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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일상: 미역국을 끓였다. 내 생일에


   무슨 기념일이나 나의  생일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성격이다. 그래도 가족들 생일은 꼭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미역국도 끓이고 시장에서 떡도 사다가 아침 생일상을 차려놓고 출근하곤 한다. 

   오늘은 내 생일날이다. 남편도 딸아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서 ‘생일날이니 미역국은 먹어야지’ 하면서 어제 사다 놓은 비 0 고 미역국 봉지를 뜯어서 냄비에 붓는다. 나만의 생일상을 내가 차린다.  하얀 쌀밥, 시중에서 파는 미역국, 김, 달래 간장이 중년 나의 생일상이다. 

   갑자기 서려움이 밀려온다. 내 나이 또래의 중년 여성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자녀를 둘 정도의 나이들이다.  나는 결혼도 늦게 했고, 아이도 늦게 가졌다. 


   친구들은 자랑한다. 자신의 생일날에 남편에게 명품 백을 받았다느니, 대기업 취직한 아들이 백만 원 수표를 주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무심한 남편, 사춘기인 딸아이를 둔 중년의 내 생일날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새벽에 혼자 미역국을 끓여서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이게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나의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들 생일날에 정성을 다하셨다. 자녀 생일 전날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준비하시고, 팥 시루떡을 만들기 위해 떡시루도 깨끗이 닦아놓으셨다. 언니, 오빠 생일날이면 귀한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가족들 생일날에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가 만든 팥 시루떡이나 소고기 미역국이 아니었다. 내가 기다린 것은 팥 시루떡을 만들기 위해 찜통과 떡시루에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으로 꼼꼼히 막아 놓았던 밀떡(나는 그렇게 불렀다.) 이었다. 떡시루와 찜통 사이에 김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붙여놓은 밀가루 반죽이 열기로 구워진 밀떡은 정말 맛이 있었다. 

   떡시루에 붙여진 구워진 밀떡을 떼어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맛없는 그것을 왜 먹냐고 타박하셨지만 어린 나는 시루떡보다 바싹하게 구워진 시루에 붙여진 밀떡(나는 그렇게 불렀다.)을 기다리곤 했다. 

   팥 시루떡과 미역국이 다 완성되면 어머니는 하얀 쌀밥, 미역국, 떡이 담긴 생일상을 부뚜막에 놓고 두 손을 감싸면서 기도를 하셨다. 자식들이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두 손 모아 빌곤 하셨다.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종종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새벽에 팥 시루떡을 만드는 엄마를 둔 나는 행복한 아이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 jojoyuen, 출처 Unsplash


   이제는 중년이 다 된 딸내미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실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중년의 딸내미가 자신의 생일날에 혼자 미역국을 끓여서 먹는 모습을 어머니가 보셨으면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내 생일에 미역국을 혼자 끓여서 먹는 나의 처지를 어찌하리. 내가 선택한 것이니 책임도 내가 지어야 하는 것을.  나의 생일날인 오늘 몹시도 어머니가 만드셨던 팥시루에 붙어져 있던 밀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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