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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Dec 28. 2020

음식 소재 콘텐츠, 어디까지 정확해야 할까?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디테일 면에서 조금은 아쉬운 작품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에 기반한 것이므로 읽기 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만화나 소설을 영상화하는 작업은 원작의 유명세에 기댈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원작을 어느 정도 살리고 어느 정도 각색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위험성이 공존한다. (다만 올드보이나 박쥐처럼 원작이 국내에서 인지도가 별로 없었던 경우는 예외...) 


요시나가 후미 원작의 일본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은 그 딜레마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판과 한국에서 민규동 감독이 만든 영화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 작품의 영상화는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ㅎㄷㄷ한 스토리텔링과 심리묘사에 비해 당시 원작자의 작화 능력은 쫌...많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재가 '시각'에 의존하는 케이크였으니...다만 최근 작품인 '어제 뭐 먹었어?'의 요리 비주얼은 일취월장 수준의 발전을 보여준다.)


2001년 후지TV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는 원작에서 느낀 아쉬움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더구나 제과제빵에서 탑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이 배경이니.. 배우들의 싱크로율도 타치바나 역의 시이나 깃페이 정도를 제외한다면 꽤 훌륭하다. 특히 선글라스 낀 리즈시절의 아베 히로시는 말 그대로 만찢남의 정수. 서전 올스타즈의 주제곡도 상당히 잘 어울려서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때문인지, 오노가 게이라는 설정이 빠져버리면서 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말았다. ㅠㅠ 담담한 느낌의 원작에 비해 작위적이고 진부한 설정이 튀어나오는 것도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배우들의 연기는 준수하지만 원작 팬들로부터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에 비해 2008년 만들어진 한국 영화 버전은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적절한 한국적 각색이 더해져 더 나은 결과물을 뽑아냈다. 고창석의 "저런 앤 공유해야 돼~"라던가, 신인시절 유아인의 "싸부를 그런저런 호모 나부랭이로 보면 오산이야"라는 대사는 말 그대로 '찰지다'. 뮤지컬적인 요소를 더한 것, 그리고 단역에 가까운 장 바티스트의 비중을 높인 것도 영화만의 재미를 높였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케이크에 대한 고증이 예상보다 부실했던 데 있다. 가령 '까탈녀' 박준면이 주문하는 크로캉부슈는 한국에서 만드는 제과점 자체가 없었다. 배경이 호텔 베이커리라던가, 아니면 성북동 같은 부촌, 혹은 한남동쯤 어딘가에 숨어있는 고오~~~급 빵집이라면 얘기가 다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위 속의 내용물로 케이크를 유추하는 대목에선 원작 대사를 그대로 옮겨와 버리니 좀 성의없단 생각이 들었다. "루바브를 사용한 케이크나 타르트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란 전직 형사의 증언은 일본에서는 팩트지만 적어도 10여년전 한국에서는 전~혀 근거없는 얘기다. 그때 서울에서 루바브 타르트를 팔고 있는 가게는 이태원 타르틴느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좀 딴소리지만 원작 만화에서 "루바브는 보통 그것 하나만 사용한다"는 대사도 오류가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 루바브+딸기 조합은 오래 전부터 꽤 흔했고, 일본의 제과기술이 서양의 것을 상당부분 참조한 걸 감안하면...)


사실 나처럼 음식덕후거나, 음식 에세이를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오류들은 사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 한편 보는데 머 그딴것까지 따지냐'할거고, 역덕들도 종종 비슷한 공격을 받는걸 보면...하지만 형태가 제대로 남지 않는 음식의 특성상, 이런 영상물들은 '기록'이 된다. 또 사소하다면 사소한 디테일들을 그저 소품으로 삼지 않고, 영화의 당당한 조연으로 끌어올린다면 또 다른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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