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시는 날’ 휴일 전날에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절 밥 먹으러 가자고 말이다.
‘ 절 밥? 내가 그냥 맛있는 한정식 사줄게’
‘ 아니 난 절 밥 먹고 싶어’
친구의 문자에 나는 조금 주저했다. 스님들에게 시주도 하지 않은 내가 절 밥을 먹는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교회 다니는 내가 절에 가서 공짜 밥을 먹는다는 것도 내 마음에 쉽게 허락이 되지 않아서 망설였다. 하지만 분명히 친구가 절 밥 이 먹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알았어. 절 밥 먹으러 가자’라면서 승낙을 했다.
부처님 오시는 날에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절 앞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이다. 처음 알았다. 오십 평생에. 부처님 오시는 날에 절 밥을 먹고 떡을 얻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 온다는 것을 말이다. 교회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전날에 과자랑 선물을 받기 위해 교회에 몰려드는 풍경과 진배없어 보인다. 친구는 몇 십년 동안을 부처님 오시는 날에 어머니와 절에 가서 절 밥과 떡을 먹으러 갔다고 했다. 올해는 친구 어머니가 잘 거동을 못하시기도 하고 부처님 오시는 날에 시골집에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아 올해는 특별히 '부처님 오시는 날' 에나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친구에게 말이라도 ‘내가 보고싶어서 너를 불렀다’고 하면 안되냐고 반문해본다.
“ 알았어. 너가 너무 보고싶었다.” 라고 억거지로 웃으며 친구가 말한다. 부처님 오시는 날에 교회다니는 친구를 동행하면서까지 절밥이 그렇게나 맛있어서 온 것일까? 아니면 그리워서 일까? 의문이 이렀다. 절밥을 먹기 위해 수십명의 사람들이 틈바구니에 나도 줄을 섰다. ‘도대체 절밥이 어떻게 만들어졌길래’이렇게 줄을 설까. 의문이 들었다. 친구에게 물어본다. “절밥으로 어떤 밥을 주니?” 라는 나의 질문에 “기대해도 좋을 거야. 맛있어”라고 친구는 화답한다.
40분 넘게 절밥을 얻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평소에도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이라도 줄서서까지 먹지 않는 나 이다. 밥 먹으려고 줄을 선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줄까지 서면서 먹을까?’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절밥하면 연잎밥이나 스님들이 먹는 채식위주의 특별식 일까? 몹시도 궁금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절밥의 실체가 들어왔다. 절밥은 다름 아닌‘비빔밥에 된장국’이었다. 친구에게‘부처님 오시는 날’ 공양밥이 연잎밥도 아닌, 절에서 먹은 특식도 아닌 비빔밥이라니.
“친구야, 비빔밥 먹으려고 이렇게 줄서있었던 거니? ”실망하는 나의 목소리에 친구는“ 걱정하지마, 정말 맛있다니깐”하는 것이다. 친구는 소박한 비빔밥 한 그릇, 된장국과 떡 한 봉지를 받아왔다. 비빔밥의 내용물은 여느 식당에서 먹는 비빔밥 재료와 같았다. 콩나물, 고추장, 호박, 고사리, 오이 등이 들어있는 비빔밥이었다.
된장국도 시래기에 된장을 푼 국이다. 가정집이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비빔밥과 된장국인데 무엇이 맛있다는 말인가. 친구는 연신“배고프니깐 맛있다.”
“맛있다.”를 내뱉는다. 부처님 오시는날 절밥 먹으려고 아침밥도 굶었다고 한다.
친구는 절밥이 애절했나보다.
“내가 이런 비빔밥은 몇 그릇도 사줄 수 있는데 부처님 오시는 날에 왜 절밥을 먹으려 왔어?”라는 질문에 친구는 부처님 오시는 날이면 고향 근처의 절에 가서 매년 어머니와 절 밥인 비빔밥을 먹었다고 한다. 연례 행사처럼 부처님 오시는 날만 되면 친구 어머니는 친구를 데리고 절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친구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면서“성당다니는 사람이 부처님 오시는 날에 절밥 먹으러 가야되겠냐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그랬던 친구는 이제는‘부처님 오시는 날’만 되면 절 밥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친구는 절밥이 맛있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향수와 추억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주는 추억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이며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힘겨운 인생길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한 일이다.
어느 때는 단순한 일과의 습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의 60조개 세포에 익숙해져버린 두터운 습관은 우리들에게 고유한 자신만의 추억, 고유한 자신만의 속성, 고유한 자신만의 향수를 얻게 된다. 짜증내면서 친구가 어머니와 몸에 밴 ‘부처님 오시는 날’의 비빔밥 한 그릇의 습관은 친구와 친구어머니의 고유한 감정과 자기 의식의 습관의 선물이 된 것이리라.
숨이 막힐 듯한 나날들, 풀리지 않은 인생의 숙제들, 이곳 저곳에서 출몰하는 인생의 함정들, 부품이 닳아 헐거워진 기계들 같은 나의 생활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 나를 친구는 부처님 오시는 날에 절밥을 먹자고 부른 것이다.
비빔밥뿐인 절밥을 먹자고 나를 불렀을까 싶다. 친구는 분명히 나와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매년 특별한 날에 단순한 일과의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몇십 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친구의 부름은 윤활유가 되어 내 삶을 다시 지속시킨다.
친구가 맛있게 절 밥 먹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비가 내리는 금산사를 나와서 우리들은 초록 융단이 깔린 산길을 걸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 초록색의 이파리들, 그 사이사이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도란도란 둘만의 대화가 빗소리의 리듬에 맞추어 다정한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비오는 부처님 오시는 날의 한 그릇의 비빔밥, 금산사 옆 산길의 푸르고 싱싱한 녹색의 물결은 내 추억의 창을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