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보통 스위스 요리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열의 아홉은 녹인 치즈를 빵에 찍어먹는 퐁듀를 떠올릴 것이다.
서울 이태원이나 한남동 등지에서 맛볼 수 있는 퐁듀는 1인분에 몇 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의 값비싼 고급 요리로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퐁듀 가격이 비싼 것은 외국 요리라는 프리미엄에다 재료가 되는 치즈와 와인 등이 한국에서 비정상적으로 고가인 탓이다.
실제로 본고장인 스위스에서 퐁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기원을 살펴보면 고급 요리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사도 제대로 짓지 않고, 목축에 의존하며 알프스 산간지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겨우내 먹을 식량을 구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곡식이나 채소는 매우 귀했고, 보존하며 먹을 만한 음식으로는 오래 되어 굳어진 치즈나 빵이 대부분이었다.
스위스인들은 딱딱해서 씹기도 힘든 치즈를 어떻게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와인에 녹여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굳은 빵도 뜨거운 치즈에 적시면 먹을 만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퐁듀는 배고픈 겨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한 눈물의 음식이었던 셈이다.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잘 알려진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식사도 이처럼 소박하기 그지없다. 알름 할아버지와 하이디는 찬장에 굳어진 치즈와 빵을 놓아두고 그때그때 치즈를 불에 녹여 빵에 발라 먹는다. 이들의 식탁을 그나마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은 금방 짜낸 염소젖이다.
작품 속에 요리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이 메뉴는 ‘라끌렛’이라는 이름의, 주로 스위스 불어권에서 먹는 음식이다. 와인에 녹이지 않고 직접 녹이다 보니 퐁듀보다 맛이 훨씬 진하며 북한의 김정일도 생전에 즐겨 먹었다고 한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알름 할아버지로서는 때 맞춰 장을 보고 제대로 요리를 하기 힘들다보니 이렇게 커다란 치즈를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이다. 라끌렛을 녹일 때는 우리의 청국장처럼 쿰쿰한 냄새가 나므로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밖에도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치즈로는 에멘탈과 그뤼에르, 아펜젤러 등이 유명하다. ‘톰과 제리’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진 에멘탈 치즈는 뽕뽕 뚫린 구멍이 특징이며 맛은 의외로 체다치즈에 비해 진하지 않고 견과류와 비슷한 은은한 향이 난다. 그뤼에르 치즈와 함께 퐁듀의 주 재료로 쓰인다.
그뤼에르는 에멘탈치즈와 만드는 법이 유사하지만 소금을 더 사용해 맛이 한층 짭짤하며, 크게 자른 커드를 고온, 고압에 압착시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시킨다. 에멘탈보다 강한 향에 살짝 신맛이 도는 그뤼에르 치즈는 키슈나 그라탕에도 사용된다.
에멘탈, 그뤼에르와 함께 스위스 3대 가열 압착 치즈 중 하나인 아펜젤러는 샤를마뉴 대제 시절인 8~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치즈이다. 소금물 대신 와인과 애플 시드르, 이스트, 허브, 향신료, 소금 등을 섞은 ‘슐츠’ 용액으로 닦아주며 숙성시킨다.
한편 두 염소, 백조와 곰이 만들어내는 젖은 이 집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한번만 마셔보면 반할 정도로 맛이 좋다고 묘사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산양유’라는 이름으로 염소젖이 시판된 적이 있는데 염소는 소와 달리 들풀을 주로 먹고 살다 보니 특유의 풍미가 강해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이디가 페터와 함께 염소 떼를 돌보러 갈 때 가져가는 도시락은 주로 빵 조각이나 감자에 아주 가끔 소시지, 고기 절임 등이 곁들여진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이니 한 번 도축한 고기는 바로 먹거나 아니면 이렇게 육가공품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페터의 어머니 브리깃테와 할머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산골 지역의 열악한 식량 사정을 삼 확인할 수 있다. 이가 좋지 않은 할머니지만 부드러운 흰 빵을 살 돈이 없다보니 뻣뻣한 검은 빵만을 주로 먹는다. 항상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던 하이디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올 때 하얗고 부드러운 빵을 잔뜩 사다 드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묘사되는 음식들이 지극히 소박한 이유는 식량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종교에 의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스위스 출신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먹고 입는 것의 사치를 배제하는 청교도적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으며 이에 따라 식생활도 극도로 검소해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을 지은 요한나 슈피리가 독실한 개신교도라는 점도 작품에 어느 정도 반영된 듯 하다.
참고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마이엔펠트 지역은 독일어권으로, 이곳의 요리들은 대부분 독일 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식 감자전으로 알려진 뢰스티가 대표적이며, 크림과 버섯을 넣고 끓인 송아지 스튜 게슈넛 첼테스, 각종 육류를 수프에 넣어 익힌 베르너 플라테, 야채와 파스타, 양파, 햄 등을 마카로니에 넣고 치즈에 버무린 엘플러마그로넨 등이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뮤즐리도 스위스 독일어권에서 개발된 음식이다. 도정하지 않은 통곡물과 견과류를 혼합한 것으로, 우유나 요구르트에 섞어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는다. 이 음식은 생식전도사인 막시밀리엄이라는 의사가 개발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소녀의 성장기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슈피리가 지은 원작을 읽어보면 이 작품을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 강제로 프랑크푸르트에 끌려간 하이디는 집을 그리며 외로움 속에 지내다 클라라와 우정을 쌓아가고 제제만 부인(클라라의 할머니)에게 글을 배우면서 조금씩 내면의 성숙을 이뤄 간다. 여기서 정신적으로 하이디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
다시 산으로 돌아온 하이디는 마을 사람들과 고립돼 살던 알름 할아버지를 교회로 데려가며 그의 삶을 새롭게 바꿔간다. 작품 초반부의 알름 할아버지는 신을 믿지 않는 고집 센 꼰대 캐릭터에 가까웠다. 젊은 시절에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스위스 용병으로 전쟁을 겪으며 성격마저 거칠어진다. 이탈리아 통일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얻은 장애, 아들의 이른 죽음 등은 그가 마음의 문을 더욱 굳게 닫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하이디를 만나며 조금씩 자상한 할아버지로 변모하는 그는, 결국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며 신에게 용서를 빌며 지난날을 뉘우친다. 하이디는 할아버지를 회개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책을 들고 돌아다니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시작하게 된다. 즉, 이 소설은 성장소설인 동시에 종교소설이기도 하다. 알프스를 찾은 클라라가 걸을 수 있게 됐다는 결말은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기적’이 현실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슈피리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집필한 시기는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성 상실과 자본주의의 좋지 않은 면모가 서민들의 삶을 고단하게 했던 19세기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으로의 회귀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작품에 녹여낸 셈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는 이처럼 슈피리 자신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시각이 상당부분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하이디와 할아버지의 자연 속 소박한 삶이 쫓기듯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힐링을 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