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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SeJin 코리아세진 Sep 09. 2018

[청년장교 시절] 지렁이

'14. 8. 14. 원주 1야전군사령부에서

 2014년 육군 중위(정확히는 대위 진)였던 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1야전군사령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던 8월의 어느 날, 외부업무를 보기 위해 정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주로 사령관님이 다니시는 중앙현관 앞을 지나가는데, 몇 걸음 앞쪽에서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두면 지렁이가 거친 아스팔트 위를 헤매다가 햇볕에 말라 죽을까봐 가던길을 멈추고 잔디밭으로 옮겨주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짧은 몇 분동안 갑자기 떠올랐던 글감과 시상(?)을 써내려갔다.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불킥 각이지만... 그 때의 감성도 "나"의 일부이기에, 이곳에 남겨놓으려고 한다! 


--------------


지렁이


외모가 괴상하고 끈적거려

더럽다고 찡그리지만

알고보면 참 깨끗한 지렁이


남들이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지와 식물에 선한 일을

참 많이도 하는 지렁이


어제도 꿈틀 오늘도 꿈틀 내일도 꿈틀...

지렁아, 꿈의 틀도 일일신 우일신 이어라.


* 시작노트 

 업무 차 부대 앞에 있는 은행에 나가는 길.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본청을 지나가는데 아스팔트 위에 지렁이 몇 마리가 꿈틀대고 있다. 옆의 잔디밭에 숨어 살다가 물맛을 보고 정신없이 여름 소풍을 나온 모양이다. 하지만 아스팔트는 너희를 바싹 말라 죽게 만드는 곳... 너희가 머물 곳은 따로 있단다. 갈 길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몇 걸음 가다가 그 소리에 마음이 아파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선다. 우산을 들지 않은 손에 나뭇잎을 하나 들고 지렁이들을 잔디밭으로 하나씩 하나씩 옮겨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건물로 들어가는 몇몇 간부들이 나를 원숭이마냥 쳐다본다. 여자 군무원은 어머~~하며 웃으신다. 지렁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필사적으로 거부한다. 오해하지마 너를 헤치려는 게 아니야.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고 깔아뭉개는 사회.. 이제는 터지는 일들마다 숭악하고 경악스럽다. 오해는 불신을 낳고 또 다른 오해를 낳아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언론과 권력, 집단이성 앞에 지렁이로 대변되는 개개인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모두가 많이 배워서 생각은 많고, 하고 싶은 말들도 참 많다. 똑똑한 사람은 넘쳐나는데 지혜와 슬기로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네 탓’은 넘쳐나는데 ‘내 탓’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묵묵히 꿈틀대는 지렁이들이 있기에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마침 북괴의 축포 속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곳에 왔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는 천주교 고해성사의 한 구절이 그저 입으로만 나불대는 공허한 구절이 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디디고 숨 쉬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오늘 어떻게 꿈틀거리고 있는 걸까

 나의 은 어떠한  안에서 꿈틀 거리고 있을까


 지렁이처럼,

대지에 숨을 불어넣어주고, 꿈틀대는 순간마다 많은 생명에 힘이 될지어다. 미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지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은 미물들에게서 비롯되기에...★  



> 어쩌면 '지렁이'는 당시 미래에 대한 기약없는 고민에 힘겨워하며 꿈틀 나 자신이었던 걸 수도... 오늘도 나는 꿈, 틀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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