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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Pak Sep 05. 2017

20170905 화요 학교 일기_갈등이 생겼을 때

객관적으로 보기


 어제 일이 생각난다. 영수와 승현이는 학급 내의 자기 역할로 바닥 쓸기와 닦기를 한다. 승현이는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었고 영수는 대충 쓸고 놀고 있었다. 그래서 승현이가 같이 좀 하자~ 고 했는데 영수는 되려 얄미운 소리를 내면서 이상한 행동으로 승현이를 약 올렸다. 승현이는 그만해라~ 면서 영수의 볼을 만졌다. (우리가 로션 바를 때 얼굴에 문지르는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짜악-!"


 영수가 승현이의 볼을 때린 소리였다. 영수도 승현이의 볼을 만진다는 게 힘이 들어가서 세게 친 것이다. 그 순간, 승현이의 눈에 보이지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비쳤다. 영수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뺨을 맞으니 기분이 나쁘다. 결국 영수가 고의로 그런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똑같이 한 대 쳐버리고 싶다는 생각.

 그 순간 영수도 놀라서 어버버 하며 사과를 했지만 자신도 승현이가 볼을 먼저 만져서 똑같이 그러려다 했다는 억울한 생각도 들고, 같이 장난쳤지만 본인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플러스, 선생님에게 자기만 혼날 것 같은 이 상황이 짜증 나기 시작한다. 쌍방과실인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은 흔히 발생한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나는 이들의 장난 아닌 장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상황을 앞에서 보고 있었다.


 "영수, 나와. 승현이는 괜찮니?"


 승현이는 자기 자리에서 기분을 가다듬고 있었고 영배는 앞으로 나왔다. 내 얼굴을 본 영수는 이후에 일어날 일을 짐작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아마 내가 한숨 섞인 얼굴로 영수를 불렀을 것이다.


 "영수야, 선생님이..."


 내 말을 끊고 영수가 끼어든다.


 "쟤가 먼저 했어요."


 영수는 흥분해서 승현이가 먼저 했다고, 쟤가 먼저 자기 뺨을 '때렸다'고 묘사했다. 뺨을 만진 제스처도 기분이 나빴는지 영수는 만졌다기보다는 '때렸다'고 표현한다. 친구에게 뺨을 맞으면 누구든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찰나에 인상 쓴 내 얼굴을 보고 영수가 선수 친다.


"아, 네 네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반성하는 얼굴이 아니다. 진심은 없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죄송합니다.' 영수는 내가 이러이러한 점은 네가 잘못했음을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자기가 잘못한 점 알고 죄송하다고 했으니 '선생님, 이제 그만 얘기해요'라는 거다. 나는 승현이도 부른다.


 "승현아, 네가 먼저 영수 볼 때렸니?"

 "아뇨, 때렸다기보다는 그냥 살짝 만진 건데.."


 영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승현이의 답을 끊어버린다.


 "아니에요. 얘가 먼저 제 뺨 때렸어요."


 어쨌든 먼저 얼굴은 만진 건 승현이 쪽이었다.


 "승현이 어떻게 했니?"


 승현이가 자기 볼을 톡톡 건드리며 보여준다. 영수가 말을 바꾼다.


 "얘가 먼저 제 뺨 만졌어요."

 "그건 영수가 승현이한테 이상한 소리 내면서 놀려서 그런 것 아니니?"


 내가 영수가 한 행동에서 원인을 찾아본다. 영수는 승현이가 뺨을 만지기 전에 이상한 소리를 잔뜩 내면서 승현이를 놀리고 있었다. 영수가 자기 행동을 부인한다.


 "저 이상한 소리 내면서 얘 놀린 적 없는데요."

 "아까 승현이 놀리는 것 봤어."

 "저 그런 적 없는데요. 저 진짜 기억에 없는데요."


 다른 목격자가 필요해 보였다. 결국 둘 사이에서 놀고 있던 현성이와 은호를 불렀다. 현성이와 은호는 둘 사이에서 놀고 있었지만 그 일에 끼진 않은 중립자다.

 

 "조금 전에 영수가 한 행동 본 사람?"


 은호는 못 봤다고 한다. 은호는 자리를 뜨게 하고 현성이에게 묻는다.


 "현성아 처음부터 둘이 어떻게 했는지 얘기해줄래?"

 "어.. 처음에 영수가 막 이렇게 이렇게 했어요.(영수의 행동을 흉내 낸다.) 그래서 승현이가 영수 뺨을 이렇게 하고(역시 흉내 낸다.) 마지막에 영수가 승현이 뺨을 세게 때렸어요."

 

 현성이는 자신이 본 것을 사실대로, 객관적으로 말했다. 중립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나머지 두 학생에게 사실 확인을 한다.


 "영수, 맞아?", "승현이는?"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현성이의 상황 묘사에는 토를 달 것이 없고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 한 명이 더 잘못했다고 할 것 없이 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논리가 가능한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친구의 말이 선생님의 말보다 더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둘은 서로 쳐다보았다.


 "미안."

 "미안."


 둘 사이의 악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감정이 어땠을지 다시 한번 설명하고 다음번에는 절대 친구의 얼굴에 손을 대지 말라는 말로 끝났다. 나 외에 이 상황을 지켜본 다른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갈등이 더 커지지 않고 초기에 진압된 것도 다행이었다. 학교에서 매일 겪는 일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 마음 어루만지는 게 재밌는 수업 하나 준비하는 것보다 백배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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