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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Oct 08. 2019

애저회, 불쌍하면 잡아먹지 말던가!

제주 토속음식(?) 을 둘러싼 논란들

채식주의자 중에는 생선을 먹는 페스코, 달걀과 유제품을 먹는 락토-오보 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사실 이 분류를 두고 나는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달걀이나 생선 알은 생명체의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아서인지 고기를 꺼리는 이들도 상대적으로 죄책감(?) 없이 먹 는 일이 많다. 그런데 포유류의 ‘알’이라고 할 수 있는 태아를 식용한다면 어떨까?     


고기가 부족하던 시절에도 갓 태어난 어린 짐승이나 임신한 짐승을 잡아먹는 것은 비인도적이라고 여겨 꺼려지던 일이다. 아무래도 알과 달리 형태가 갖춰져 있는데다 사람과 좀 더 가까운 동물이라는 생각에 거부감도 더 크다. 병아리가 되다 만 곤계란이나 암소 태내의 송아지를 꺼내 만든 송치라는 음식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출산하지 않은 돼지 자궁 속 새끼돼지를 가리키는 애저 역시 동물학대인지 전통문화인지를 두고 논쟁이 분분하다. 

갓 태어난 돼지의 경우 태아보다는 조금 덜 엽기적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외국에서는 별미 요리 재료로 사용된다. 스페인 세고비아 지방에서 유명한 ‘코치니요 아사도’는 젖을 떼지 않은 생후 1개월 미만의 돼지를 통째로 구워내는데, 바삭한 껍질 밑에 접시로 잘라낼 수 있을 정도의 연한 살을 즐긴다고 한다. 


아직 낳지 않은 돼지 태아를 요리하는 지역으로는 필리핀과 중국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광주광역시나 진안군 등 전라도에서 애저찜이라는 음식이 알려졌다. 원래 이 요리는 연하다는 뜻의 ‘연저(軟猪)’로 불렸다가 새끼 돼지가 가엾다는 의미로 ‘애저(哀猪)’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씹을 것도 없이 넘어간다”고 묘사한 것을 보니 어린 돼지의 연한 식감 때문에 별미가 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돼지 태아를 굽거나 찌지 않고 날로 먹는데, 이것이 바로 돗새기회, 혹은 

애저회라는 것이다. 애저회는 임신한 돼지의 배를 갈라 꺼낸 태아를 칼로 곱게 다지거나 맷돌로 갈아내 갖은 양념을 해서 육회처럼 먹는다. 오늘날에는 맷돌 대신 믹서기를 이용하고 고춧가루, 김가루, 다진 생강과 마늘, 참기름에 달걀 노른자를 곁들인다. 


조리법이 꽤나 엽기적이다 보니 제주도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먹지 않고 어르신들 중 보양식이라며 즐기는 이들이 소수 있다고 한다. 언뜻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이 요리는 사실 지독한 식량난의 산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제주도 하면 감귤이며 말고기, 고등어와 옥돔 등 다양한 특산물로 유명하지만 이것들은 중앙 조정에 바쳐야 하는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제주도에 자리 잡고 살아온 토착민들은 척박한 자연 환경 탓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보리를 사용해 찐빵처럼 만든 ‘상애병’이나 메밀반죽에 무채를 썰어 넣은 빙떡은 농사가 어려워 쌀이 귀했던 시절 발달한 토속음식이다. 


제주도 특산 흑돼지 역시 서민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었고, 어떻게든 단백질 보충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폐사한 돼지가 품고 있던 새끼나 유산·사산된 새끼를 먹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애저회의 유래이다. 제주도민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수탈의 역사가 엽기적인 음식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셈이다. 다만 조선 후기 들어서는 신흥 부자들이 색다른 별미를 찾으면서 고급 요리로 ‘변질’됐다고 하며 오늘날의 경우 돼지를 기르는 집에서나 요리가 가능하다 보니 귀하게 여겨지는 측면도 있다. 여기에 보양식이라면 물불 안 가린다는 일부 남자 어르신들이 애저회를 일종의 스테미너 식품인 것처럼 추켜세우기도 한다. 

 

제주도 현지에서 애저회를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돼지의 태아를 날로 먹는다는 생소함을 제외한다면 일부러 찾을 만큼의 특별한 맛은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먹는 쇠고기 육회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테미너에 좋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보양식으로 알려진 장어나 삼계탕 등도 주성분은 단백질인 것을 감안하면 ‘약’으로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개를 식용하는 보신탕은 문화 상대주의 논란과 맞물리며 지켜야 할 한국의 전통 식문화인 것처럼 인식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영리한 개를 잡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으며, 양반들처럼 쇠고기나 닭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서민들이 단백질 보충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흔히 구할 수 있는 개를 택했던 것 뿐이다. 오늘날 개고기는 ‘식용’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위생상으로도 문제가 많으며, 고기 섭취 자체도 건강을 위해 점점 지양되고 있는 추세이다. 


애저회의 경우도 희소한 별미라고는 해도 전통 식문화로 이어가기에는 문제가 많다. 1970년대 이전에는 사산되거나 유산된 돼지를 주로 먹었던 데다 기생충이 흔하던 시절이라 식중독을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특히 날고기를 먹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유구낭미조충 감염 환자는 유독 제주도에서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지금도 제주특별자치도 지자체에서는 애저회 식용을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내 일부 정육식당과 정육점 등에서는 여전히 애저회가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위생상 안전하지도 않은데다 혐오스러운 면까지 있는 음식이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추억’의 힘이 그만큼 강한 탓일까, 아니면 인간의 숨겨져 있는 야만적인 본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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