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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운동회 , 그리고 어묵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하니 어머니한테 글을 써도 소용없다고 생각해버리고 한번도 편지라는 글을 통해서 저의 마음을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저의 학생들을 위해서는 녹음해서 글을 읽어주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글의 의미를 전하려고 노력했는데 가장 가까운 어머니에게는 저의 마음을 전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막내딸이 너무 무심했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무심하고 차가웠던 막내딸이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올립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벌써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난 일이지만 막내딸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 날은 기쁨과 슬픔을 어머니에게 준 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만 해도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잔치였고,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커가는 꿈나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죠. 온 마을 사람들이 원색 오재미로 커다란 박도 터트리고 달리기 계주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마을 잔칫날이 가을 운동회였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운동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 중에서 큰어머니와 아버지가 항상 학교에 오셨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에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 좋은 행사에는 항상 큰어머니가 참석하셔서 공식적인 저의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셨죠. 그래서 언니, 오빠들 학교 행사며, 새 학기 담임선생님 만나러 가는 분은 항상 큰 어머니였지요.      

   어머니가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의 친 어머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자식들 다니는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자식을 낳아보니 더욱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1950~60년대에 살았던 어머니는 가난한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기를 낳지 못하는  큰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를 따라서 우리 집에 오셨고 다행히 엄마는 3남 3녀의 자녀를   낳았다고 고모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4학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들었어요. 


   어머니, 솔직히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까지만 해도 나에게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어요. 큰 어머니는 곱게 한복을 입고 다니고, 마을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질 정도로 얼굴도 이쁘고, 둘째 어머니는 반찬도 잘하고 일도 잘해서 우리 집에 엄마가 두 명있어서 나는 너무 좋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부터 친구 집과 비교해서 우리집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점점 반찬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나를 낳아준 엄마를 친구들에게 숨기고 싶어졌어요. 친구들이 놀릴까봐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만국기가 휘날리는 화창한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 날의 오전 운동회 프로그램인 매스게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당연히 우리 동네에서 최고 미인이라고 소문 난 큰어머니가 예쁘게 치장하고 아버지와 함께 오실 줄 알고 언니와 나는 손을 잡고 운동장을 두리번 거리며 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멀리서 운동장 뒤편에 서 있던 미루나무 아래에 몸빼 바지를 입고 햇살에 까맣게 그으른 얼굴을 한 어머니가 언니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몸빼바지 입고 운동회날 왔을 때 솔직히 창피했어요. ‘ 몸빼 바지가 뭐야, 한복이라도 입고 오지‘ 혼자 생각했어요. 그날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표정을 보이시고 목소리가 들떠있으셨어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친어머니로서 학교에 올 수 있었으니 정말 어머니는 행복해 보였어요.

   돗자리를 깔고 어머니가 준비해온 찬 압통을 한단 한단 열 때마다 저는 너무 놀랐어요. 막내딸의 최애 음식이 어묵이었다고 해도 엄마가 준비해온 음식들은 어묵으로 만든 음식들뿐이었어요. 어묵탕, 어묵 무침, 어묵 전, 어묵 잡채, 어묵튀김 등 어머니가 어묵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총동원되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김밥 속 재료도 어묵이 반을 차지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 반 민석이 어머니가 ” 어묵 가게의 어묵을 통째로 사왔어“라고 으스갯 소리를 할 정도였으니깐요. 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 우리 막내딸이 어묵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딸들 운동회 때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소원을 이루었어요. “ 하면서 기뻐하셨죠. 자신의 친자식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셨을까?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요. 

   어머니, 너무 어렸던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어머니가 해온 어묵 요리들보다 민석이 어머니가 가져온 옛날 통닭이 더 먹고 싶었고 더 눈길이 갔었던 것 같아요.      

   점심을 한창 먹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우리 담임선생님 어디 계시느냐고 나에게 물어봐서 나는 손가락으로 담임선생님을 가리켰는데 어머니가 담임선생님 손을 잡고 우리가 앉아있는 식사 장소로 끌고 오셨어요. 담임선생님은 어묵 요리들을 보시고 약간 놀라시면서 “와! 저도 어묵 좋아합니다. 그런데 학기 초에 뵈었던 은주 어머님이 오지 않으셨네요?"하는 질문에 어머니는 쑥스럽게 "선생님, 저도 은주 엄마예요. 제가 은주 진짜 엄마예요!"하셨죠. 엄마가 내뱉은 말에 내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우리 집안의 가정사를 선생님이 아셔서 너무 창피해서 어묵 속에 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엄마의 말에 겸연쩍게 몇 가락 어묵 잡채를 예의상 드시고 자리를 뜨셨어요.           

  선생님이 자리를 뜨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죠 .�선생님께 왜 엄마가 진짜 엄마라고 선생님께 말한 거야, 그리고 어묵 반찬만 해오면 어떻게 해. 창피하게, 다른 아이 엄마 좀 봐봐! 화장도 하고, 통닭도 사서 왔잖아. 나 밥 안 먹어. 엄마 집에 빨리 가버려!!!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학교 건물 뒤로 몸을 숨기고 앉아서 많이 울었어요. 


  ‘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친구 엄마처럼 세련되지도 못할까?, 나는 왜 엄마가 두 명이나 될까?, 이제 창피해서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하고 생각하니 서러웠던 것 같아요.      

   한참 울고 나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운동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학교방송이 들려서 나는 일어나서 어머니와 언니가 있는 쪽을 바라봤어요. 어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주섬주섬 찬 압통과 돗자리를 챙기셨고, 옆집 아주머니가 오후 운동회 프로그램 구경하자는 권유의 손을 조용히 놓으시면서 등을 돌리시고 마을 어르신들 사이를 비집고 교문을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계셨어요. 양손에 찬 압통을 싼 보자기를 들고 가시는 어머니의 어깨가 축 처져있었어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날 저녁에 저는 어머니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저에게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가을 운동회 사건 이후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빨간 고추장 어묵볶음은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올라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내놓았죠. 하지만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 때 제가 어머니에게 한 무례한 행동, 철 없었던 행동에 대해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 어머니, 철없고 어머니 마음 헤아리지 못한 막내딸 용서해주세요. 너무 죄송했습니다. ”  라고요. 


   어머니, 그거 아세요? 막내딸은 엄마가 그리워지거나, 어머니의 체취, 그리움이 사무치면  

시장이나 마트로 달려가서 어묵 꼬치를 한 봉지 가득 사가지고 오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묵 꼬치를 먹으면서 가을운동회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어머니께 속으로 용서를 빌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해요. 그리고 철없이 굴었던 어린 딸의 못된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고 있는 저에게 가장 현명했던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 나의 막내딸아!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너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두 명이라는 사실이 창피하고 숨기고 싶었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거야. 나이가 들면 과거에 숨기고 싶었던 일들이 지금은 전혀 숨길 필요가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되어버린단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나의 막내딸! 아픈 기억의 초등학교 5학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몸빼바지에 검게 그으른 어머니의 모습이 창피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황금에는 도금할 필요가 없듯이 엄마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분이셨어요.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진짜 내 자식이라고 말도 못 하고 우리 집에서 그림자처럼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준 어머니 덕분에 지금의 언니, 오빠와 내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삶을 희생이라는 단어로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어두움 속에 있는 저와 우리 가족들에게 한 줄기 빛과 태양의 실존적 존재 자체였습니다. 더욱이 저같이 부족한 인간의 한 사람의 영혼의 근원적 토대가 되어주신 나의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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