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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SeJin 코리아세진 Sep 08. 2018

2016년 1월, 건명원에 뛰어들다.

건명원 2기 서류전형 도전기 - 1 

건명원은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전형을 거쳐 매년 한 기수, 약 30여명의 청년을 선발하고 있다. 매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는 보통 아래 두 가지 질문을 심도있게 표현해야 한다. 


1. 지금까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을 분석/평가하시오.

2.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인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려 합니까?


그런데 제출한 서류에 이름, 성별, 출신학교 등의 개인정보가 담기면 가차없이 탈락시킨다는 살벌한(?) 규정이 있다. 2016년 1월, 민간사회로의 첫 발을 준비하던 나는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당시까지 품고 있었던 생각을 거침없이 뿜어냈다. 


2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다시 펼쳐보니 얼굴이 살짝 화끈거린다. 한편,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건명원 입학을 위해 펼쳐냈던 삶의 조각을 이 곳에 남겨두려 한다! 



1. 지금까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을 분석/평가하시오.


□ 소   개

 저는 현역 육군 대위이며 2016년 2월 29일부로 전역합니다. 4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2011년에 소위로 임관했고 경기도 연천 28사단에서 최전방 GOP소대장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예산과 자금을 관리하는 재정장교가 되어 강원도 고성의 22보병사단에서 세출예산의 집행과 결산을 담당했고, 지금은 강원도 원주의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군인복지기금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 유년 / 학창시절

 군인가정에서 태어나 전국 곳곳에서 생활하며 유치원 시절부터 매일 조간신문을 읽었고, 백과사전·위인전·역사만화 등을 즐겨 읽으며 사람과 사물 그리고 지리 등 다방면에 대한 호기심이 날로 커졌습니다. 육해공군이 지닌 각종 무기체계의 이름과 성능 그리고 운용방법을 달달 외울 정도로 군대와 안보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독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자는 삶의 목적을 품게 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의사 ․ 군인 ․ 국가지도자라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일개병사의 이름까지 모두 외우시고, 아픈 병사가 있으면 새벽에라도 들어가 확인하시는 등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인간중심의 리더십을 본받았습니다. 또한 새벽 불시순찰과 각종 훈련위문에 따라다니고, 부대에서 장병들과 어울려 지내며 그들의 어려움을 아버지께 넌지시 말씀드려 부대지휘에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2년에 한 번꼴로 전학을 다니면서도 학창시절 매 학년 학급회장에 선출되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남달라 다양한 마찰을 겪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는 약한 친구들을 유독 괴롭히는 축구부원을 제지하다 얻어맞아서, 입술 윗부분이 이빨에 뚫렸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그 흉터는 제게 의협심을 절제하고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학여행에서 몰래 음주를 한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대라는 학생지도 선생님의 강요에 굴하지 않다가 수업에서 쫓겨나고, 징계를 받을 뻔 했을 만큼 의리도 중요시 여겼습니다.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온 친구들의 공부계획․방법 등을 조언하고, 도서관에 함께 데려갔습니다. 시험을 앞둔 자율학습시간에 친구들을 모아서 몇몇 암기과목의 요약강의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적중된 문제를 맞았지만 정작 제가 틀린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괜히 에너지를 써버린 탓은 아닌지 회의도 느껴졌지만 제 노력의 부족을 탓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을 끝까지 도우며 교학상장(敎學相長)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우주로 여기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지켜내고 국가를 방위하는 군인의 길에도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결국, 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특수목적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 가슴엔 조국을, 두 눈은 세계로

 4년 간 후배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직책과 지휘관 직책 등을 맡으며 다양한 리더십경험을 쌓았고, 각종 규정과 삼금(三禁)제도를 지키며 신독(愼獨)을 몸소 실천하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군사적 전기전술을 길렀습니다. 많은 체험과 독서를 통해 리더십의 요체는 바로 인격이란 것을 깨달아 수양했고, 매 학기말에 실시하는 ‘동기생 상호 인성평가’에서 최고수준의 평가를 계속 받았습니다. 또한 경영학을 전공하고 문·이과과목을 두루 이수하며 치우침 없는 공부를 했습니다. 매년 방학 때는 해외로 나가 일본․태국․말레이시아․유럽 등을 다니며 견문을 넓혔고, 4학년 때는 종합성적우수로 선발돼 태국의 동일교육기관을 교환방문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터키․태국생도들의 한국방문을 직접 인솔하며 국제적인 소통감각과 친화력도 길렀습니다.                         

모교의 동기생 상호 인성평가(학기별 실시)

  2학년 때 주도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미국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했고, 며칠 동안 각종 권력기관과 언론사 사이트에서 KOREA를 검색해봤습니다. 그런데 미국의회도서관의 사이트에 오른 대한민국지도에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동해가 없었습니다. 곧바로 사이버외교단인 반크에 오류를 바꾸기 위해 힘써달라고 메일을 보냈고, 이틀 뒤 미의회도서관이 반크의 요구에 따라 한국의 지도를 울릉도와 동해가 표시된 것으로 바꿨다는 뉴스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소한 관심과 우연한 발견이 대한민국을 위하는 일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고, 작은 변화가 모이면 큰 변혁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중국과 일본에 쏠려있었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대한민국 지도 오류 수정

 그렇게 4년 동안 “뜨거운 가슴엔 조국을 품고, 빛나는 두 눈은 세계로 향하라!”는 모교의 모토를 읊조리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는 신조를 되뇌며 심신을 굳세게 단련했습니다

 

□ 호국간성(護國干城)     

 임관하여서는 대한민국 최전방에 배치되어 GOP소대를 지휘했습니다. 매일 차가운 철책을 붙잡고 남북이 극명히 갈린 모습을 보며 분단현실에 깊은 비애를 느꼈습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경계 작전과 불규칙한 수면리듬으로 인해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고립된 채로 보내야 하는 1년이란 시간은 흘러갈 기미도 없었습니다. 갖가지 고뇌와 공허감에 빠져 의욕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존경해오던 사람이 ‘지혜를 나누고,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로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서 양질의 고전을 저가에 판매하고, 일정부수는 사회 곳곳에 기부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때마침 소초에 있는 병영서적 중에 인문고전독서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에 급급했던 제게 일대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불규칙하고 짧은 수면시간을 다시 쪼개서 고전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펼친 플라톤의 《국가》는 첫 페이지부터 숨이 턱턱 막혔고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아 울분에 차기도 했습니다. 결국 필사를 시작하자자 내용이 서서히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줄였기에 피곤할 법도 했지만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은 오히려 몸과 정신에 활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국가방위자로서 지녀야 할 철학적 사고능력․자질․역할 등에 집중해 읽으며, 최전방을 지키는 방위자로서의 사명감이 커졌고, 자질을 더욱 길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뒤이어 《논어》를 읽으며 인본주의 사상의 극치를 느꼈습니다. 특히 제10편의〈마구간이 탔다. 공자는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하기를 “사람이 상했느냐?” 묻고 망아지는 묻지 않았다.〉(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라는 구절은 소대원의 잘못과 실수를 따끔하게 질책하고 얼차려까지 주던, 아량을 베풀지 못하던 저를 각성시켰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근무투입 중에, 한 병사가 새벽에 모두가 먹을 주먹밥이 든 전기밥솥을 땅에 떨어뜨려서 찌그러졌습니다. 잔뜩 긴장한 소대원들은 제가 버럭 화를 내지는 않을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傷人乎 不問馬’가 떠올랐고, 사색이 된 병사에게 “안 다쳤어? 밥솥은 나중에 고치면 돼.”라고만 했습니다. 비록 의식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독서로 비롯된 큰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매일 고전을 읽고 생각하며 제 말과 행동을 성찰하다보니, 가슴의 텅 빈 공간들은 지혜의 글귀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소대원들과 많은 추억을 쌓으며 최우수소대로 선발되었고, 1년간의 GOP작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지도자와 방위자의 역할과 능력을 구분한 내용은 당시 세운 인생계획의 근본을 뒤흔들었고,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저의 현실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보수와 연금을 바라보며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릇을 점점 작게 만드는 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제 앞에는 자유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삶의 양식이 결정되는 삶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분적인 제약(생각․대화․행동․여행․만나는 사람 등)으로 인해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솟던 저는 5년차 전역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업무프로세스와 몇 가지 제도를 개선하며 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했습니다. 

  ‘간부자가진단문진표’는 총기난사․구타사망․성추문 등의 악성사고로 인해 군이 어려움을 겪을 때 추진된 많은 대책 중의 하나입니다. 폭언․욕설․음주․성군기 등 각 주제별로 질문을 읽고 성찰하는 일종의 설문인데, 마우스 클릭만하고 내용은 읽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본래 취지가 퇴색되는 게 안타까워서 글자를 입력해야만 넘어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참모총장님께 메일을 썼고, 그대로 개선되어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야전군사령부에서 실시한 독서마라톤에서 1등을 하면서 느낀 제도의 문제점을 정리해 사령관님께 건의 드렸습니다. 큰 폭의 변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제가 작성한 독서방법이 그대로 반영되었고, 추천도서목록을 새로 꾸리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술(前述)한 비영리사단법인과 사령부 사이에 중간다리를 놓아 도서가 지속해서 기부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병사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삶을 발견할 수 있도록 상담해주고, 상하급자 및 동료들에게 각종 도서를 추천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지혜를 공유해왔습니다.                   

사령부 독서마라톤 제도 자문 / 사령부 도서기부 성사


□ 이제도 앞에도 한결같아라

 지금은 세상에 없던 책-고등학생이 장교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4년의 자전적 성장기-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모교후배들의 악성사고가 언론에 적나라하게 보도되는 것을 보며 수치스러웠고 그 후배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모교를 향한 모욕을 거부하고 싶었고, 모교가 국민들과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모교를 다룬 책이 우리나라에 단 한권도 없단 사실을 깨닫고 집필을 결심했습니다. 책을 통해 지망생들이 꿈을 키우고, 그 출신들은 초심과 추억을 되짚고, 모교가 국민들과 소통되어서 궁극적으로 국가안보증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남은 원고를 마무리 지어서 올해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주변과 나누고, 그들이 공감하고 각자의 삶에 변화를 불러올 때 가장 행복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쓴 합격수기가 지금도 인터넷에서 공유되며 지망생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중위 때는《정글만리》를 읽고 직접 중국에 다녀와 작성한 견문기를 주변과 공유했습니다. 그것을 읽은 지인 중 몇몇이 저를 뒤이어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결같이 품어온 꿈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매일 조간신문스크랩을 하고 책을 읽으며 사색합니다. 더불어 영화․드라마․음악 감상과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삶에의 열정을 달구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필원고(현재 4부 익명연재 중) / 조간신문 스크랩

 저는 이상주의자이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이뤄내기 위해 행동하는 현실주의자 그리고 자아개혁가입니다. 하지만 자의식이 강해지고 고집마저 세지는 부작용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서 깨지고 무너져야 합니다. 

 원래는 책에 인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왔는데, 그 길은 바로 제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관차에 매달린 열차처럼 편하게 갈 수 있는 삶을 떨치고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이제 도망갈 길은 없습니다. 용감무쌍한 군인정신과 투철한 애국심을 가슴에 품고 많이 깨지고 무너지겠습니다. 그 상처에서 다시 태어나 세상을 두루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 1번 질문 끝 -


> 당시에 집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해 6월 10일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날) [나를 외치다!]를 정식출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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