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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ug 17. 2015

'쿡방 춘추전국시대' writer's cut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사진은 '냉장고를 부탁해' 타이틀 화면을 가져온 것입니다.


<쿡방, 달아도 너~무 달아....단맛의 사회학> 


요즘 쿡방의 선두주자는 말할 필요도 없이 '슈가보이' 백종원씨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는 거의 모든 요리에 설탕을 듬뿍 ‘때려 넣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대중을 지나치게 자극적인 입맛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비만 등 과도한 설탕 섭취가 불러오는 악영향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다만 여기서 유념해야 할 부분은 그는 정식 요리사가 아니라 외식사업가라는 사실이다. 밖에서 파는 음식은 집에서 먹는 밥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달고 짠 맛이 강하다. 손님이 그 식당을 다시 찾게 하려면 맛을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기억에 남는 맛을 낼 때 가장 자주, 쉽게 쓰이는 재료가 바로 MSG와 설탕이다. 백종원씨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중이 이런 맛을 원한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탄할 대상은 백종원씨도, 설탕도 아니다. 사람들의 입맛을 설탕에 길들여지게 만든 ‘그 무언가’이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수급표를 인용, 90~91년의 설탕 소비량이 84~86년에 비해 5배나 늘어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사람들이 단 것을 많이 찾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그는 언급했다. 


한편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5년째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주부 미유키씨(34)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각종 가공식품들 중에서 설탕이 안 들어간 것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에서는 단맛이 전혀 없는 토마토 주스나 커피, 홍차 등을 흔히 팔고 있는데 한국에 오니 플레인 요구르트에도 과당이 들어 있어 단맛이 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거의 모든 식품이 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일본에 살 때보다 설탕을 훨씬 많이 섭취하고 있다는 게 미유키씨의 이야기다. 


식재료뿐 만이 아니다. 한국 요리에는 조리 과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설탕이 들어간다. 식당 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감칠맛을 내기 위해 설탕과 물엿 등을 빈번하게 사용하며 고기 요리는 대부분 설탕이 빠지지 않는다. 쿡방들을 보면 설탕 대용으로 쓰이는 양념도 다양하다. 과일을 갈아 단맛을 내는가 하면 매실청, 유자청 같은 재료를 넣기도 한다. 초장이나 불고기 양념에는 사이다가 단맛을 더한다. 


문제는 설탕 이외의 재료들도 지나치게 섭취하게 되면 몸에 미치는 부작용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꿀도 주성분은 설탕과 유사한 자당이다. 매실청과 유자청에 들어가는 설탕 양은 과일 양과 맞먹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쿡방에서는 이들 재료가 설탕보다 몸에 좋은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뒤에는 자사 제품을 홍보하려는 거대 식품회사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단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더욱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요리사, 과연 화려하기만 한 직업일까?>


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 ‘요섹남’이 대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최근 방송에서 잘 생긴 남자 연예인이 요리 솜씨를 뽐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수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에서 신동엽의 입담과 함께 여성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메뉴들을 차려 놓는다. KBS ‘해피투게더’에서는 매주 출연하는 게스트들이 색다른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섹남의 화려한 경합을 볼 수 있는 쿡방 프로그램을 꼽자면 ‘냉장고를 부탁해’를 들 수 있겠다. 이 방송에 출연하는 셰프들의 면면은 말 그대로 쟁쟁하다. 190cm의 장신에 ‘허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최현석 셰프를 비롯해 벨기에 유학파인 박준우 기자, 이태원 핫 플레이스를 지배한다는 홍석천 셰프와 웹툰작가 김풍까지 가세해 각자의 멋진 ‘요리쇼’를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이 요섹남 군단에 합류했던 맹기용 셰프가 네티즌들의 이어지는 비난 끝에 하차하면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적지 않은 구설수에 시달렸다. 맹기용 셰프는 이른바 ‘스펙’만 보면 요섹남의 조건을 충분히 가진 인물이다. 잘생긴 외모에 교수 부모를 둔 엄친아에다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인 그는 정작 실전에 투입되자 예상외의 서툰 실력으로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꽁치 비린내를 잡지 못한 ‘맹모닝’은 인터넷 상에서 맹기용의 자질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에도 제작진이 맹기용을 감싸려 했다는 의혹을 낳은 디저트 ‘이롤슈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날 함께 대결한 김풍 작가의 요리가 훨씬 평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가 세 번째로 도전한 오징어 어육 소시지 역시 레시피 표절 논란에 휘말리고 만다. 결국 맹기용은 스펙만을 내세운 자격미달 출연자로 몰리면서 스스로 하차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맹기용이나 ‘냉장고’ 제작진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요리사를 연예인화하는 요즘 쿡방의 트렌드에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영국에 있다. ‘나이젤라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의 여성 요리사 나이젤라 로슨은 맹기용과 비슷하게 우월한 스펙을 갖고 있는 ‘엄친딸’ 이미지로 통한다. 그녀는 보수당 실세 각료인 아버지와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학벌, 이국적인 미모로 단숨에 스타 셰프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나이젤라의 요리 프로그램을 본 많은 사람들은 ‘진정성이 결여된 요리 쇼’라는 혹평을 내리고 있다. 그녀의 방송은 시청자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대신 패션 화보 같은 보여주기에 치중했다는 것이 비난받는 지점이다. 나이젤라는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쿠킹 쇼를 진행한다. 카메라는 레시피보다 그녀의 몸매와 맛있게 먹는 입술에 더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한때 ‘영국의 마샤 스튜어트’로 불리던 나이젤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비호감 이미지로 퇴색한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강모씨(27세)는 요즘의 화려한 쿡방에 대해 씁쓸한 시선을 보낸다. 그는 “실제로 호텔 주방을 찾아보면 말 그대로 전쟁터”라며 “요리사는 우아함과는 사실상 거리가 먼 직업이다”라고 지적했다. 


강씨는 요리사들의 세계가 마치 군대 문화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신참으로 들어가면 고된 설거지부터 시작해 선배들의 호통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제대로 자신의 포지션을 가지려면 오랜 세월과 노력, 훈장처럼 남은 화상 자국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씨는 요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쿡방에서 본 화려한 모습만 보고 요리사의 길을 결심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리사의 연예인화는 자칫 요리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 TV에 자주 출연하는 의사가 반드시 명의라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TV에서 미모와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셰프가 반드시 훌륭한 셰프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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