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TV 돋보기
TV를 켜자마자 맛있는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채널을 돌려봐도 온통 요리 프로그램과 먹방이 대세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지나치면 질리는 법. 쿡방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왜 사람들이 요리에 열광하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보도록 하자.
1. 정작 빠진 '먹거리'의 문제
쿡방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재미에만 치중해 올바른 식생활이나 먹거리 문제 등의 주제는 가볍게 넘겨 버린다는 것이다. 요리사들은 화려한 볼거리만을 제공하고, 구하기도 값비싼 식재료로 시청자들의 눈요기를 해준다. 물론 모든 쿡방이 진지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요즘의 쿡방이 따라 하기 쉬운 레시피를 위주로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하는 요리는 직접 시청자들의 식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영양 구성이나 식재료 위생 문제, 더 나아가 식량자원 같은 문제들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령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초반부 사유리와 강남의 쓰레기통 같은 냉장고를 보여주면서 올바른 식재료 보관법 같은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스타들의 냉장고는 화려해지고, 웬만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집에 두고 있지 않을 진기한 재료들로 채워져 일각에서는 조작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경우 초반기에는 쉽고 재미있는 요리를 주로 강조하다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면서 자신의 쿡방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교 급식 개선운동인 ‘제이미의 스쿨푸드’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먹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요리를 만든다. 냉동피자와 감자튀김 같은 정크푸드만을 주로 먹던 아이들에게 쌀과 닭고기, 샐러드 같은 건강식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에 피켓 시위까지 벌이며 제이미의 음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요리 교실을 통해 건강한 레시피에 익숙해지도록 하는가 하면 인스턴트 식품만 먹는 가정을 방문해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인스턴트 음식이 어린이들의 성향을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방송되기도 했다. 그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유럽 제일가는 영국의 비만율과 대사증후군을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식 역시 서구 음식에 비해 웰빙식이라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일단은 지나칠 정도로 맵고 짠 맛이 소화기 관련 질환의 원인으로 꼽힌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음식은 크게 맵지 않았으나 요즘은 불닭에 낙지볶음, 매운갈비찜처럼 극단적으로 매운 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식당들은 재료 맛을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매운 양념으로 손님을 끌려고 한다.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닌 ‘통각’이다 보니 한번 매운맛에 길들여지면 점점 더 매운 것을 찾게 된다. 아울러 밥에 반드시 찌개나 국을 곁들이는 것과도한 염분 섭취로 이어진다는 점은 이미 많은 의사들이 지적한 바 있다.
그나마 먹거리 문제를 조금이라도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은 ‘삼시세끼’ 정도다. 특히 지난해 방송된 삼시세끼 어촌편은 유해진을 통해 고기잡이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또 ‘차줌마’ 차승원을 통해서는 부족한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아 주부들의 수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삼시세끼’는 결핍을 통해 음식의 소중함을 말해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물론 TV가 시청자를 계몽하던 시절은 지났다. 그러나 지금의 쿡방들이 단순한 붐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시청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재미 이외의 것들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잘 먹고 잘 사는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쿡방 붐을 전문가들은 ‘B급 구르메’라고 부른다. 이는 일본이 거품경제 이후 불황을 겪으면서 생겨난 용어로, 누구나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뜻한다. 경기가 어렵다 보면 아무래도 외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절약이 된다. 독신 가구가 늘면서 혼자 밥을 해먹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B급 구르메가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비유하자면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주는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을 B급 구르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요리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여성 요리사가 나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정갈한 밥상을 차려냈다면, 요즘의 쿡방은 남자 요리사나 연예인들이 간편한 레시피를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다만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굳이 좋은 식재료를 요구하지 않는 레시피들은 값싸고 간편한 가공, 혹은 반조리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쿡방에 등장하는 각종 양념과 가공식품들은 노골적인 PPL을 통해 시청자들을 공략한다.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경제가 어려운 요즘 시절, 가공식품 소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전통 음식문화가 거의 파괴되다시피 한 영국의 경우를 보면 가공식품이 그 위세를 확장하는 것은 다소 우려할 만한 점이다.
사람들은 10세경에 기억한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다는 속설이 있다. 어릴 때 들인 입맛이 평생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쿡방들 중 누군가는 제이미 올리버처럼 ‘악역’을 맡아 올바른 식습관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