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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단상: 옥상의 민들레꽃

   박완서 작가님의 책들을 통해 헤벨은 책 읽기라는 매력에 빠졌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은 읽기도 편하고 읽고 나면 마음속에 뭉클한 무엇인가가 일어난다. 행복감이라고 해야 하나,  꽉 채워진 느낌,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도 하게 된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은 거의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단편 소설인지 동화인지 박완서 작가님의 책 ‘옥상의 민들레꽃’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다. 

출처: 교보문고(저자: 박완서, 출판사: 이가서, 2003.10.20.)

  박완서 작가님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본 현 사회의 문제점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책이었다. 


 ' 옥상의 민들레 꽃'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궁전이라는 서울의 비싼 아파트에서 노인 2명이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파트 주민들은 노인 2명이 떨어져 자살한 안타까움보다는 자살하는 아파트라는 오명으로 인해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 회의를 개최한다. 노인 2명의 죽음에 대해 숙연한 자리가 아니고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노인을 만들기 않기 위한 대책 회의 시작 전에 노인 두 명에 대한 그 짧은 명복의 시간을 가지지 않고 있다. 회의 이름부터 짓는 것에 골몰하는 사람들의 모습, 노인 두 명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원인이 할머니들의 내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말들, 그리고 교수라는 지식인이 말하는 잘난체하는 단어들. 


    어른들의 노인 자살방지 대책 회의에서 베란다에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창살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법들이 제시하는 와중에 어린 소녀는 할머니 두 분이 옥상에서 떨어진 이유를 알고 있기에 ‘저요! 저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지만 어른들의 억척스러운 만류와 비난의 소리에 할머니들이 자살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주인공 소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죽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할머니들이 옥상에서 떨어진 이유를 소리 높여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 앞에  노인 두 분이 죽은 이유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쓸모없게 여기고, 없어져 주었으면 하는 눈짓, 몸짓 혹은 말이라는 것이었다고 소녀는 할머니들이 죽은 이유를  말한다. 


    최근에 나의 일상의 서사에서도 지역의 아파트값이 몇 달 사이에 얼마나 올랐다는 사람, 아파트값이 폭락했다는 사람들, 모임에서 소위 말하는 지식층들도 그때 어느 지역 땅을 사지 못해 너무 억울하다는 말들을 듣곤 한다. 사람의 가치가  그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 끌고 다니는 차, 가지고 다니는 명품 백 개수로 정해지는 직장 몇몇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마음이 씁쓸해질 때도 있다.  무엇들이 한국 사회의 가치로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듯싶다. 이런 말 하는 나를 누군가는 ‘여우와 신포도’ 효과처럼 너는 평생 몇십억 되는 아파트에 못 사니 그런 말을 한다고 할 수 있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집단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예전에 지속되어왔던 관습들, 학생들의 능력이 성적으로 매겨지는 사회. 더불어 익숙하고 편안한 관계망 속에서 생각이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어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 확증편향성도 주의해야 한다. 


  확증편향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말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 생각의 출처조차 묻지 않자 채 기존 생각을 고집하는 경향이 짙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이 생각을 바꾸는 딱 그만큼만 이루어지는 것인데 구성원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할 뿐 수정하지 않으니 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처럼 고집의 성질을 가진 생각과 확증편향과 같은 경향이 결합되면 생각의 세계는 유동적이지 못한다. 


   아파트값에 목 매인 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긴 자신들이 가지는 비싼 아파트값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살한 할머니들의 쓸모없는 패자의 탈락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정의 내리는 '옥상의 민들레꽃'에 나오는 궁전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헤벨의 모습도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헤벨도 인간관계에서도, 업무 면에서도  확증편향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업무처리할 때도 새롭게 변화되는 것에  맞추어야 하는데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고집하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헤벨은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되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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