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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벨의 여행: 이집트 여행기(2탄)

   기자 피라미드에서 시카 라로 이동하려니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택시를 렌터했다. 조세프 왕의 피라미드는 쿠푸왕 피라미드에 비하면 작은 피라미드였지만 그 나름대로 웅장함을 갖추고 있었다.  엠피스 박물관을 가기 전에 시카라 지역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집트 정식으로 바비큐 치킨 요리가 나왔고, 식당 옆에 화덕에서 이집트 여인이 직접 굽고 계셨다. 인도의 난과 비슷한 빵이었다. 이집트 여인분과 사진 한 장 찍었다. 무척 수줍어하셨다. 

빵굽는 아름다운 이집트 여인 

   멤피스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멤피스(Memphis)는 이집트 고대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카이로에서 남쪽 25Km 떨어져 위치해있다. 멤피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 도시로 알려져 있다.  멤피스 박물관을 방문한 가장 큰 목적은 람세스 2세(Ramesses II)의 거대 석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멤피스 박물관 야외에도 람세스 2세 거대 석상이 서있다. 실내에는 누워이는 람세스 2세 석상이고, 야외에 서있는 석상은 람세스 2세의 35세 때의 라고 하였다.  1912년에 발견된 10m 정도의 스핑크스가 있었다. 기자의 스핑크스와는 달리 완전한 스핑크스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람세스 2세 거대 석상 
멤피스 박물관 스핑크스 앞에서 

   멤피스 박물관을 보고 난 후 렌터한 택시 운전사분이 보이지 않아 30분 동안 기다렸는데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유명한 파피루스 가게를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가게에서는 파피루스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판매까지 하는 가게였다. 파피루스의 재료인 파피루스의 밑동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꽃이 태양신을 받들고 있는 모양의 꽃봉오리라고 한다. 파피루스 만든 분이 영어로 설명을 하셨는데 정확히 해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파피루스는 태양신과 관계있는 풀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파피루스로 만든 그림을 사라고 권하였으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사지 않겠다고 했더니 가게를 소개해 준 택시운전사가 화를 내셨다. 왜 화를 내시는지 알 수 없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면서 호텔 앞까지 태어다 준다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처음 택시 탄 곳에 내려준다고 하였다. 어디를 가든지 이런 분이 계신다. 


   카이로에 3일 동안 머무른 후에 아스완으로 이동하기 위해 람세스 기차역에 도착했다. 저녁 8시에 람세스 역의 풍경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람세스 역 안에 돗자리를 깔고 모두들 이슬람 의식을 위해 방송에 맞추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기차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너무도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잖니 자신들이 믿는 신들로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각 와 이념은 쉽게 무너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람세스 역에서 10시 밤기차를 기다리면서 이집트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의 삶의 모습이 보인다. 언어와 피부 색깔이 다르지만 바삐 어디로 향하는 사람들, 물건 파는 상인들의 모습, 가족들이 웃으면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들 삶의 환경과 장소는 다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을 수밖에 없다. 

늦은 저녁 람세스 기차역 풍경 


   저녁 10시에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12시간 걸린다고 기차판매원이 말했는데 현재 시각 정오 12시가 넘었다. 14시간이 넘어가는데 아스완에 도착하지 못했다. 아직도 기차 안에서 나는 이집트 할머니 한 분과 중장년의 2명의 남성, 혼자 여행 오신 백인 여성분들과 마주 앉아 무심히 밖을 보고 있다. 인도 여행의 밤 기차여행에서는 창문이 깨져서 밤새 내내 추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집트 열차는  에어컨을 너무 켜놓아서 마치 냉동실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이집트 열차 화장실과 인도 화장실 열차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변기통이 뚫려있다. 즉, 사람들이 본 인분은 바로  땅으로 돌아간다. 기차에서 14시간 조금 넘게 기차여행으로 오후에 팔루카를 타고 키치나섬과 판티네섬을 계획하였으나 가지 못했다. 


   그다음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아부심벨로 가는 투어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러 외국인들과 함께 3시간 조금 넘게 사막을 지나 아부심벨에 도착하였다. 람세스 2세 석상 4개가 제일 먼저 보였다. 현시욕이 강했던 람세스 2세의 욕구만큼이나 대신전은 대단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성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아부심벨은 성소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욕망의 표현과 내세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 복합적으로 보여진 장소였다. 소신전은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파테리를 위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네파테리의 석상은 람세스 2세보다는 작았지만 크기가 대단했다. 

헤벨이 찍은 아부시벨 신전 

   개인적으로 아부심벨을 옮긴 현대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집트의 낫세르 정부 때 나일강의 홍수조절과 수력발전을 위해 아스완댐을 결정하면서 아스완지역과 상류지역의 문화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해졌고 그당시 아부심벨 신전도 수몰 위기에 있자 유네스코가 세계로부터 기금을 모아 아부심벨 신전과 펠레 신전을 상부로 이전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이전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원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210미터 떨어진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아부심벨 신전의 유물을 30톤 정도씩 1천여 개의 조각으로 잘라 옮겨서 조립했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원조 및 지원 덕분에 내가 아부심벨 신전을 볼 수 있었다. 


    룩소르 신전은 나일강 동쪽 둑에 위치한 대형 고대 이집트 신정인데 파피루스 기둥이 특히 하였다. 높이 16m의 원주열은 주랑 측벽이 인상적이었다. 아몬 신전은 람세스 2세에 의해 지어졌으며 신전의 중앙부 첫 번째 기둥은 양옆의 기둥보다 낮아서 모래 폭풍이 쌓인 후에 중앙 부분과 맞게 지붕을 만들어서 사막의 모래 폭풍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만들어져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신전과 연결된 신전으로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의 아프리카 적들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신전이라고 한다. 람세스 2세의 부인은 40명이었으며 자녀는 17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나온 보물은 모두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으로 보내졌으며, 성스러운 연못에서 파라오들이 신에게 경배를 드리고 전에 목욕을 한 후에 신께 경배를 드렸다고 한다. 





   룩소르에 머물렀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라면 기차역에서 만난 이집트 청년이었다.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시간에 맞추어 카이로에 가기 위해 여행 기차를 예약하러 갔는데 5일 동안 기차로 예약이 모두 된 상태라고 창구 판매원이 말했다. 3일 후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 이집트 청년이 다가와서 자신이 표를 끊어줄 테니 자신의 호텔에서 묵으라는 거였다.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 5일 동안표가 다 예약이 되어있다는데 당신이 표를 어떻게 구할 거냐고?“ 되물었지만 그 청년은 다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믿으라고 하였다. 청년과 거래를 하고 청년이 소개한 호텔로 갔다. 썩 좋은 호텔은 아니었지만 가격 대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하자 청년은 주스를 대접하고 내일 아침 일찍 가서 기차표를 구해야 하니 오늘 밤에 돈을 달라고 했다. 영수증을 받고 돈을 건네주었다.  솔직히 의심이 들었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그 청년 한 사람밖에 없었다.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9시쯤에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더니 그 청년이 표를 구했다면서 카이로 가는 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표를 끊기 위해 밤새 내내 기차역에서 보냈다고 했다.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을 나 대신 기다려서 표를 구한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청년이 이름을 물어보니 ‘압둘라’라고 하였다. 꿈이 뭐예요 라는 나의 질문에 ”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였다. 내가 ” 왜 의사가 되려고 하냐고? “ 묻자 압둘라는 해맑게 대답했다. ” 단지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출세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헌신적인 의도도 아니고 단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압둘라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묘미는 생각지도 못한 압둘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며, 우연스럽게 마주친 압둘라 청년은 축복받을 거라고 깊게 믿고 있다. 

    압둘라의 덕분에 나는 카이로행 1등석을 탈 수 있었다. 1등석 기차 한 칸에는 6명이 탈 수 있었다. 나와 동승하게 된 이집트 가족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가족인 듯싶었다. 눈만 보이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검은 천으로 된 부르카를 쓴 여자분과 남편, 늦둥이 같은 7살 소년과 함께 몇 시간을 같이 가야 했다.  여성분에게 먹을 때도 천을 쓰고 먹으시니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내가 편하게 드시라고 했는데 절대 얼굴은 보여주지 않으셨다. 잠자기 위해 기차 안의 불이 소등되자 부르카를 벗으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 나의 눈치를 살피시는 것 같아서 그냥 자는 자는 척했다.  밤 기차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에 비치는 부르카를 벗은 이집트 여인의 미모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할리리 바자르 풍경 


할리리 시장 상인한 분이 점심식사 중에 나를 환대해주셨다. 

   카이로에 도착한 후 이집트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타델지역의 '할리리'바자르를 방문했다. 카이로에서 제일 큰 시장이라고 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KFC를 갔는데 한 이집트 청년이 유창한 한국말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 왔다. 어디에서 왔냐고 한국말로 묻길래 한국 어디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자신도 한국에서 일하다 잠깐 이집트 왔다면서 외국인 등록증 카드를 보여주었다. 김포의 왕 갈빗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부모님 뵙기 위해 1달 동안 휴가 받아서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7년 일을 하고 사장님께 인정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이집트보다 한국이 더 살기 좋다고 한다. 한국에 처음 1년 동안 지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소주와 김치가 훨씬 맛있고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하였다.  왕 갈빗집에서 일한 이집트 청년은 이집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서 한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나보고 결혼했냐고 묻길래 ” I’ m married“라고 하자 눈이 동그래지면서 이집트 여성들은 혼자 절대 외국 밖으로 못 나간다고 하였다. 아버지, 남편의 허가서를 받아야만 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여행기록지 마지막 문장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한다. 

' 1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이해심과 미덕을 갖추어 얼굴에 풍요로움이 가득찬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온 여행에서 색다른 문화,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세상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나만의 여행이었다. '  라고 적혀져있다. 


     10년이 훨씬 지난 싯점에서 현재의 나의 모습과 나 자신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해보니 생각만큼  미덕을 갖춘 얼굴도 아니며, 이해심을 갖추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는 미약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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