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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pr 09. 2021

퓨전사극을 둘러싼 딜레마


'조선구마사'의 역사왜곡 논란으로 인한 후유증이 쉽게 가시질 않고 있다. 

하필 또 시기가 중국의 동북공정썰, 차이나머니 PPL 등으로 한창 예민할 때이다보니...

이 와중에 "사실 철저하게 기록에만 충실한 사극이 언제는 있었냐?"는 반론도 나온다. 

수십년 전 정통사극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던 조선왕조 500년조차도 그 시절의 왜곡된 

역사관이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야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면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과도한 상상력과 고증오류가 남발하는 사극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래전 의학기자로 일하던 시절,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제중원이란 드라마에서 

1950년대에나 보편화된 CPR법이 나오는 걸 보고 의학자문을 맡았다던 세브란스 교수에게

문의한 적이 있다. 교수 왈, "없었던건 맞는데 극적 재미를 위해 들어갔습니다"라고..

(그럼 애초에 의학자문을 왜 따로 두는거냐...--;;;;)


하지만 "역사왜곡 없이" 고증에 완전히 충실하려다보면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 가령 복식만 하더라도 염료가 귀했던 시대 상황을 감안해

흰옷 일색으로 채운다면 시각적인 즐거움이 줄어든다.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음식 역시

그 시절의 식재료나 음식 자체의 비주얼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해 비교적 현대인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주로 등장했다. (하지만 만한전석이나 유황오리는 다소 오바였다 생각..)


가령 요즘 재방송을 하고 있는 '해를 품은 달'만 해도 그렇다. 

원작자인 정은궐 작가는 시대 고증에 꼼꼼하기로 유명한 작가다. 성균관 스캔들만 해도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상을 마치 눈 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해를 품은 달 역시 가상의 왕이라는 설정과 액받이 무녀라는 허구적 요소가 더해졌지만 

왕실의 관혼상제와 생활사 등등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해 역사덕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데 작가의 이런 노력들이 드라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점이 조금은 아쉽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원작의 이훤과 허연우는 간택이 이뤄지기까지 단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둘은 연우의 오빠 허염이 전해주는 편지만으로 마음을 나눈다.

당연히 원작에는 연우의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을 넣을 필요가 없었고, 성장하며 외모가

변했다지만 서로 못 알아보는 부자연스러운 상황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서신만 오가는 장면을 주구장창 보여줬더라면 이 드라마는 사실상 방송 관계자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시청률을 포기한 작품이 됐을 것이다. 


결국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사극에는 어느 정도의 연출과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조선구마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런 점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루함을 어느정도 감안하고 '다큐'에 가까운 사극을 만들지, 퓨전요소를 넣어 재미를

살릴지는 시청자의 니즈와 제작자들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다만 그 '선'을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하는 것인지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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