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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보고

     [리빙: 어떤 인생]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고 빌나이(Bill Nighy)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다. 영국배우인 빌나이(Bill Nighy)는 한 번도 나의 눈에 띈 적이 없는 배우였는데 리빙: 어떤 인생의 윌리엄스 역할로 나를 사로잡았다. 빌나이(Bill Nighy)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를 모두 볼 생각으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은 것(Hope Gap)”이라는 영화였다.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과 빌나이(Bill Nighy)가 부부로 나오며, 영국의 차세대 배우 조시 오코너가 아들역할을 맡았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좋았지만 시포드라는 영국의 시골지역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의 원제목 Hope Gap 은 영화를 찍은 장소인 시포드 해안가 절벽 이름이라고 하였다.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감독 윌리엄 니콜슨 출연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개봉2022.02.24.


    영화에서 그레이스(아네트 베닝 역)와 에드워드(빌나이 역)는 29년간을 부부로 살아왔으며, 시를 좋아하는 그레이스는 시를 모아서 편집하거나 시집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녀의 성격은 매우 쾌활하고 직선적이며, 이에 반해 남편 에드워드는 조용하고 묵묵하며 신중한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다. 말이 없는 남편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 29년간 살아오면서 우리 행복하지 않았냐?”라고 질문하는 그레이스 질문에 “ 괜찮았지”라고 대답하는 에드워드의 얼굴에는 웃음기 없는 무심한 답변을 하고 있다. 두 부부의 아들 제임스가 주말에 와서야 식탁에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두 부부의 응어리 지고 곪아진 감정의 소용돌이가 밖으로 표출되며 남편의 뺨을 후려치는 그레이스 모습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는데 속에는 말 못 한 속사정이 있는 부부만의 모습이 비친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남편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만 에드워드는 아들 제임스에게 먼저 자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면서 그레이스를 떠날 거라고 말한다. 에드워드는 아들 제임스에게 그레이스를 처음 만났던 잘못 탔던 기차를 빗대어 자신의 인생은 기차를 잘못 탔으니 이제 바로 잡고 싶다고 말한다. 

   마침내 에드워드는 그레이스에게 자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으며 당신 곁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레이스는 우리 행복하지 않았냐고, 노력해 보자고 말하지만 에드워드는 떠난다.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도 제임스를 이용해서 에드워드를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제임스는 별거하고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자식으로 느끼는 아픔을 극복하면서 무너져가고 있는 어머니를 보살피고 삶을 희망을 주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임스 또한 부모를 이해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Hope Gap 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 행복, 희망은 타자의 인생의 입장에서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 내가 그레이스 같은 입장이 되면 어땠을까? 평생을 믿고 의지하며 자식을 키우고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그런 평온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돌연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떠난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남편과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 사랑보다는 서로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서로를 알아가자고 시작한 결혼이었다. 우리 부부의 결혼은. 집에 오면 에드워드처럼 말이 없는 남편에게 자꾸만 말 좀 하자면 조르는 나의 모습은 그레이스와 오버랩된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가 떠난 후 극심한 우울증을 겪지만 아들의 도움으로 점차 자신을 찾아가고 아픔을 회복해 간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인생에서 사랑, 죽음, 고통,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시를 소개하는 “ I Have you been here Before”라는 웹사이트를 열게 된다. 검색창에 희망이라는 검색어를 넣는 제임스, 그러면서 그레이스가 읽는 시가 바로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이다.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 

   노동과 상처가 헛되며 

   적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친 파도가 헛되이 부서지며

   이곳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나

   저 뒤쪽에선 

   작은 개울과 만을 이루며 

   조용히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햇살이 들어올 때 동쪽 창으로만 오지 않으니 

   앞에서 본 태양은 천천히 솟아오른다 

   얼마나 느린가 

   하지만 서쪽을 보라 

   밝게 빛나는 대지를 


   그레이스가 전 남편 에드워드가 소중히 여긴 피규어를 가져다주면서 친구가 되자는 에드워드의 말에 친구가 될 수 없으며 한때는 사랑했으며 자신이 여전히 밤에는 에드워드를 생각하지만 이제는 당신은 놔주겠다는 말을 하며 에드워드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제임스가 독백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말하면서 마지막에 절 놓아주세요.라는 말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집착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음을 ‘Hope Gap’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Hope Gap’ 영화는 자신의 방에서, 50대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나의 남편에게 잔소리보다는 허용하고 집착하지 않고 놓아주어야 하며, 사춘기에, 자신의 방에서, 핸드폰만 하며 하루에 한두 마디만 하는 딸아이에게도 나의 집착보다는 딸아이의 삶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함을 알게 해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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