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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 여행: 코카서스 지역 여행
(아르메니아 1탄)

  오랜만에 글을 쓴다. 2주 이상  일상으로의 탈출을 꽤 했다.

6개월 동안 힘들게 달려온 나 자신을 위한 보상 차원으로 가게 된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나라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후기 단 한마디로 말하면, 체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코카서스 지역 여행은 우선 말리고 싶다. 

6개월간 체력이 소진한 상태에서 코카서스 여행은 일주일 넘게 음식과 과로로 인해 아파하면서 여행을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6개월 동안 내가 짊어지고 왔던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버려두고자 여행을 강행했다. 


코카서스 3국 하면  대부분의 타인들은 조지아 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많은 분들이 다시 찾고 싶은 나라가 또한 조지아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헤벨에게 코카서스 3국 중 다시 찾고 싶은 나라는 단연 아르메니아였다.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대한민국의 1/3가량의 면적에 3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800만을 훨씬 넘은 숫자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이다. 


   세계열강으로부터 침략을 당했고, 1915년 튀르키예로부터 대학살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부 아르메니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은 아르메 미아인들 이 러시아 편을 들자 이들을 탄압하고 대학살이 감행되었고, 이러한 아픔을 가진 아르메니아는 첫 번째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르메니아 역사를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한 한을 가지고 있어 보였습니다. 아르메니아를 중앙아시아의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알게 되었고, 세계 각국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 중에서는 이름을 날리는 기업가나 학자, 예술가, 재능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다고 하니 아르메니아인들이 자신의 국가에 나부 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헤벨에게 아르메니아는 노아의 방주, ‘아라라트 산’이 있는 나라였다.  튀르키예에 빼앗기긴 했지만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에 영토에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본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걸려 멈춰 선지 한참 뒤, 비둘기 한 마리를 밖으로 날려고, 되돌아온 비둘기의 잎에는 감람나무 이파리 한 장을 물고 와서 노아는 다시 세상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튀르키예가 아닌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랏산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 사이가 썩 좋지 않아서 아르메니아 입국 전에 아제르바이젠을 거치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여행 코스를 잡았습니다. 아제르바이젠 국경 통과 시 아르메니아 입국 도장이 찍혀있으면 아제르바이젠 입국심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역사에서 기독교의 힘을 바탕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어온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 위해 짧은 시간이지만 수도원부터  들러보았습니다. 

1) 게하르드 수도원(Geghard Monastery)은 예수님을 찔렀던 창이 발견되었던 수도원이다. 예수님을 찔렀던 창인 성물이 발견되었지만 현재는 에치미아진 성물박물관에 창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곳은 동굴 수도원으로 예수님을 찔렀던 창이 발견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게하르드 수도원 

   수도원 입구에서 사람들이 동굴 구멍에 돌멩이를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바위에 구멍난 곳에 던진 돌이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 앞에서 돌을 맹렬히 던지고 있었다. 수도원 마당에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있었는데 바위 절벽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떨어진 날짜가 바위 위에 새겨져있다고 했는데 난 찾지 못했다. 

   게하르드 수도원을 들러보기 전에 볼일이 급해서 화장실론 달려갔다.코카서스 3국은 모두 화장실 이용료를 내야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 큰 지폐를 주었더니 잔돈이 없다면서 단호하게 화장실 이용을 막는 할머니가 야박하다. 숲속에가서 급한 볼일을 보고 싶었으나 급하게 급조해서 500원 빌려서 작은 볼일을 보고 나니 게하르드 수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게하르드 수도원에 땅에 구멍이 나있었다.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도서관이란다. 외부의 침입시 중요문서 혹은 책을 땅에 항아리를 묻고 거기에 고문서를 넣은 후에 입구만 막으면 중요한 물건을 숨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4세기 때부터 맨 위에서부터 바위를 파고 내려가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지워졌으며, 공간을 받든 기둥도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인 듯싶다. 성 게오르기가 동굴 안에서 성스러운 샘이 솟아난 자리를 보고 수도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본당으로 보이는 예배당은 빛이 들어오고, 동굴 공명으로 하나님께 기도가 바로 하나님께로 전달되는 것 같다. 

나도 한참은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싶었다. 


2) 세반 호수와 세반아방크 수도원 

  아르메니아 나라 전체가 해발 1000미터 정도의 낮은 땅에 세반 호수는 더 높은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민물호수 중 하나라고 한다.  호수 둘레는 100킬로미터, 수도원 위에서 보면 마치 바다와 같은 모습니다. 

세반호수와 세반아방크 수도원 앞에서 

   세반호수 가운데 우뚝 솟은 세반아방크 수도원(Sevanavank) 은 아라켈로츠 사도교회와 성모교회가 있다. 2개의 수도원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몇세기 수도사들의 겸손함이 묻어있는 수도원이다. 호수 주위에 둘러싸인 작은 산들 위에 걸쳐진 운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래서 코사커스 산맥의 자연 풍경이 좋다고 하는구나를 느꼈다. 

세반 호수의 맑고 푸른 호수 물 위에 단단하게 세워진 세반 아방크 수도원의 모습이 고즈넉하게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 아르메니아 빵과 꼬냑 


 아르메니아 전통 화덕 빵 라바시.  아르메니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접촉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에 빵 제조법을 습득했다고 한다. 이 주장에 동유럽니아 유라시아 나라들에서부터 이란, 튀르키예는 반발하지만 이란요리를 대표하는 빵 중 하나인 라바시 역시 기원은 아르메니아로 알려져 있지만 이란은 라비시는 이란빵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무튼 라바시는 발효하지 않은 화덕에 구운빵이고, 달콤하고 순수한 맛의 빵이었다. 라바시를 굽는 빵을 굽는 여인들의 유산이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라바시 빵 만드는 여인들 

   아르메니아인들은 얇은 빵인 라비시에 음식을 싸먹는 문화이다. 스튜요리는 점토 항아리에 나오고, 아르메니아인들은 화덕에 구운 고기인 코로바츠(Khorovats)라고 불리고 케밥/샤슬릭 조리법과 비슷하다. 

솔직히 헤벨은 코카서스 3국에서 사용하는 향신료가 입에 맞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후추, 샐러드에 들어가는 고수, 민트, 바실, 마늘과 양파, 계피, 카르다몸, 정향, 샤르폰 등등 다양한 향신료로 만든 요리들이 헤벨의 몸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바시 빵을 만든 여인들을 전통식당에서 만났다. 2인 1조로 라비시 빵을 만드는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하다.  뜨거운 화덕에 10초가량 붙여서 구워진 라비시는 몇일 간 쌓아놓고 먹을 수 있다고한다.  라비시 만드는 여인과 사진을 찍었는데 무표정이셔서 사진을 올리지 못한다. 나에게는 특이한 일상이지만 그 여인에게는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인데 타국에서 온 한 여행객이  그 여인의 일상을 침해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르메니아도 조지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와인 등 주류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르메니아는 꼬냑이 유명하다. 아르메니아의 꼬냑은 꼬냑의 선두국가인 프랑스에서 인정해주었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꼬냑은 프랑스 꼬냑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브랜드인데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눈을 가리고 blind test 한 결과 아르메니아산 브랜디가 그랑프리를 수상하자 프랑스 꼬냑 협회에서 꼬냑이란 이름을 쓰도록 승인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 아르메니안 꼬냑으로 공급되었다. 소비에트 시절 아르메니아 꼬냑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스탈린이 아르메니아 꼬냑에 반해 365일 숨겨두고 마셨다고 한다.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이 처칠에게 선보인 꼬냑이 아르메니아 꼬냑 ‘아라랏’ 이라고 하였는데 처칠도 아르메니아 꼬냑에 반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포도 품종은 달콤하고, 1년에 300일 동안 포도밭 언덕에 내래죄는 여름 태양의 축복을 통해 비교할 수 없는 맛, 질감, 색상을 획득해서 프랑스 꼬냑과 다른 증류수의 맛을 자랑한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꼬냑 공장은 1915년에 시작된 Jvant 꼬냑 공장이었다. 슬통들이 땅에도 묻어있었고, 10톤짜리 오크통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다. 꼬냑 시음을 하는데 확실히 20년산이 맛있다고 술 좋아하는 술꾼들은 말한다. 

꼬냑 제조 공장에서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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