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헤벨의 단상: 나이 집착주의

   며칠 동안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치과병원 가기가 무서워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오늘 치과를 방문했다. 치료와 약처방을 받아왔다.  이가 아프니 간단한 샐러드가 먹고 싶어서 치과병원 주위 상가를 돌아다녀보았다. 베트남쌀국수가 입맛을 댕기기는 했지만 집에서 먹고 싶은 마음도 있고, 포장해 가면 쌀국수가 약간 퍼질 것 같았다.  헤벨은 샐러드로 먹기로 했다. 그래서 샐러드 가게 집으로 들어갔다. 

    10평 남짓한 '샐러드 & 타코' 가게였으며  다양한 샐러드와 남미 음식인 타코, 나쵸등을 파는 가게였다. 11시쯤이어서 가게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르신 한분이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져 있는 땅콩을 묶고 계셨다가 내가 가게로 들어가니 ” 000아! 손님 왔어 “ 하시는 말을 주방에 있는 젊은 사장님이 나의 주문을 받아주셨다. 


   젊은 사장님은 어르신의 아드님 같았고, 주방 안 쪽에는 60대의 여성 어르신은  음식을 준비하고 계시는 듯싶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구나! 짐작이 되었다. 


 나는 닭고기 샐러드 로우를 주문했다. 금방 나올 줄 알고 식당에 앉아서 내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포스트기에서 계속 '000 민족 주문입니다 '라는 소리가 울렸다. 작은 가게인 듯싶었는데 장사가 잘 돼 보였다. 가게 밖에는 음식배달하시는 분이 배달음식을 기다리고 계셨다. 

    포스트기의 소리와 음식 배달하시는 분이 대기하는 모습에 내가 주문한 음식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헤벨의 눈이 가게 되는 분이  60대 중반의 어르신이었다. 30개 정도 작은 비닐에 소량으로 배부된  땅콩봉지를 묶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비닐의 끝만 묶는 단순작업이었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한 개의 땅콩 비닐을 묶는 일에 진심이셨다.  비닐봉지 끝을 여러 번 꼬셨다. 꼬는 시간이  오래 걸리셨다. 그리고 마무리 묶음 작업도 누군가 쉽게 풀어줄 수 있도록 오랜 시간에 걸려 마무리 작업을 꼼꼼히 하시고 계셨다. 

   20분가량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헤벨은 할아버지의 단순작업을 보고 있었다. 묘한 의식 같은 그러면서도  ' 단순 작업에 진심이시면서 작업이 참 느리시다'라는 것과 가족분들이  할아버지에게 일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런  단순작업은 나 같으면 3분 만에 끝냈을 것 같은데... 봉지 한 개 묶는데  시간이 참 오래

   걸리시는 구나” 

‘ 나이 들면 일하는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건가? 그래서 사회에서 신중년이어도 직장을 가지는 것이

   힘든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던 헤벨은  ' 나도  나이 집착주의에 너무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최근에 읽었던 '질문 빈곤 사회'(강남순 저) 나왔던  ’ 나이 집착주의‘라는 용어는  대한민국이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나이에 집착하는 사회는  사회 혹은 관계의 서열화와 위계주의를 만들어서 재생산하게 되며,  특정한 나이에라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성향, 개성, 가치관 등과 같이 상관없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제로 만들어 그 나이대면 당연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편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MZ 세대 성향, 가치관, Y 세대, 신중년 세대 등의 나이집착으로 만들어진 용어는 그 나이대에 해야 하는 것을 균일화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나이집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또는 세월호 참사 등 특정한 사회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같은 세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의식이란 개인의 가치관, 인간관, 역사관 정치관 등 다층적 요소들에 의해서 형성되는데 나이 혹은 세대가 사람들의 혁신성과 보수성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나이 집착주의는 우리의 사유를 단선적으로 만드는 균질성의 가치를 강화하는 부정적 기능을 가지고 한국 사회가 벗어나야 할 지독한 사회적 질병이라고 하였고, 기술과 경제 여역에서 선진국 반열에 들어셨을지 모르지만 한국사회가 나이집착주의에 갇혀 있는 한 정치, 법, 문화, 종교, 학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글들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이집착주의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건만  식당에서 어르신의  단순한 작업의 느림의 미학과 한 가지 작업에 진심 어린 손길을 ’ 나이가 들면 ‘이라는 나이집착주의의 맹점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직장에서 젊은 후배들의 행동이나 일처리 등이 나의 사고와 경험의 폭과 맞지 않은 경우에 ' MZ 세대 '라서라고  무심결에 말해버릴 때도 있다.  같은 MZ 세대들이라도 다양한 가치관, 사회환경에 따라 균일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이집착주의에 빠져 있는 나는 그 나이대면 비슷한 가치관, 행동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단정 지어버린다.  책의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성찰이 필요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20분간의 기다림 속에서 어르신의 진심 어린 손놀림의 미학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참에  주방에서  나온 여자 어르신이 나와서 남자 어르신에게 " 아고.. 꼼꼼히도 잘 묶으셨네요. 감사해요 “라는 말씀에 씩 웃으시는 어르신의  미소를 보았다.  

   샐러드 포장 봉지를 들고 나오는데 가게 문 앞까지 마중 나오시면서  " 또 오세요!’"하시는 여자 어르신의 인사에  치통의 고통이 잠깐 없어지는 듯했다. 

                           [ 질문 빈곤 사회] (저자 강남순) 출판행성 B 발매일: 2021.10.29.







작가의 이전글 헤벨의 단상: 약속할 권리와 지킬 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