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귀한 물고기
게이커플의 알콩달콩 생활툰(!)인 ‘어제 뭐 먹었어?’에는 복날을 맞아 짠돌이 변호사 시로가 애인인 켄지를 위해 장어덮밥을 만들고 후식으로 복숭아를 사다주는 장면이 나온다.
순간 나는 ‘장어랑 복숭아는 상극이라서 함께 먹으면 ㅍㅍㅅㅅ 를 한다는 속설이 생각나 살짝 놀랐다. 저거 먹고 탈 안났을라나....근데 만화 속 장어는 싼 중국산이라고 하니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건강 상식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한 일본인 친구는 내가 더운물로 약 먹으면 안 좋다고 하니 그런 얘기 처음 듣는 거라고 함.)
일본에서 복날 하면 장어인데, 그 이유는 장어가 스테미너 식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발렌타인데이처럼 마케팅 전략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때는 1800년대 후반 에도(도쿄). 한여름에 장사가 안돼 고민하던 장어상들에게 발명가로 유명한 히라가 겐나이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준다.
일본 민간전승에 따르면 12간지 중 ‘소’에 해당하는 축(丑)일에 ‘우’로 시작하는 음식을 먹으면 여름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장어 요리집 앞에 ‘오늘은 축일’이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라고 권했다. (일본어로 장어는 ‘우나기’) 결과는 대박.
장어구이 하면 관서 지역에서는 한 번 쪄내고 굽기 때문에 질감이 부드러우며, 관동 지역에서는 그대로 구워 바삭한 껍질 맛을 살린다. 장어 뼈를 우린 달콤한 양념을 발라 구워도 맛있지만 진짜 장어 마니아들은 소금구이인 시라야키를 많이 찾는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에서는 시라야키를 먹으며 “양념을 안했는데도 뱀장어의 기름 맛이 달다”는 묘사가 나온다. 그밖에 장어는 돈부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할 수 있으며 생강과 산초가루를 곁들이는 게 정석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장어 하면 뱀장어에 바다장어에 꼼장어에... 종류가 많아 헷갈린다. 가장 흔히 떠올리고(또 비싸고) 사람들이 많이 먹는 뱀장어는 바로 민물장어를 말한다. 일본어로 아나고, 붕장어는 바다장어다. 값은 뱀장어가 더 비싸지만 입맛에 따라서는 붕장어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 꼼장어의 정확한 명칭은 먹장어로, 껍질이 질기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잘 먹지 않고 한국에서는 양념구이가 인기이다. 일본어로 ‘하모’라고 하는 갯장어는 잔가시가 많아 세꼬시로 많이 먹는다.
의외로 서양에서도 장어는 꽤 인기 종목이다. 프랑스 우화 ‘여우 이야기’에서 주인공 르나르(숫여우라는 뜻)‘는 생선팔이 짐마차에 숨어 생선을 실컷 훔쳐 먹는다. 배가 차고 나서야 그는 집에 있는 처자식 생각이 나서 생선 두 마리를 가져가는데 이게 바로 뱀장어이다.
프랑스에서는 장어를 와인이나 소금으로 양념해 샌드위치로 먹는다. 여러 가지 향미 야채를 넣고 푹 고은 ‘마틀로트’는 피카소가 마지막 연인 자끌린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는 크림이 든 스튜로, 네덜란드에서는 훈제 장어 요리가 유명하다.
스페인에서는 아직 어린 장어 치어에 마늘과 칠리를 넣어 볶은 요리가 있는데 문호 헤밍웨이가 아주 좋아해서 자주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 중 좀 ‘깨는’ 메뉴 하나가 축구선수 데이비드 배컴의 보양식으로 소문난 영국의 장어 젤리 요리가 있다. (역시 영국...) 장어를 별다른 양념 없이 그냥 푹 삶은 다음 식어서 굳어진 젤리 형태 그대로 먹는 것이다. 민물생선인 장어를 이렇게 먹으니 흙내 때문에 맛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배컴은 그냥 그 집 단골인데 장어젤리 대신 칩스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최근 G 편의점에서 붕장어를 올린 도시락을 약 4000원대의 가격에 팔고 있기에 먹어본 적이 있다. 맛은 가격을 생각하면 낫 배드. 뉴스에선 민물장어가 점점 귀한 음식이 되고 있다는데, 맛있고 영양 많은 장어를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즐겨 먹으려면 멸종 위기의 어족을 살릴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