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집 할머니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80년대의 대부분 가정은 간식을 자주 사 먹을 만큼의 형편이 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 삼총사였던 수경이, 영희와 나는 동네 공터에서 고무줄 치기, 공기놀이, 비석 치기 등을 하면서 방과 후를 보내곤 했다. 오후 3시쯤 되면 어김없이 우리들의 뱃속 시계는 요동을 쳤다. 빨리 뭐라도 먹여달라고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 삼총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곳을 바라본다. 수경이네 옆집인 설익었지만 조금씩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대추가 열린 대추나무집으로 말이다. 수경이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양옥집에서 살았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흐드러지게 넘어온 대추나무집의 파랗게 설익은 대추는 벌써 우리 삼총사가 다 따먹어서 없어졌다. 이제는 대추나무집과 수경이네 집 담벼락 사이에 열린 대추를 먹을 차례였다. 대추를 먹기 위한 우리 삼총사의 업무 분장은 이렇다. 나는 작은 막대기로 힘차게 대추를 때리거나 팔을 뻗어 대추를 딴다. 수경이는 대추를 바구니에 담거나 나의 몸이 비스듬하게 담장에 기댈 수 있도록 나의 몸을 붙잡아준다. 영희는 옥상에 올라가서 대추나무집 할머니의 동태(動態)를 살핀다.

대추나무집에는 할머니 홀로 살고 계셨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대추나무집 할머니 자식들은 미국에서 교수도 하고 장사를 해서 부자라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 삼총사의 눈에는 대추나무집 할머니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성공한 자식도 오지 않는 것 같아 항상 외로워 보였다. 굳건하게 다문 입에서는 때때로 한숨 소리가 담장을 타고 들려왔고 대추나무집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연이 있어 보이는 마당 한쪽에 있는 대추나무인 것 같았다. 우리 삼총사가 대추나무집의 대추를 몰래 따먹는 것이 걸릴 때마다 대추나무집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절뚝 걸어오시면서 “이놈들아, 뭐하는 거여, 익지도 않은 대추를 왜 먹고 그랴, 익지도 않은 대추 다 떨어진다”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당시 약간 달짝 씁쓸한 설익은 대추는 우리 삼총사의 최애(最愛) 간식이었다. 그날은 항상 열려 있었던 대추나무집의 안방 문이 닫혀있어 수경이와 나는 열심히 설익은 대추를 따는데 진심이었다. 그런데 언제 오셨는지 할머니가 소리 없이 담장 밑에 와 계셨고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익지도 않은 대추가 그렇게 맛있냐?”는 말씀에 나는 너무 놀라 계단의 발을 헛딛어 계단 아래로 굴러 널브러져 버렸다. 저 멀리 옥상에서 영희가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 은주야, 대추나무집 할머니 너한테 가고 계셔! 빨리 도망가!”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나의 오른팔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어머니는 일곱 자식을 키웠는데 팔목아지 부러진 자식은 없었다면서 설익은 대추를 먹으려고 그 난리를 쳤냐면서 화를 내셨다.

대추나무집 할머니.PNG

대추나무 집 풍경

하얗게 감긴 석고 덩어리가 굳어가면서 나의 팔도 함께 붙어가는 어느 초저녁이었다. 집에 누군가 방문하였다. 어머니는 “대추나무집 할머니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오셔요. 저녁 먹으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 라며 대추나무집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대추나무집 할머니는 조용히 “ 막내딸 팔은 어떤가? 많이 아팠다지. 미안허이. 유일하게 우리집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그 삼총사들 아닌가뵈. 익지도 않은 퍼런 대추를 따먹으면 탈이 날까 봐서 그리고 그 삼총사들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었다네. 우리 집에 오면 퍼런 대추보다 맛있는 간식 주려고 다가갔는디. 그 삼총사들이 내가 무서웠나비어. ”하는 말소리가 작은 방 창문을 통해 나에게 들렸다. “ 이것은 우리 대추나무에서 딴 빨간 대추잉께, 막내한테 퍼런대추 먹지말고 이것 먹으라고 허게. 말린 빨간 대추는 대추차 끓여줘. 겨울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말이어” 하시면서 빨갛게 익은 말린 대추가 담긴 봉지들을 어머니께 건넨 후 대문으로 나가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쫓아가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대문으로 달려갔는데 할머니는 벌써 신작로를 건너 대추나무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가고 계셨다. 초저녁 어스름한 빛으로 할머니의 뒷모습에 비쳐진 그림자가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절뚝 걸어가는 모습에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머니에게 ‘할머니 대추 잘 먹겠습니다. 다시는 대추 안 훔칠게요.’ 말하고 있었다.


그 다음 가을에 대추나무집 할머니집의 대추나무는 잘렸나갔고, 대추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멋있는 양옥집이 들어서고 있었다. 대추나무집의 대추는 우리 삼총사의 간식거리였는데 대추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쉽다고 느끼던 참에 어머니가 저녁 밥상에서 대추나무집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 대추나무집 할머니는 끝까지 대추나무 자르지 말라고 고집 피었다네요. 그런데 할머니 자식들이 신식 양옥집 지어서 할머니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면서 할머니 모르게 대추나무 잘라버렸다고 합디다. 할머니가 노발대발하시면서 자식들한테 그랬다고 하던디.‘이제는 어렸을 때 자식들이 대추나무 올라갔던 추억도 없어지고 대추 따 먹으려고 오는 아이들도 없을 거다, 설익은 대추라도 먹으려고 기웃거리는 아이들 목소리도 못 듣게 생겼구먼.’ 하시면서 한숨지었다고 합디다. ”. 어머니의 말을 듣고 ‘할머니는 대추 먹으려고 못된 짓을 한 우리 삼총사를 매번 기다리셨구나! 할머니가 참 외로우셨나 보다.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니 밥이 목구멍에 꽉 막혔왔다.


며칠 전에 친구가 집에서 말린 빨간 대추를 한 봉지 보내왔다. 대추로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면서 빨간 대추를 씻고 있자니 어린 시절 대추나무집의 설익은 대추, 대추나무집 할머니, 삼총사 였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욱이, 어린 시절 정성스럽게 말린 대추를 들고 절뚝절뚝 거리며 성치 않은 다리로 우리 집에 오셨던 대추나무집 할머니의 정(情)과 우리 삼총사의 놀이터를 뺏고 싶지 않았던 진심으로 어른이셨던 할머니의 배려와 사랑이 그리워진다. 나도 오랜 시간 달여야만 만들어지는 대추청을 들고 누군가에게 정(情)과 사랑을 나누어보면 어떨까 싶은 늦가을 초저녁이다. (2021년 7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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