 서서 파도를 벗 삼아 할 이야기가 많으신가? 삶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신가?
아니면 파도와 보름달의 정기를 받고 싶으신가?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가면서 파도 위에 서계시는 중년 남자분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저 분은 어떤 고민으로 새벽 2시에 파도와 맞서있는 바위 위에 서 계실까?
가족들을 만나는 한가위 명절에 혼자 그것도 이른 새벽에 혼자 계시는 이유는 무엇일까?궁금했다.
궁극적으로 나의 뇌리에 ’ 혹시 자살 하려는 건 아니시겠지? ‘ 하면서 10분 가량 파도를 거슬려 서있는
중년의 남성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숙소 앞 바위 위로 먼저 눈이 갔다.
새벽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채 잔잔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강릉에 새벽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지 기사를 찾아보았다. 다행이 없었다. 안심의 한숨이 나왔다.
주문진항의 새벽에 만난 파도 속에 외침을 하고 계셨던 중년 남성의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강릉여행이었다. 강릉하면 헤벨이 생각나는 단어는 ’고즈넉한 항구;, ‘파도 속의 외침’ ‘ 주문진항의 향긋한 비린내 나는 수산시장의 풍경’ 일 것같다.
한동안은 강릉에서 만난 미소짓는 상인들, 한산한 강릉 거리와 파도 속의 외침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는 중년의 남성분에 대한 여운이 깊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