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건명원
모든 교수님, 건명원 동료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기 졸업생 김세진입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레이니스트에서 조직문화와 고객소통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레이니스트는 모바일종합자산관리, 뱅크샐러드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건명원에 다시 오게 되어 감사합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2016년 3월 2일을 생각해보면, 지난 2년 조금 넘는 동안 제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건명원 덕분에 3, 4기분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그 매개에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여러 방면에 호기심이 많았고,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대 중반 육군 장교시절 조정래 선생님의 “정글만리”를 읽고 중국에 빠져, 중국어를 공부하고 직접 다녀와 연구하며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 운명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일본을 만나게 됐습니다.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는 이론을 완성한 사람,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 아베신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는 당시의 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를 제대로 다룬 책이 단 한권도 없었습니다. 일본 역사는 물론이고 일본어도 하나도 몰랐지만, 건명원에 다니던 2016년 5월 즈음, 저는 요시다 쇼인연구에 몰입했습니다.
요시다 쇼인은 알아갈수록 가관이면서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다케시마 개척론, 야스쿠니 신사, 천황제도, 광개토대왕비, 식민지, 망국, 마쓰시타 정경숙 등에도 쇼인의 그림자가 뻗쳐 있다는 것을 차례차례 알아갔습니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인물들을 따져 올라가면 쇼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전히 아픈 상처인 군위안부, 강제징용자, 등의 문제도 뿌리로 더듬어 올라가면 쇼인과 그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정말로 책임감 있는 지식인은, 적어도 제 입장에선 없었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알량한 ‘어른이들’이 남 탓만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보단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메이지유신이 벌어진지 150년이 되어서야 겨우, 요시다 쇼인이 한반도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을 연구하던 지난 2년은 “일본은 쪽발이 XX들”이라는 맹목적인 감정에 쌓여있던 제 자신을 죽이고,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분노는 역설적이게도 분노의 대상보다 분노하는 그 자신을 더 아프게 합니다. 대한민국은, 그리고 한반도의 모든 이들은 우리의 삶과 역사를 여전히 옭아매고 있는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넘어서야만 합니다. 지적으로, 내면적으로 더욱 많은 관점을 흡수해 탄탄해지고 탁월해져야만 합니다. 선택의 문제, 권리의 차원이 아니라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의무입니다. 그 선두에는 어떤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메이지유신 매우매우 간략인물도” 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쇼인에 대한 책을 출판했지만 쇼인에게 미안하게도, 올해 초부터 ‘사카모토 료마’ 라는 인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본 자산규모 1위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회장의 집무실엔 료마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있습니다. 료마는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를 독점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일본의 젊은 사무라이들은 이렇게 갈등하면서도, 이렇게 중재하며 메이지유신이라는,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정도 경제규모/군사규모의 선진국으로 성장했고, 우스갯말로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딱 두 나라, 북한과 한국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양양의 낙산사를 다녀왔습니다. 낙산사에는 ‘꿈이 시작되는 길’, ‘꿈이 이뤄지는 길’이 멋지게 꾸며져 있습니다. 육군 중위시절 그 곳을 걸으며 품었던 꿈들이 많이 이뤄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지와 행동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즉, 번지르르한 말과 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우리 내면의 거울을 자꾸만 밖을 향해 비추는 잘못을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빛을 내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건명원 자체도 한층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건명원을 아끼는 한명으로써, 감히, 간절히 소망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며칠 전 2박 3일 동안 홀로 지리산을 종주하며 마주한 산과 바위, 키 큰 나무들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부터, 삶으로 불언지교 할 수 있도록 먼저 행동하며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올해 첫 날, 원장님 그리고 2, 3기분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봤습니다. 당시 원장님께선 “올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실제로 올 한해 원장님도 저도 삶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별의 단계를 정면으로 관통하며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반 년 전 제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내쉬던 숨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던 순간, 따뜻하고 부드럽던 육체가 차갑게 굳어지고 끝내 베이지 빛 가루가 되던 순간은, 적어도 제겐 예술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해와 달의 경계, 그 경계들에서 위태롭지만 세차게 흔들리며, 모든 배움을 깊이 품어낼, 더 강해질, 더 두터워질, 우리 모두의 존재를 응원합니다.
우리 각자가 엮어가는 순간순간들이, 종합예술로 완성되는 그 날,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그 날, 저 곳에 계신 그분들과 이 땅의 우리가 서로 힘차게 끌어안고 목 놓아 실~컷 한 번 울어봅시다.
시인과 촌장이란 가수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은 “제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노래합니다. 잠시 여기서 입을 떠들던 저는 제자리, 저를 저답게 하는, 가장 저다운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시 여정을 떠나갑니다. 여러분도 “제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여리 우리가 모이도록 해주신 교수님들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이 곳의 공기가, 우리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