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견디었을 뿐이라고


새벽에 친구가 읽어보라고 소개한 책을 꺼내 들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라고.」 문장을 읽고 나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 같아 새벽 아침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15년을 근무한 후에 교육행정직으로 옮긴 지 8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교육 현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정책을 펼쳐 교육계를 변화시킨다는 큰 뜻을 품고 교육행정직으로 직업을 바꾸신 분도 계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직업을 바꾼 주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40대 초반부터 학생을 가르치는데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정년까지 평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민과 남편의 불안정한 직업은 나로 하여금 정년까지 직업을 가져야지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겠다는 무한 책임하에 생계형 밥벌이로 선택한 직업이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찾아왔다.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의 어려움의 주된 원인으로 교육지원청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육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쓴소리를 한 시간 넘게 하고 갔다. 무던히 참고 듣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너도 힘드냐! 나는 더 힘들다!. 교육 현장에 학생들이 있는데 왜 교육에 희망이 없다고 하는가!’라는 말을 내뱉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니체가 그랬던가.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썩게 되어있다는(니체의 말, 2010) 철학적인 문장이 갑자기 생각나서 나 자신이 썩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분의 쓴소리와 나에 대한 비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나는 아주, 빈번하게 교육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 학교에서 생긴 사안 처리, 교육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교사 혹은 학교를 바꿔 달라는 사람들의 호소 등을 듣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계층의 요구와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며칠 후면 직급은 다르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 한 분이 직장을 떠난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싶다고 오셨길래 사직서 제출은 너무 이르니, 일 년 휴직해 보고 한 템포 휴식 취한 후에 직장을 관둘지 결정해 보시라고 하였다. 하지만 직장동료는 15년 다녔던 직장을 관둘지에 대해 지난 1년 동안 고민했으며, 업무로 인한 민원인들의 쓰나미 같은 감정 폭풍을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라고 하셨다. 직장 동료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 의미 없이 내뱉는 쓴소리, 다른 사람들의 환경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적인 말,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는 말들로 인해 어느 누군가는 소리 없는 아픔을 견뎌내지 못하고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의 직장생활은 바쁘고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자리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성장(成長)? 성숙(成熟)? 하고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어떤 누군가는 고맙다는 말을 먼저 꺼내며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들, 처음부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말하는 사람들, 사람의 마음을 후려 파고 갈기갈기 생채기를 내는 비판과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교육 현장에 멋들어진 교육정책보다는 인간을 이해하는 법,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을 배워가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유 없는 분풀이 대상이 되거나, 직장 내외에서 인생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굳은살로 변해가는 쓰디쓴 경험도 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왔던 문장을 되새김질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미신 가운데 하나로 대개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현명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 정열적인 사람과 무기력한 사람들로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며, 사람은 강물과 같은 존재이다. 물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물이며,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든 역시 물일 뿐이다. 다만 강은 그쪽이 좁기도 하고 물살이 빠르기도 하며, 또 넓고 고요하기도 하며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적 특성의 싹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서 어느 때는 한 특성이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므로 같은 사람에게도 전혀 엉뚱한 특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부활' 중에서 (톨스토이 저)


내 인생의 여정(旅程) 가운데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분명 저분도 나처럼 인생의 어떤 강의 굴곡이나 물살을 타거나, 좁은 계곡을 건너고 있거나 넓은 망망대해를 헤엄쳐 가고 있을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후에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서 “교육지원청에서 교육행정직원으로 당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나는 한 일이 없다. 그냥 견디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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