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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일상: 단편영화 '우리' 되새김질

일요일 아침, 해가 중천에 떴다. 

만복이(반려견)이 자신의 산책줄을  물고 왔다. 산책 가자는 말이다. 

더 침대에 한 몸이 되고 싶었으나 주말만 기다려 주인과 산책 가고 싶은 

만복이의 눈동자를 보니 일어나야겠다 싶었다. 

만복이랑 항상 다니는 코스가 아닌 다른 산책길인 옆 동네의 아파트 산책로를 

선택하여 만복이와 나는 걸었다. 

9시의 일요일 아침은 조용하고 호젓하다. 길가에 사람도 없다. 


   옆 동네 아파트 산책로가 생각보다 잘 정비되어 있었다. 담장에 늘어진 장미꽃을 

보니 장미축제가 곧 오겠구나 하며 눈 돌린 45도 각도의 벤치에 이십 대가량의 

학생 혹은 숙녀분이 앉아서 무엇인가를 마시고 있었다. 

음료수인지 알았는데 나의 남편이 야구 보면서 마시는 맥주 브랜드여서 

단번에 알아보았다.  ‘맥주를 마시는구나!. 참 맛있게 드시네.’ 

하면서 숙녀분이 앉아있는 벤치를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오지랖퍼는 아닌 나이지만 해가 중천에 뜬 아침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숙녀분을 보니 

갑자기 호기심이 일어났다.  ‘ 해장으로 마시는 맥주면 괜찮지만 삶이 힘들어서 마시는 

아침의 맥주는 몸에 해로울 것 같은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생각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맥주는 음료라고 하지만 맥주도 술이라고 느끼는 나에게는 다시 돌아가서 숙녀분이 마시는  맥주가 힘든 삶을 풀어주는 도구로 마시고 있다면 ‘무슨 일 있으세요? 저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할만한 용기는 나지 않는다.

  

            우리,  감독정해성,  출연오우리, 김현목, 장준휘, 신지운, 이주우, 최다빈, 정해원, 이민아, 

             오정석, 임현묵


   산책 중에 어제 본 단편영화  ‘우리’의 내용이 떠올랐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 우리'라는 여대생의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전화이지만 우리는 핸드폰을 받았다. 건너편에 들여오는 남학생의 목소리.

 ‘누구세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여대생은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본다.  상대방 남학생은 그냥 아무 번호나 눌렀다면서 오늘 저녁 8시에 자살할 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대부분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학생에게 말한다. 학생은 자살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전화를 끊는다. 


   우리는 뜬금없이 걸려온 남학생의 전화의 자살이라는 단어에 112에 전화를 건다.

누군가 자살한다는 전화가 왔다고. 경찰관은 한 번 더 같은 전화가 오면 그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한다. 

우리라는 주인공은 상대방 남학생이 어디에 있는지 문자로 물어보고 부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상쩍은 전화를 받았다고 엄마에게 말하지만 엄마는 장난전화라고 취부해버린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서 부산까지 가면 얼마인지 물어본다 30만 원이라는 말에 돌아서는 우리. 편의점 퇴근 후 급하게 달려간 영어학원에서 앉아있지 못하고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늦게라도 부산에 가려고 말이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 부산의 모 경찰관이라고 하면서 ‘학생 한 명이 죽었는데 마지막 전화 통화가 학생 전화였다고 하면서 말이다. ’


   ‘우리’처럼 나도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자살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장난전화라고 간주해버렸을까? 아니면 경찰서에 찾아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화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었을까?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자살 1위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은 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작금의 베스트셀러 책들을 보면 인생의 다시 사는 법, 후회하지 않고 인생을 사는 방법,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방법, 소통의 기술, 인간관계 기법, 말투 바꾸는 법 등 타인과의 관계,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책들이 다수 읽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먹고살기는 풍요로워졌는데 정신은 그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하고 피폐해져만 가고 있는 듯싶다. 


   헤벨도 최근에 중년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만나고 싶은 이들은 모두 바쁘다고 한다. 내가 원해서 만나고 싶어도 다들 바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선뜻 만남을 제안해도 거절당하고 있다.

인생을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그들이 나를 만나고자 했을 때 나도 항상 바쁘다고 했던 것 같다.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데 헤벨이 외로움을 느낄때 

위로해주는 이가 없을 때 슬퍼지기도 하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가 슬픔을 이겨내는 도구로 마시는 술이 아닌 해장술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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