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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1평짜리 공간의 삶

   나의 직장 생활에서 나의 자리는 몇 평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컴퓨터 모니터 2개, 키보드, 전화, 책꽂이 등이 있는 사무실에서의 공간의 평수는 1평 정도 될 것 같다. 

     작은 평수 안에서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교육계획서부터 수많은 공문서, 통계자료, 실태조사, 답변서, 크고 작은 공문서, 인사 업무 등의 많은 과제들 외에도 화를 내면서 전화하는 민원인들, 질문하는 분들, 정책 개선을 요구하거나 현장의 문제 등을 해결해달라는 분들의 전화 응대도 하고 있다. 어제는 갑자기 1평의 사각형 안에 갇혀 앉아있는 나 자신이 갑갑하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직장인들이 경제적 자유만 있으면 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한다. 그러데 경제적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 정도의 소득을 직장 생활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으면 경제적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몇몇 정년퇴직하신 분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일을 하고 싶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고, 너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으시다. 그분들은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도 연금이나 다른 불로소득으로 경제적으로 자유를 느낄만 한데도 ’일‘이하고 싶다고 하신다.

   누군든지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가장 힘들고, 벗어나고 싶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나 폼 나는 일들로 보면서 부러워한다. 자기 자신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욕구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블로그도 용기 내서 시작하였지만  ’타임 푸어‘ 라는 것에 구속되어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몸을 일으켜서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핑계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거나, 진상인 누군가로부터 감정의 시달림을 받은 날은 퇴근 후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한자라도 써보자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장석주 작사님의 말을 인용하면 

 인생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놀 시간의 균형이 생기면 문제가 생긴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꽃 한 묶음, 음반, 책 한 권을 사는 따위의 작은 사치를 주저하지 마라. 평범한 날들에 겪는 사소한 일들에게 만들어지는 아늑한 감정의 총체가 곧 행복이다. 물질을 따르고 규모를 키우는 삶의 압력들에 저항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가다 막다른 골목과 마주친다. 돈, 권력, 지위, 물질만을 따르고 그것에 몰입하는 것은 낡은 인생의 방식이다


라고 하셨는데... 헤벨은 1평짜리 작은 사각형의 직장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직장 평수는 넓어지기는 하더라만 1평짜리 작은 사각형에서 무엇을 추구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가? 요즈음 많은 고민에 쌓여있다.  행복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아는 중년의 헤벨은 ”나의 삶은 달리는 기차에 매달려서 “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기차의 기관장까지는 아니어도 헤벨은 달리는 기차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차 안에서 편안하게 앉아 지나가는 풍경들을 유유 자적하며 구경하고 싶은데 인생이라는 것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과 좀 거리를 두고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직장 다니는 분들이 주말에는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를 애청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직장동료 퇴근 후 1평짜리 공간에서 펜 드로잉(색칠은 따로 해서 어반스케치는 아닌 것 같음)

   1평짜리 작은 사각형의 나의 공간에서 오늘도 나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돈이라는 것을 벌기 위해서  묵묵히 삶을 견디고 있다. 며칠 전에 1평짜리 이 자리를 얻기 위해서 높은 경쟁률 시험을 뚫은 1차 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것을 보았다. 1평짜리 공간에 붙은 직함과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한 1차 시험의 낙방자들에게 나의 말들은 ’ 배부른 자의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나는 1평짜리 공간을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돈은 추상적인 행복이다. 현실에서 더 이상 구체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돈에 모든 것을 바친다.‘라고 꼬집고 있다. 하지만 보데릭이란 사람은' 돈으로 행복을 살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어디에서 파는지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비판했고, 볼테르는 '돈으로 행복을 살수 없지만 돈이 불행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거창한 철학자들의 돈의 의미를 떠나서 자본주의 노예일 수밖에 없는 헤벨은 오늘도 1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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