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살얼음을 걷고 있을 때 우리 엄마는 하늘로 가셨다.
투표일 다음날이 엄마의 기일이어서 장시간의 운전을 하고 엄마가 계시는 추모관에 다녀왔다.
벌써 4년이 지났건만 추모관에 붙여져 있는 사진 속의 어마는 못난 딸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 아름답게 벚꽃이 피는 4월에 돌아가셨나 보다.
돌아가시는 시점까지 자식들을 걱정하시고 자식들이 꽃구경도 못하고 삶에 지쳐 살아가는 것이 걱정이 되셨는지 엄마는 4월 벚꽃 피는 달을 선택하셨다.
추모관을 나와서 추모관 옆에 있는 산사에 들렀다.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개화하였다. 아마도 엄마의 기일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소파와 한몸이 되어서 누워있을 것이 자명하다. 엄마로 인해, 엄마 때문에 올해 벚꽃을 보게 된다. 감사할 일이다.
산사의 벚꽃길
벚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들은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견디었을 것이다.
겨울 동안에 바짝 마른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친 채 잠을 자는지 꿈을 꾸는지 움직임 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안규철 작가의 글을 보면 자연 앞에서 인간들이 겸허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 작은 것들이 하나같이 무자비한 자연에 맞서 바위처럼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안달복다하는가. 매 순간의 공허를 뭔가로 채워 넣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의 조바심이 저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롭게 비칠까- 사물의 뒷모습(안규철 지음)-
벚나무들이 겨우내 자연에 맞서 묵묵히 꽃을 피워내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나라는 인간은 인생이 힘들다느니, 외롭다느니, 우울하다느니, 돈이 없다느니, 삶이 의미가 없다느니 하는 푸념들을 끝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답고 찬란한 벚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내 삶에 푸념보다는 겸허와 인내를 배우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보며 산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