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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일상: 땅위의 직업


   삶이 버거운 새벽아침이다. 

여러 가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잠 못 드는 새벽에 잠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괴로울 것 같아 반려견 만복이와 산책을 나왔다. 

가을의 새벽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새벽아침에 나는 걷고 있다. 

‘ 사는 게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구나. 중년이 되면 삶이 조금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문제인가? 감사할 줄 몰라서 이러는 걸까?  사람 관계는 또 왜 이렇게 힘든 걸까? '

    삶이 버거운 여러 가지 이유가 나의 머릿속에 교차하고 있다. 

 주인의 심란한 맘도 모르고 옆에 나란히 걷는 반려견 만복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데 갑자기 만복이가 으르렁거리고 짖기 시작한다. 

“ 에고.. 왜 그래. 짖지 마” 하고 이야기하는 데 뒤를 돌아보고 계속 짖고 있다. 

아파트 단지여서 혹시 잠들어있는 분들을 깨울까 봐 만복이를 안아 올린다. 


저쪽에서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달려오고 있다. 조깅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만복이가 짖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운동복 차림에 머리는 질끈 묶은 여성분이 양손에 물건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외모만 보고 추측해 보면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셨다. 

새벽 총알 배송 업체의 직원분이신 듯싶었다. 양손에 배송할 물건을 들고 주차해놓은 탑차에서 물건을 꺼내 뛰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 앞 동에 있는 아파트 입구로 뛰어가면서 반려견 만복이를 보고 씩 웃는다. 만복이도 씩 웃어주는 여성분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짖지 않는다. 

양손에 무거운 택배 물건을 들고 힘차게 걷는 젊은 여성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 열심히 사시는구나! 모두 잠든 시간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새벽 아침에 뛰어다니는 젊은 여성분을 보고 있잖니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저렇게 열심히 사니는 분도 계시는데 내가 지금 고민하고 새벽에 잠 못 드는 이유는 새벽아침을 뛰는 젊은 여성의 삶의 무게만큼 큰 것일까? 


    정호승 시인이 쓰신 [위로]라는 산문집에 나온 이야기이다. 

정호승 시인이 살아기기 힘들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강원도 탕광마을에 취재하면서 만났던 김장순이라는 분을 만났다고 한다. 김장순씨는 검은 탄가루들이 무더기로 쌓인 산중턱 어느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고, 취재를 위해 탄광 막장까지 그를 따라가보았다고 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헤드램프가 달린 헬멧을 쓴 뒤 작업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00m 미터 아래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200미터까지 가서 다시 갱 속으로 들어갔는데 정호승 씨는 제대로 숨도 못 쉬었다고 하였다.  막장 안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하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한다고 했다. 

점심 식사로 김장순 씨에게 정호승 씨가 대접받은 것은 꽁보리밥이었는데 탄가루화 함께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통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장순 씨는 진수성찬처럼 꽁보리밥에 김치 한 가지 도시락을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김장순 씨와의 나눈 대화 중에서 그의 소원에 관한 것을 물어보았는데 김장순 씨의 대답은 ” 물론 그건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 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릅니다.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정호승 시인이 자신이 김장순 씨를 취재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이 살기 힘들 때마다 불현듯 생각나는 김장순 씨를 생각하면 땅 위에서 일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 heftiba, 출처 Unsplash

   행복의 이유는 비슷하지만 불행의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지만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 삶이 힘들 때마다 내 삶에 대해 교만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오늘 새벽에 무거운 택배 배송 물건을 들고 새벽 아침을 뛰어다니는 젊은 여성분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과 다시 한번 나도 힘차게 삶을 향해 뛰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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