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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Oct 02. 2019

알고보면 '짠내나는' 할아버지 치킨의 역사

프라이드 치킨, 버터밀크, 미국 남부 소울푸드 등등에 관한 이야기

작가를 꿈꾸는 백인 상류층 여성과 흑인 메이드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 '헬프'에서 마을의 왕따 신세인 셀리아는 새로 들어온 메이드 미니와 함께 치킨을 만들어 먹으며 이런저런 살림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살았을 것 같은 셀리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끼로 닭의 머리를 내려치며 미니를 놀라게 하고 미니는 그런 셀리아를 위해 맛있는 프라이드 치킨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미국 남부식 치킨의 기본은 버터밀크에 닭고기를 재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버터밀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버터가 들어간 우유인가? 우유에서 나오는게 버터 아님?'이러면서 혼란에 빠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버터를 만들고 남은' 우유라고 한다. 그럼 지방이 빠진 탈지유구나 했는데 이 녀석의 정체는 왠지 찾으면 찾을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거꾸로 총을 쏜 사자 라프카디오'에서는 고급스러운 음료처럼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러더니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뜬금없이 주근깨 지우는 미용용으로 등장한다. 


겨우 알아낸 버터밀크의 레시피는 단순한 탈지유보다는 조금 더 나아간 것이었다.  마치 요구르트를 만들듯이 스타터를 접종해 발효켜 만든다고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시는 요구르트와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치즈를 만들고 남은 액체 '훼이'에도 미백 효과가 있다는 점으로 볼 때 피부에 좋다는 말도 사실인 듯...

 

어쨌거나 버터를 빼내고 난 우유는 생 우유보다 그냥 마시기에는 아무래도 고소한 맛이 떨어지는데다 발효시킨 유제품은 장기간 보관도 어려워 빨리 소진해야 한다. 추측이긴 하지만 덥고 습한 미국 남부의 날씨 탓에 자연스럽게 발효된 버터밀크가 생기면서 요리에 쓰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닭고기를 절이고, 비스킷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미백용으로 쓰는 등 활용도가 높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이 버터밀크를 구하기가 어렵고, 만드는 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미국 구글을 뒤져봐도 기성품을 구입하거나 혹은 집에서 만들어 쓴다고 하니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이지는 않는 모양. 치킨 한번 튀겨 먹자고 그 정도 수고까지 할 기운은 없는지라 내가 주로 활용하는 재료는 그냥 우유다. 


우유에 치킨을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재운 후 봉다리에 밀가루와 소금, 후추, 베이킹파우더를 넣어주고 씐나게 흔든다. 매운걸 좋아한다면 카이옌 페퍼나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어주면 좋다. KFC 창업주가 넣었다는 올스파이스란 향신료는 시나몬, 정향, 육두구를 혼합한 향을 가져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리지널 레시피는 이 올스파이스가 아닌 11가지 비법재료를 썼다고 알려졌으며, 당연히 들어가는 양념은 좋아하는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오리지널 KFC 치킨은 압력솥에 튀긴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도 어떻게 튀김을 압력솥에 하는건지 상상이 안간다...-- 혹시 아시는 분? 아마 양념한 닭에 기름을 붓고 뚜껑을 닫아 조리하는 건지...?(닭 튀겨먹다 집 폭파시킬 일 있냐....) 암튼 이렇게 찌듯이 튀겨낸 치킨은 훨씬 부드러운데다 양념이 푹 배어 훨씬 맛있어졌다고 한다. 다만 KFC가 한국에 상륙한 후론 왠지 기름에 쩔은 듯한 식감이 별로였는지 어느샌가 오리지널보다 크리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소울 푸드로도 꼽히는 프라이드 치킨은 원래 남아 도는 돼지 비계인 라드로 튀겼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사용하기 간편한 쇼트닝이 쓰인다. 그리고 열을 가한 쇼트닝은 트랜스 지방으로 바뀌면서 비만과 대사증후군의 주범이 된다....ㄷㄷ  (하지만 치느님을 영접할 때 그 정도는 가뿐히 잊어주는 거다...) 곁들이는 음식은 버터밀크 비스킷에 삶은 콩, 야채 샐러드 등으로 지역과 취향에 따라 다양하며 미국 남부에서는 콜라보다 아이스티를 오히려 선호하기도 한다. 


KFC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 대표적인 사이드 메뉴로는 그레이비를 얹은 매쉬포테이토가 있었다. 언니와 나는 오히려 메인인 치킨을 제껴 놓고 그것만 사먹을 정도로 좋아했고, 닭이 속살까지 기름덩어리 같다며 KFC를 찾지 않던 부모님도 매쉬포테이토만큼은 맛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지금은 매쉬포테이토가 단종된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혹자는 그레이비 소스가 한국인의 입맛엔 맞지 않았다고 하지만...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비스킷에 기본으로 딸려오던 버터와 딸기쨈을 이제 돈 주고 따로 주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 살기 어려워졌다.. 


이래저래 집에서 해먹기 만만치 않은 음식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순전히 가격만 생각한다면 집에서 튀겨 먹는 쪽이 훨 싸긴 하다. 튀기기 전에 닭을 한 번 찌면 훨씬 촉촉해진다고 하는데 귀찮아서 아직 해보지는 않음. 압력솥 튀김은 겁나서 못하겠고... 아쉬운대로 다음번에 해먹을 때는 집앞 KFC에서 비스킷을 사오고 지금은 맛볼 수 없는 매쉬포테이토도 비슷하게 만들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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