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녹록지 않거나 마음을 다잡을 일이 있으면 엄마 추모관에 가곤 한다.
이번에도 비슷한 이유로 엄마 추모관에 가고 싶었다.
왕복 6시간 운전을 하기에 내가 지칠 것 같다고 하니 오늘은 웬일인지 남편이 동행한다고 한다.
주말인데도 추모관 가는 길이 막히지 않고 순조롭다. 엄마의 납골당 앞에 놓을 작은 꽃도 산다.
평생 고생하여 뼈 마디마디가 부서 저라 일했던 근 골격들이 이제는 작은 항아리에 조용히 담겨 있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갈 인생들이 왜 이렇게 발악 거리고 잘난체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사는지 엄마에게 질문해 본다. 엄마는 말이 없으시다. 한 평생을 큰 엄마에게 가족들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만 당하면서 사셨을 어머니인데 막내딸인 나에게 “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엄마 추모관에서 나오는 길에 남편에게 대학교때 함께 걸었던 캠퍼스를 들러보자고 제안해 본다.
대학교 동기인 나와 남편은 대학 졸업 후 우연한 인연이 평생 인연으로 이어졌다.
대학 수업 마치는 시간마다 담배 피우는 무리들 속에 있었던 사람, 중간, 기말고사기간에도 잠만 자다가 나간사람, 대학가요제 나간다고 캠퍼스에서 술 마시고 기타 치던 사람이 이제는 나와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대학교 후문이 현재는 버젓한 건물로 자리한 대학교 정문이 되어있었다. 대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즐비하게 서있었던 포장마차는 간데없고 건물 안에는 요즈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코인노래방, 뽑기방, 커피숍, 화장품, 다이소 등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수업 끝나고 자주 갔던 오락실은 커피숍으로 바뀌어 있었고, 자주 다녔던 상추튀김을 파는 포장마차는 없어진지 오래인 듯싶다. 남편이 친구와 자취했다던 집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대학교 뒷골목을 다니기 시작한다.
건물이 너무 변해서 자취했던 집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자취 집 앞에 있던 순대 국밥집
‘용집’은 그대로라면서 반가워한다. 용집에서 소주 한 잔에 친구들과 그 당시 시답지 않던 청춘의 고뇌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닭갈비에 맥주와 막걸리로 청춘의 노래를 나누었던 기억이 나서 우리 둘은 닭갈비를 점심으로 먹자고 결정했다. 예전에 맛보았던 큰 프라이팬에 닭, 양배추, 고구 마을 넣고 볶아주던 닭갈비를 고대했는데 요새는 속전속결인 듯이 완제품으로 되어 나온 닭갈비가 나왔다. 기다릴 필요 없이 그대로 먹기만 하면 되었다.
아쉬웠다. 시간이 걸려도 이야기 나누면서 닭갈비를 익혀 먹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말이다.
옛 추억을 토해내는 추억의 맛을 맛보지 못하는 실망감을 안고 남편과 나는 캠퍼스를 거닌다. 자연과학대학 건물을 지나 학생회관, 대학교 본부를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나와 남편이 수백 번 올라 다녔던 언덕 위에 대학 건물이 보인다. 건물이 외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이 건물에서 공부하는 이들, 가르치는 일들은 모두 변했음을 것이다. 변하는 게 삶이고, 변해야만 삶은 지속된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 모든 것이 변한다. 심지어 돌마저도" 누군가 이렇게 쓴 것을 본적이 있다.
옛 추억을 먹고자 찾아갔지만 변해버린 대학 캠퍼스.
대학 캠퍼스를 거닐면서 인생의 나머지 살아갈 날들을 위해 나라는 사람도 어떻게 변신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본다.
오래 전 대학 캠퍼스에서 밤을 새우면서 노래하던 청춘의 꿈과 고뇌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했던 청춘은 사라지고 삶에 지치고 타인으로부터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을 청춘의 고뇌로 얼룩졌던 대학 캠퍼스에 버리고 싶었다.
니도 이제는 무엇인가를 꿈꾸어보고, 즐거워하고, 맛보고 싶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