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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심심함에 대하여


   새롭게 바뀐 직장의 분위기에 적응하느라고 3주를 쉴 새 없이 거침없이 달려왔다. 

오랜만에 호젓한 주말 아침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려고 책을 잡았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 청소도 심드렁하다. 

주말이라서 연락 오는 친구도 없고, 주말이라서 친구에게 연락하지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심심하다‘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너무 바쁘게 보낸 시간 후에 찾아오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와도 무엇인가를 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헤벨도 ’워크홀릭‘에 빠진 영혼의 성장 없는 성공과 성취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살고 있는 노동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장석주 작가의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나온 문구가 현재의 나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들 바쁜데 정작 행복하다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 어린이들은 대여섯 살 무렵부터 이미 과다한 학습량에 내몰리고, 영혼의 성장 없는 성공과 성취의 강요 속에서 놀이와 혼자만의 심심함을 위한 시간을 박탈당한다. 2011년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이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이다.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 한국 사회는 40대 돌연사 발생률과 자살률에서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와 강박, 팍팍한 삶이 주는 심신의 부하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통계수치다. 어린이고 성인이든 간에 무한 경쟁 속에서 성과 기계로 내몰린 한국인이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피로로 찌든 사람들, 더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넘친다.
-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장석주 저)-


   헤벨도 피로로 찌들어 있고, 일만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헤벨을 비롯

   하여 사람들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와 강박, 팍팍한 삶이 주는 심신의 부하가 만만치 않다. 

스페인의 어느 한적한 마을 풍경 

   나는 언제 심심함을 느끼는가? 

1) 바쁜 업무를 모두 마치고 집에서 쉬는 시간에도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없을 때 

2)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외로움도 아닌 것이 심심함도 아닌 시간이 주어질 때 

3)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이 어그러졌을 때 예기치 않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4)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한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할 때 

   이처럼 내가 심심함을 느끼는 시간은 바쁜 일상 중에서 무엇을 할 것을 찾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서글프다. 쉴 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심심하다’는 단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단어이며, 심심하다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뒤처진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심심하다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터부시되는 형용사가 되어버렸다.  미국의 한 회사원이 72시간을 쉼 없이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 이후로 미국에서는 적정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삶에서의 휴식과 심심함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심심함도 즐길 줄 알고, 심심함을 사색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누워 있는 즐거움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호젓한 주말 아침에 헤벨은 ‘심심함’에서 ‘사색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감히 스스로 생각하기’단계로 진일보하는 그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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