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중에서- (오찬호 저)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복'이라는 산양들은 가끔씩 집단 전체가 맹렬히 달려다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져 죽는다. 이 양들은 수천 마리가 함께 살다 보니 앞쪽의 무리가 먼저 나가며 풀을 먹어버리면 뒤쪽의 무리들이 먹을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뒤의 양들은 자꾸만 앞으로 밀고 앞에 있는 양들은 점점 밀리다가 기어코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뒤의 양들은 비워진 공간에서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 되는데도 집단으로부터 떨어지기 두려워 악착같이 따라 뛴다. 결국 앞의 양은 뒤의 양이 미니까 뛰고 뒤의 양은 앞의 양이 뛰니까 따라 뛰는 것이다. 그래서 왜 뛰는지, 어디로 뛰는지 모르고 그저 서로 달리다가 절벽을 만나게 함께 죽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 이 시대의 모습도 이 산양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굳이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야만 하는가 우리는 서로를 밀어내야만 할 이유도 없고 악착같이 따라붙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스프링복이 아닌 이상 무턱대고 내달리기만 할 게 아니라 이유도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달리더라도 '양대 가리'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출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중에서(오찬호 저)
스프링복이라는 동물은 남아공의 상징동물이며, 점프를 잘하고 번식률이 높은 초식동물로 무리 지어 다닌다고 한다. 먹을 풀이 많을 때는 별일 없는데 풀이 부족한 경우에는 오찬호 작가가 말한 스프링복의 비극이 발생된다. 앞서 나가는 스프링복을 생각 없이 무작정 따라가다가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되어 낭떠러지를 만나 몰살당한다고 한다.
만약 내가 스프링복의 산양 무리에 속해 있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뛰고 있을까? 다리가 짧아서 악착같이 무리 뒤를 쫓는 산양일 것 같다. 스프링복의 모습에서 나는 현대인의 모습, 아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현대인의 모습은 ‘바쁘다, 바쁘다’이다. 나도 삶의 목적 없이 현실의 안주와 유익만을 찾으며 쳇바퀴같이 살다 보니 벌써 5호선으로 갈아탄 나이가 되었다. 나는 스프링복의 산양 같은 비극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나는 획일적인 조직체에서 생각 없이 앞만 달려가고 있는 '양대 가리'가 되고 싶지 않다.
< 마흔에 읽은 니체>(장재형, 2022)에서 니체는 자신을 깊이 있게 탐구하지 못하는 우리는 자신에게 이방인이며, 이런 사람을 꿀벌에 비유했다. 꿀벌이 자신의 벌통을 향해 날아가듯이 우리의 관심이 ‘집에 무엇을 가지고 돌아갈 것인가’와 명사형의 삶인 성공, 명예, 돈, 사랑, 권력 등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동사형의 삶을 살라고 한다. 동사형의 삶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행동하는 삶을 말하고 있다. 세계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는 동사형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한다. 명사형의 삶도 동사형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들이지만 니체의 말에 따라
'일단 멈추고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로 했다.
”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
” 무슨 일을 할 때 나는 몰입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
” 인생 후반전에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 “
나의 답은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해서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라. 누구나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배워보지 못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와 소통하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