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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독립영화 '파마'와 이란희 감독

독립영화 ‘파마’를  비 오는 오후에 보았다. 

개인적으로 이란희 감독을 좋아한다. 이란희 감독님이 배우로 나왔던 독립영화 ‘낮술’에서 이란희 배우를 처음 만났다.  이란희 배우가 나왔던  재미있었던 낮술의 장면을 되새김질하고 싶다. 


   낮술에서 주인공과 정선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후 강릉 가는 고속버스에서 옆자리에 함께한 주인공 혁진과 이란희 배우의 대사들은 나에게 ‘낮술’ 영화의 명장면이었고 재미있었다.  이란희 배우가 낮술 주인공(혁진)에게 관심을 가지고 ‘수작?’을 걸려고 계속 질문하고 MP 쓰리에 담긴 음악도 들려주면서 혁진과 썸씽을 만들려고 하지만 혁진은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란희 배우가 혁진의 이상형은 아닌 듯싶다. 혁진이 잠을 청하고자 하자 이란희 배우가 누구엔가 ‘개새끼’, ' 좆같은 새끼‘ 욕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연기하는 이란희 배우에게 난 반해버렸다. 그리고 이란희 배우의 다른 대사들도 짧지만 울림을 주었다. 


- 낮술에서 주인공(혁진)과 이란희 배우의 대사- 

’ 봄날은 간다‘ 영화 촬영지인 정선 버스터미널에서 주인공 혁진과 이란희 배우가 만난다. 

이란희: 저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래요.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기를 혁진에게 건네준다. ” 잠깐만요“ 하면서 도도한 표정으로 발을 꼬고 눈을 

감는 포즈를 취한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우며 혁진은 사진 셔터를 누른다. 


< 버스 안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

이란희: 또 만났네요 강릉 가세요? 저도 강릉 가는데..

혁진: 네. 그냥 볼일이 있어서 

이란희: 저 원래 서울 사람이거든요. 강릉 갔다가 차가 고장 나서.. 서울에서 일하다가 휴가받아

  가지고 차 가지러 가요. 어디 사세요?

혁진: 저도 서울이요 

이란희: 언제 가실 건데요?

혁진: 아직 정확히는 안 정했어요. 

이란희: 멋있다. 기약 없는 여행이라.( 이후에 멋있는 대사도 있었던 것 같다.)  저와 같이 갈래요. 제가 서울에 데려다 드릴게요

혁진: 괜찮아요. 제가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강릉에서 친구 만나기로 해서 –중략-

이란희: 음악 좋아하세요? 음악은 원래 CD만 사서 듣거든요. 어떤 사람이 여기에다가 음악을 넣어주더라고 요. 나는 그 사람 싫어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짜증이나요! 이거 한번 들어보세요. < 억지로 이어폰을 혁진 귀에 끼워주는 이란희 배우>

이어폰을 끼고 들리는 음악 특이한 음악 속에서 이란희배우는 무슨 말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이란희: 삶이라는 게 슬플 때도 있지만 기쁠 때도 있쟎아요. 정말 눈이 시리도록 기쁠 때도 있고, 

 눈이 떨리도록 슬플 때도 있어요. 

혁진: 특이하네요. 음악이.. 

이란희: 정말 좋지요? 여기랑 여기가(혁진의 가슴과 자기 가슴을 만지면서) 만나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는 세상 살면서 너무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돈만 보며 살잖아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뭘까요? 예술이 필요해요. 시. 시 좋아해요. 하이쿠라고 아세요? 일본에서 가장 짧은 시가 있어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가 미쳐버렸네

혁진: 죄송한데요. 제가 한숨도 못 자서 피곤해서 그런데 먼저 잠 좀 잘게요. 죄송합니다. 

이란희 : ( 안전벨트를 매다가 갑자기) ” 개새끼! “

혁진: 네?

이란희:  뭐요? 왜요?

혁진: 어.. 아니요.

이란희: (음악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우면서) “ 좆같은 새끼! ”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한 남자에게 아니면 세상의 누군가에게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에 거침없이 욕을 하는 이란희 배우를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출처: 네이버 위키 

 

   낮술 독립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이란희 감독이 2009년 단편 극영화 ‘파마’를 만들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주인공에게 시어머니가 파마를 시켜주는 내용을 담은 독립영화였다. 

18분이었지만 ‘파마’영화를 본 후에 180분 이상 ‘다문화 가족, 이주민 여성의 삶’이 공명으로 다가왔다. 

   

   머리를 파마하고 싶지 않은 베트남에서 온 주인공 로안에게 ‘이쁘게 해줄게’라는 말로 폭력을 행하는 시어머니,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로안에 대해, 로안의 남편에 대해 내뱉는 성희 록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게 행하는 동네아  주머니들의 언어적 폭력성.

    '파마' 영화는  한국으로 이주해온 분들에게 행하는 폭력적인 비언어적과 언어적 행동들은 동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보다 우리가 우월하다는 자의식에 도취되어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언어적 폭력성 앞에 마음이 부끄러웠다. 


   긴 머리를 깎고 싶지 않은 로안의 눈물과  로안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시어머니 스타일의 옷을 사 와서 입히는 시어머니의 배려 없음. 미장원이라는 공간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폭력적인 험담.  로안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한국으로 오게 되었지만 ‘빵’‘밥’이라는 물질적 조건보다 중요한 인간이라는 인권이 빼앗겨버린 로안의 미장원에서 눈물이 애처로웠다. 

   '파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집으로 향하는데 마주하게 된 무수한 계단은 한국에 온 로안이 앞으로 마주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시련, 어려움, 아픔을 상징하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무거운 가방을 들어 올리는 로안의 모습에서 나는 스크린으로 들어가서  로안의 가방을 함께 들어주고 계단을 오르고 싶었다. 파마는 그런 영화였다. 나에게는. 

파마,  감독: 이란희 출연 윤보라, 윤순자, 김정아, 송연수


   파마한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매고 무거운 가방을 한 계단씩 들어오시면서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로안의 뒷모습은 같은 여자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자아내었다.  

   이란희 감독이 '휴가'라는 장편영화로 다양한 상을 휩쓴 후 인터뷰한 글을 우연히 읽었다.  

제가 관심이 있어 하고 마음이 가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적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하는 창작행위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자기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고 효율적으로 발언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아요. 비록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이지만 제가 가진 기회를 통해 그분들 애기를 영화나 연극이라는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 훨씬 전달력이 높지 않을까요?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내주시기 위해 '비록' 독립영화이지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 영화를 찍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유튜브,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수많은  미디어 내용들로 인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일들을  획일화시키고, 단일한 맛이나 생각으로 즐거움을 강요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내주시고 계시는 이란희 감독님을 존경하며, 비오는 오후에 누군가와 낮술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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