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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l 20. 2015

우동 한그릇, 아니 소바 한그릇

우리가 몰랐던 메밀에 대한 이야기들

초등학교 시절 권장도서로 꼽혔던 몇 안되는 일본 동화 중, '우동한그릇'이라는 작품이 있다. 구리 료헤이 원작의 이 단편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고 숨지자 보상금을 갚기 위해 어렵게 살아가는 세 모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섣달 그믐날 '북해정'이라는 가게를 찾아 우동 한그릇을 시키고 셋이서 나눠 먹는다. 


몇 년 후에 다시 가게를 찾은 모자는 형편이 그동안 피었는지 이번엔 두 그릇을 시킨다. 세월이 흐른 뒤 세 모자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때, 그들은 말쑥한 기모노에 양복을 차려 입고 가게를 찾아와 세 그릇의 우동을 시켜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기 등장하는 우동은 번역 과정에서 수정된 것이고 원래 세 모자가 시켜 먹는 음식은 소바, 즉 메밀국수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메밀국수 하면 차가운 면을 쯔유에 적셔 먹는 국수를 떠올리기 때문에 수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일본인들이 섣달 그믐날 먹는 '도시코시 소바(일명 해넘이 국수)'는 뜨끈한 국물에 넣어서도 먹고, 자루소바처럼 쯔유에 찍어 먹기도 한다. 


사실 메밀은 가을철 수확해 겨우내 두고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여름보다는 겨울에 먹는 편이 맛있다. (남반구에서도 메밀을 생산하는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찹쌀떡과 메밀묵 하면 겨울 간식이었다. 냉면 역시 메밀이 들어간 면을 차가운 육수에 말아 뜨끈한 아랫묵에서 먹던 음식이 아니던가.... 


일본인들이 설을 맞아 소바를 먹는 이유는 또 있다. 금을 세공하는 금은방에서는 작업하다 흩어진 금가루를 흡착하기 위해 메밀 반죽을 사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메밀은 금, 즉 재물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메밀은 성질이 서늘하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자칫 탈이 날 수도 있다. 게다가 메밀 껍질에는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독성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메밀을 먹을 때 삶은 달걀과 고기점을 올려 단백질을 보충했으며, 무즙을 사용해 독을 없애고 맛을 더 끌어올렸다고 한다.  


국수 이외에도 메밀 요리를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메밀가루에 배추김치를 넣어 팬에 지져낸 메밀김치전은 강원도 지역의 별미이며, 얇은 메밀부침개에 무채나 고기 등을 넣고 말아서 만든 빙떡은 가벼운 간식거리로 그만이다. 일본에서는 마치 수제비처럼 덩어리로 빚은 메밀을 국물에 넣어 먹는 '소바가키'라는 음식이 있다. 이 소바가키는 상급의 메밀이 아니면 만들 수 없으므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별미로 꼽힌다. 


서양에서도 의외로 메밀을 꽤 많이 먹는 편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메밀가루를 종잇장처럼 얇게 부쳐 각종 야채와 달걀, 햄 등을 넣어 가장자리를 접어 먹는 '갈레뜨'라는 요리가 있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도 메밀로 만든 팬케이크가 있다고 하며, 러시아식 미니 팬케이크 블리니는 갓 구워낸 얇은 메밀전병에 캐비어와 사워크림 등을 얹은 핑거 푸드이다. 


참고로 한국식 달달한 메밀국수 대신 정통 일본식에 가까운 소바를 맛보고 싶다면 내방역 부근의 '스바루'라는 가게를 찾으면 된다. 다만 짠맛이 강한 쯔유를 조금씩 찍어 먹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조금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 오리지널의, 조금 색다른 메밀 요리도 하나 소개한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데 삶은 메밀 국수의 물기를 빼고 차게 식힌 다음 새싹채소와 날치알을 넣어 김밥처럼 만다. 이걸 썰어서 쯔유에다 찍어 먹는 요리이다. 맛이 담백해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좋아한다. 바삭한 김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반찬용 김에 메밀면과 속재료를 직접 넣어서 말아 먹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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