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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pr 27. 2020

취조할 때 가츠동

드라마 속 음식의 '클리셰'

 

일드 '슈츠'를 보니 오래전 오다 유지 덕질을 하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그분에게 꽂힌 계기는 1997년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이었고 나중에야 이 영화가 

드라마 원작이란 사실을 알게됐다. 

그때 나는 곰플레이어에 입문해 밤새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생활을 했다...

아무튼 첫 장면에서 주인공인 형사 아오시마는 온갖 폼을 잡으며 범인을 취조하다가 

마지막에 회심의 대사를 날린다. "가츠동 먹을래?"


일드에서 취조할 때 가츠동은 일종의 클리셰와도 같다. 대체로 형사가 범인을 살살 구슬러 

자백을 받아내려는 상황에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밥까지 시켜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어쩌다 시키면 그나마도 범인이 돈을 직접 내야 한다고.(치졸하다..)


그러고 보면 음식과 관련된 '클리셰'는 한국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한다. 

사극에선 특히 (아마도 대장금에서 시작된 듯한) 비슷비슷한 장면들이 많다.

심각한 대화를 하거나 음모를 꾸밀 때는 항상 기방과 주안상이 등장한다. 

다만 이건 클리셰라고만 하기엔 뭐한 것이 실제로 우리 현대사에 이른바 '요정정치'

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웃기는건 비밀이래놓고 기생들이 다 듣는다....


등장인물이 사약을 받을 땐 꼭 피를 토한다. 하지만 사약의 주 재료였다는 부자는

열을 내는 성분이라 토혈과는 무관하다고. 더구나 그게 몸에 받는(!) 사람도 있어서

몇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머슴들이 먹는 밥은 꼭 바가지에 담겨 있고 숟가락을 주먹으로 쥔 채 퍼먹는다. 

이계인씨가 이런 연기를 정말 잘하는데 단골 멘트는 "마님! 밥이 꿀맛입니다요!"

물도 안마시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연기하는 배우들이 얹힐까봐 걱정된다. 

전쟁 묘사가 있으면 꼭 등장하는 아이템이 주먹밥이다. 마치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듯,

주먹밥은 보통 얍삽한 캐릭터가 몰래 빼돌려서 혼자 주변을 살피며 먹어치운다.


한편 백수 캐릭터를 묘사할때는 라면을 빼놓을 수 없다. 대체로 봉지라면보다는

컵라면이 많고 후룩거리며 단숨에 먹어치우는 그림을 숱하게 보게 된다. 장소는 

거의 쓰레기장에 가까운 자취방이 아니면 편의점에서 선 채로 먹는다.  

(의외로 성인 남녀가 라면 먹으며 므훗~해지는 장면은 드라마에 자주 안나온다. 심의 탓인가..)


임신부가 먹는 밥은 90% 이상이 양푼에 비빈 밥이다. 시댁 식구들 깰까봐

밤에 몰래 부엌에 와서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때려넣고 숨죽이며 먹는다. 

종종 시어머니나 남편이 불켜고 등장하면서 들키는데 그땐 매우 안습한 취급을 당한다.

 

재벌 2세들은 다들 단골 바가 하나씩 있고 메뉴 볼것도 없이 "늘 마시던 걸로"라고 말한다.

(이름이 어려워서 그런가보다...) 열받았을 땐 술을 마구 원샷하다 성질 못이기고 컵을 깬다.

서민 캐릭터의 술자리는 포장마차 소주가 절대 다수인데 실제로 포장마차 가격은 그리 저렴하지 않다.


일단 생각나는건 이정도지만 다른 클리셰도 꽤 많을 것 같다. 

다만 요즘 사모님들은 본죽에서 모임을 갖고, 재벌들도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거 보니

최근에 음식 클리셰를 결정짓는 제일 큰 역할은 PPL업체가 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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