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으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어머니와 그리움이다. 특히 어머니라는 주제는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서 빠지지 않으며, 우리들의 따뜻한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리움, 아련함, 아름다움, 사랑, 열정, 아픔을 담아내는 단어이며, 모두에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말이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긁는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며. 긁는다는 것이 뾰족한 도구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할 때 활자의 형태로 긁는 것은 글로, 선이나 색을 화폭 위에 긁는 것은 그림이라는 말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나는 마음속에 어머니의 흔적을 활자의 형태로 긁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다. 어머니의 그리움을 유발시킨 빛바랜 성적표와 커피를 통해서 말이다.
나의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글을 가르치려고 무척 노력하셨지만 아쉽게도 어머니의 눈에 글자가 거꾸로 보이고, 제대로 단어의 조합을 하지 못해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현대의 학문적인 입장에서 나의 어머니는 학습장애로 분류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언니와 오빠들이 글을 읽는 것만 보아도 너무 신기해하셨고,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하지만 막내였던 내가 어머니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슴 시린 구석이었던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픈 부분을 소환시켜야 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나는 일곱 살 어린 나이로 초등학교에 입학(入學)하였다. 그 시절에는 유치원을 다니는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 외에는 한글을 배우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였다. 초등학교 들어간 지 서너 달이 조금 넘었던 초여름으로 기억한다. 왼쪽 뺨에 검은 점이 있었던 담임선생님은 매일 받아쓰기 시험을 보셨고 나의 받아쓰기 실력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받아쓰기 시험 10문제 중 1개 혹은 2개의 정답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담임선생님은 나의 받아쓰기 성적에 인내의 한계를 느끼셨는지 청소 시간에 선생님 책상 앞으로 나를 부르셨다. “000야! 너는 집에서 엄마가 공부 안 시키니? 어머니가 우리 반에서 너만 받아쓰기에서 10점, 20점 맞고 있는 거 알고 계시니?” 말씀하셨다. 내일 엄마를 학교로 모셔오라 하시면서 “선생님은 커피 좋아한다. 엄마가 학교 방문하실 때 커피 타가지고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날 집으로 가는 논길을 걸으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선생님이 엄마 학교로 모셔오래요. 하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는 것보다 도대체 커피라는 것을 어디서 구하고 내일 엄마가 학교로 커피를 타 가지고 오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엄습해왔다. 부엌에 계시는 엄마에게 담임선생님의 말을 전했다. 엄마는 대학생 오빠였던 둘째 오빠 방으로 가서 커피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셨고 커피, 프리마, 설탕을 넣어서 타 마시는 음료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 엄마는 둘째 오빠에게 막내 담임선생님이 엄마를 학교에 오라고 하신 것과 커피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둘째 오빠는 나에게 멍청이라느니, 공부도 안 하고 놀러만 다녔냐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둘째 오빠는 커피 만드는 재료는 시내 나가서 사 오겠지만 내일 커피를 가지고 가려면 보온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오빠는 커피보다는 막내인 내가 한글을 아직도 제대로 익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실망하였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받아쓰기 점수가 낮은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1학년 담임선생님께 커피라는 것을 가장 맛있게 대접하고 싶은 생각뿐이셨는지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려 커피와 보온병을 사서 생전 처음 커피라는 것을 타가지고 그다음 날 청소 시간 후에 학교에 오셨다.
밭에서 일하다 햇빛에 그으른 얼굴에 먹히지도 않은 화장을 하시고 명절날만 입는 고운 한복을 입고 손에는 커피를 탄 보온병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엄마가 커피를 가져오신 것을 보시고 옆 반 선생님도 부르셨다. 선생님은 커피를 드시면서 “ 어머니, 커피는 왜 가지고 오셨어요? 은주에게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잘 마시겠습니다. ” 하셨다. 장난으로 한 말 때문에 엄마는 커피와 보온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니셨고, 엄마와 둘째 오빠는 맛있는 커피를 타기 위해 전날 밤에 쓴 커피를 10잔 이상씩 마셨다. 일곱 살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장난’이라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검은 점 위에 나 있는 작은 털을 확 뽑아 버리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은 엄마를 학교로 모시게 된 배경을 설명하셨다. 내용인즉슨 은주가 학교 입학 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학교라는 단어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가정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시켜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혹시 어머니가 글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라는 질문을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하실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시고 꺼낸 말씀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묵묵히 계시던 나의 어머니는 소리높여 말씀하셨다.
“제가 글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글자도 제대로 못 가르쳤습니다.” 그러시면서 선생님에게 학생들을 공부 잘하고 못하고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라, 나도 글을 모르지만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더라, 글자를 더디게 배우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잘 가르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교사의 본분이며 조금 더딘 학생들에게는 더 따뜻한 격려, 칭찬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 배울 만큼 배운 선생님이면 그래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학생들에게 커피 타오라느니 그런 일 시키지 마세요. 절대로 앞으로는요”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시면서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아채고 교실 문을 박차고 나오셨다.
처음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은. 내 평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나에게 공부 좀 못해도 된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즐겁게 뛰놀고, 싸우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1학년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영화의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이야”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이야기였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 2반 성적통지표는 내 서랍장 속에 그대로 있다. 내 인생을 통해 받았을 다수의 성적통지표 중에서 내가 유독 초등학교 1학년 2반 성적통지표는 버리지 않고 소장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 보여주셨던 어머니의 교육철학과 삶의 모습을 잊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대들이여, 내 초등학교 1학년 성적통지표 점수가 궁금하신가요? 초등학교 1학기, 2학기 교과학습 발달상황의 8개 과목 점수는 우, 미, 양, 가의 점수분포로 되어있고, 행동발달상황에는 ’당번 활동은 잘합니다. 만들기 입선’‘부지런합니다.’라고 적혀져 있다. 공부는 적성에 안 맞았나 보다. 참고로 양, 가는 최저점수이다.
이상하게도 그날 보온병에 타가지고 갔던 커피는 집에 와서 엄마 몰래 내가 홀짝홀짝 다 마셔버렸다. 어머니에게는 쓰디쓴 아픈 기억을 소환시키는 커피였겠지만 그날 인생 처음으로 먹어보았던 커피 맛은 나의 입에서 살살 녹으며 쓰면서도 달콤함을 주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래서 나는 커피 애호가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1학년 성적통지표의 평점은 담임선생님의 교육관(敎育觀)을 보여주었다면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학교 방문 이후로 단 한 번도 나에게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으로부터 막내인 내가 한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분명히 가슴이 철렁했으리라.
막내가 자신을 닮아서 글을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지는 않을까? 글자를 못 읽어서 인생이 힘들고 서러움을 당하지는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는 나를 그저 믿고 기다려주셨다. 그게 바로 나의 어머니의 교육 방법이셨고 나의 삶에 어머니의 믿음이 고스란히 투영(投影)됐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딘 학생들에게는 더 따뜻한 격려, 칭찬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느리지만 강한 학생들을 응원하고 지도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