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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l 04. 2022

욕망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어디까지인가

고전소설 『금병매』 속 스태미나식

중국요리 정찬 이미지

해외여행이 막 자율화된 시절, 중장년층 남성들의 이른바 ‘보신 관광’이 세간의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뱀이나 전갈 같은 야생동물을 먹다가 현지 당국에 적발된 일이다. 보양식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이들의 행태는 비웃음거리가 됐고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 났다면 진작에 멸종됐을 것”이라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른바 ‘정력제’의 역사는 옆 나라 중국이 훨씬 길고 종류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혹사시킨 일이 그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로 꼽히는 『금병매』를 보면 당시 한의학에서 알려진 다양한 춘약의 집대성된 모습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중국 명나라 시대에 쓰여진 『금병매』의 저자는 소소생笑笑生이라고 알려져 있다. 후세 사람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실제 저자를 추적해 왔으나 지금까지 20여 명이 거론될 뿐 여전히 그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금병매』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수호전』의 스핀오프격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무송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송의 형 무대는 못생긴 외모의 떡장수로, 대갓집 여종이었던 미모의 여인 반금련을 아내로 두고 있다. 상전의 눈에 들었던 반금련은 그 부인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들 부부 사이에는 애정이 없었고, 반금련이 칭허현 현청의 근처에서 약재상을 경영하는 서문경과 불륜 행각을 벌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복건성의 자라탕 요리


색욕이 왕성한 서문경은 순식간에 반금련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결국 그녀는 남편 무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의 첩으로 들어간다. 서문경의 집에는 본부인 오월랑과 기녀 출신의 이교아, 하녀 출신의 손설아 등의 여인이 있었고 반금련은 다섯 번째 아내가 되었다. 또 다른 첩인 돈 많은 과부 맹옥루는 서문경이 약재상에서 비단 장수로 영역을 넓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된다. 그도 모자라 서문경은 친우였던 화자허의 아내인 이병아도 여섯 번째 부인으로 삼는다.

서문경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 모함, 권력을 이용한 압력 행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소설의 제목인 ‘금병매’ 역시 그의 첩인 반금련, 이병아, 춘매에게서 딴 것으로 ‘재력, 술, 색욕’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절제를 모르고 쾌락을 좇던 서문경은 결국 춘약을 과다 복용해 죽음에 이른다. 

성에 대한 과감한 묘사 때문에 『금병매』는 여러 차례 금서로 지정돼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병매』 하면 ‘야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그 이면을 보면 금병매는 북송 시대의 의식주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 욕망을 추종하던 서문경과 반금련이 비극적 최후를 맞고, 선량한 본처 오월랑이 아들을 스님으로 출가시킨다는 결말은 인과응보와 인생무상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 책에는 천여 가지의 음식이 등장하며, 중국음식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처럼 알려졌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산둥 지역은 명·청시대 궁중음식의 근간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구한말 한국에 정착한 화교들 대다수가 산둥지역 출신인 만큼, 금병매 속 레시피들은 한국식 중화요리와도 상당히 친숙하다. 

고급 식재료가 한자리에 모인 불도장


산둥 요리의 특징은 조미료로 맛을 내기보다는 식재료 본래의 맛을 중시한다는 데 있다. 황하 하류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주재료로 한 음식이 유명하며, 부드럽고 담백하면서 약간 짠맛을 내는 요리가 많다. 중국 수도인 베이징의 요리는 산둥 지역 전통요리에 북방 이민족의 음식을 받아들여 다채롭게 발전해 왔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음식 묘사는 서문경이 정력을 키우기 위해 먹는 다양한 메뉴들이다. 개중에는 오늘날에도 스태미나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들도 상당수 있다. 서문경은 허리띠 속에 여자의 성욕을 자극한다는 전성교顫聲嬌라는 가루약을 넣고 다닌다. 그가 항상 먹는다는 미약은 형체는 달걀 같고 빛깔은 아황鵝黃 같다고 묘사돼 있다. 

서문경이 평상시 마시는 술은 초강력 정력제라는 표고버섯으로 담은 마고주와 향기 높은 최음제인 말리茉莉화의 꽃으로 만든 말리화주이다. 말리화는 바로 재스민꽃으로, 오늘날에도 차에 향을 더하는 부재료로 쓰인다. 실제로 중국을 방문하면 식당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가장 흔한 차가 바로 녹차에 재스민을 더한 재스민차이다. 

또 매의梅衣라는 음식도 서문경이 자주 먹었던 메뉴 중 하나다. 콩 껍질처럼 생긴 두 조각 껍질 속에 검은 씨가 들어있는 조협皂莢과 꿀을 섞고 겉에는 박하와 밀감 잎으로 싼 경단 같은 것도 즐겼다고 한다. 주엽나무 열매인 조협은 냄새가 거의 없고 매우 아리며 가루로 만들면 재채기를 일으킨다.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약간 독이 있다. 강한 거담작용을 하며 폐결핵, 폐농양, 만성 기관지염 등에 쓴다. 중풍으로 인한 정신혼몽, 인사불성, 전간 등에도 쓰며 종기, 피부궤양, 변비 등에도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그 밖에도 서문경은 불에 구운 대추를 수정 접시에 담아 먹었고, 용간봉장龍肝鳳臟이라는, 잉어와 닭을 함께 해서 쑨 죽을 즐겼다. 웅장타제熊掌駝蹄라는 곰 발바닥과 낙타 발굽 요리를 들었고, 연소반蓮鮹飯이란 낙지볶음 연밥을 먹었다. 이른바 ‘용봉탕’은 80~90년대까지도 중장년층 남성들이 자주 찾는 메뉴였다. 그 기원은 출정 나가는 항우를 위해 우희가 만들었다는 ‘패왕별희(자라와 닭고기로 만든 탕)’에서 찾을 수 있다. 

곰 발바닥이나 낙타 발굽은 이른바 ‘팔진미’로 불리며 청나라 황실의 만한전석에도 올랐다고 한다. 나머지 여섯 가지 식재료는 원숭이 입술猩脣, 사슴 힘줄鹿筋, 표범 태반豹胎, 잉어 꼬리鯉尾 낙타 혹駱峰, 매미 배蟬腹 등이다. 모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부위라는 이유로 스태미나식으로 여겨졌다. 

양귀비가 즐겨 먹은 여지 열매


이 중 곰 발바닥은 우리나라의 『음식디미방』에도 등장하는데 저자 장계향은 “석회를 넣어 끓인 물에 (곰 발바닥을 잠깐) 담가 털을 뽑아 없앤 후, 깨끗이 씻고 간을 쳐서 하룻밤을 재어 두어라. (이튿날 물이) 매우 솟구치도록 충분히 끓인 후 (아궁이의) 불을 반으로 줄이고 약한 불로 다시 무르도록 고아 쓰라. 곰 발바닥이 다 힘줄로 된 것이니, 다른 고기와 (같이) 하면 무르게 하기가 쉽지 않다. 곰 발바닥을 소발牛足 그을리듯이 불을 많이 때고 그을리면 털이 다 타고 발바닥 가죽이 들뜨게 된다. (들뜬 가죽을) 벗겨 버리고 깨끗이 씻어 무르게 고아 조각으로 잘라서도 쓴다. 발가락 사이를 칼로 긁어 째고 간장 기름을 발라 구우면 더 좋다.”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정력에 집착했다는 연산군도 곰 발바닥을 즐겼다고 한다.  

그밖에 양귀비가 즐겼다는 여지, 음란한 성정을 키운다는 수도壽桃, 성취性臭를 늘린다는 장미떡, 음수陰水를 보충해 준다는 해당화로 빚은 매괴병, 심폐를 부드럽게 한다는 송화병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방어, 잉어, 수박씨, 호두, 마름 등을 비롯해 거위 내장과 발바닥 조림, 병아리 겨드랑 살을 말린 육포를 비롯해서 목서木犀를 넣은 생선 절임도 나온다. 

중국의 국민 간식인 수박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씨앗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크기가 훨씬 크고 납작하며 겉껍질을 까서 알맹이만 먹는데, 씨를 먹기 위한 수박 종류가 따로 있다. 마름이란 ‘물밤’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수생식물로 아삭한 식감을 즐기기 위해 각종 요리에 넣는다. 장미 꽃잎을 넣은 월병은 운남 지역의 특산품이기도 하다. 

다만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많은 음식들의 대부분은 ‘단백질’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힘을 돋우는 데 좋았으나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보양식에 과도하게 집착할 이유는 없다. 오늘날의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영양도, 쾌락도, 어느 정도의 절제가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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