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브 빈치 『그 겨울의 일주일』과 아일랜드 요리
“손님들은 있을 법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스웨덴에서 온 진지한 청년, 프리다라는 이름의 사서, 잉글랜드인 의사 부부, 뭐가 못마땅한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넬이라는 여인, 비행기를 놓쳐서 충동적으로 오게 됐다는 미국인, 그리고 위니와 릴리언이라는 친구 사이 같지 않은 친구” 그리고 이벤트에 당첨돼 아일랜드 서부의 스톤하우스 호텔로 오게 됐지만 그 사실이 못내 불만인 윌 부부. “이 사람들은 다 여기 무엇을 하러 왔는가?
아일랜드의 국민 작가로 블리는 메이브 빈치의 유작 『그 겨울의 일주일』에는 이처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태로 이어진다. 작품의 배경인 스톤하우스는 연중 대부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칠며 쓸쓸한 아일랜드 서부 스토니브리지의 호텔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황량하고 우울한 풍경이겠지만 각자 사연을 안고 온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이 작은 숙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주인공인 치키 스타는 스무 살에 한 미국인 청년과 사랑에 빠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은 허망하게 끝나고, 그녀는 낯선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고향을 찾은 치키. 그런데 이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받게 된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위치한 오래된 대저택 스톤하우스 주인인 미스 퀴니가 이곳을 호텔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다. 치키는 "너는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라는 미스 퀴니의 말에 처음에는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라며 완곡히 거절한다. 하지만 미스 퀴니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라며 그녀를 설득한다.
스토니브리지의 옛 친구들과 지인이 그녀의 사업에 힘을 보탠다. 우선 어린 시절 친구였던 눌라는 미혼모로 혼자 길러온 아들 리거를 치키에게 부탁하고, 그는 스톤하우스의 일꾼이 된다. 이어 런던에서의 회사 생활에 지친 치키의 조카 올라도 고향으로 돌아온다. 예약 시스템 프로그램과 브로슈어를 만들고 SNS 홍보도 하며, 올라는 서서히 지친 마음을 회복해 간다.
호텔 직원들의 사연 소개 후 소설은 한 명씩 숙소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랜 친구 관계라는 위니와 릴리언이 첫 손님이다. 그런데 왠지 두 사람 사이에는 친구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이들에게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연이 숨어 있었다.
인기 배우 코리는 ‘존’이라는 가명으로 화려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스톤하우스를 찾는다. 의사 부부 헨리와 니콜라는 환자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감당하기 어려워 힐링 여행을 온다. 청년 안데르스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로 한 금수저지만 어머니의 부재와 사랑하는 여인과의 갈등으로 고심한다. 그리고 이벤트 1등 상품인 파리 여행과 스톤하우스를 비교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윌 부부, 마음에 울분을 안은 냉정한 은퇴 교장 넬 하우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하는 프리다도 스톤하우스의 손님이다. 이들은 여러 사연들을 안은 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사람들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며 행복에 가까워진다. 결국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는 이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생이란 여정은 각기 다른 색을 띠며 계속될 것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배경인 만큼 행간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호화로운 호텔 메뉴보다는 ‘심야 식당’을 연상시키는 소박한 메뉴가 대부분이다. 초반에 언급되는 포테이토 케이크는 감자를 반죽한 것으로 켈트인들이 핼러윈 때 즐겨 먹는다. 사과를 곁들여 달콤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서구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는, 해초로 만든 ‘아이리시 모스’라는 음식도 나온다.
‘카라긴’이라는 홍조류는 대서양 해안 암석지대에 자라며 단백질과 무기질, 유황과 요오드가 풍부하다. 끓이면 젤리 형태가 되는데 여기에 바닐라, 코코아 가루, 레몬 껍질, 생강 등으로 맛을 내 푸딩으로 만든다.
그밖에 아스파라거스 페이스트리, 셀러리 소금을 친 상추 잎, 정어리 구운 콩 토스트, 홀스레디시 크림 훈제 송어, 갈색 소다브레드, 구운 양고기와 고등어, 피시 앤 토마토 베이크, 각종 수프도 등장한다. 아일랜드 요리는 기본적으로 영국 요리와 레시피가 상당 부분 겹치지만 들어가는 재료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비교되는 아이리시 브렉퍼스트는 베이컨과 계란, 소시지, 살짝 구운 토마토 등이 기본이다. 북아일랜드식 아침식사인 얼스터 프라이는 베이컨, 소시지, 달걀 프라이, 블랙 푸딩, 토마토, 소다 팔, 감자 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메뉴는 북아일랜드의 국민 음식이기도 하다.
해산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영국인들과 달리 아일랜드인들은 해산물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대구 어장은 과거부터 유명했으며 연어도 즐겨 먹는 생선이다. 최근에는 조개, 굴 등의 소비가 늘면서 조리법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아일랜드 요리로는 마늘과 감자를 버터밀크에 삶은 후 양배추, 케일, 양파, 파 등을 올린 콜 캐넌이 있다. 기호에 따라 사워크림을 얹어서 먹기도 한다. 또한 콜 캐넌을 한 번 끓여 낸 다음 반죽해서 구워 내는 '콜 캐넌 케이크'도 있는데, 외관이 우리나라 동그랑땡과 비슷하다. 콜 캐넌은 사실 슬픈 역사가 숨어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영국에 생산물을 모두 수탈당하고 남은 감자와 버터를 빼낸 버터밀크, 그리고 자투리 채소를 삶아 먹는 잡탕 느낌의 메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리시 스튜는 베이컨이나 기타 육류와 양배추를 한꺼번에 끓여 만든다. 겨울철 온 가족이 모여서 몸을 녹이는 데 그만이다. 박스티boxty라는 요리는 일종의 감자 팬케이크로 사워 크림이나 파를 곁들인다. 앞서 언급된 소다브레드는 아일랜드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으로 꼽힌다. 산패유(사워밀크)나 버터밀크와 반응하여 빵을 부풀리는 작용을 하는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 소다)을 넣고 만든다.
초창기에는 뚜껑 덮은 주물 냄비bastible에 넣어 불 위에서 구웠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둥근 모양이며, 한가운데에 깊이 십자 모양으로 파서 ‘축복’을 한다. 아일랜드 요리사들은 이렇게 생긴 네 부분의 바둑판 모양을 각각 칼로 찍는데 이는 빵에 장난을 치는 요정을 내쫓는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빵이 그렇듯 소다브레드도 갓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말린 과일이나 초콜릿 등을 넣어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말린 과일을 넣은 것은 ‘스포티 도그spotty dog’라고 부른다.
주류로는 맥주와 위스키를 많이 마신다. 흑맥주 중에선 기네스 맥주가 유명하며, 아이리시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 버번 위스키와 함께 세계 3대 위스키 양조법으로 손꼽힌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이리시 커피는 더블린공항 로비 라운지에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추운 승객들에게 제공해 주던 칵테일이다. 글라스 테두리에 황설탕을 묻히고 아이리시 위스키 1온스를 붓고, 글라스를 알코올램프에 데워 불이 붙으면 커피를 부어서 생크림을 씌운 후 계핏가루를 약간 뿌려준다. 베이스가 브랜디이면 로열 커피가 되고, 아이리시 위스키 대신 베일리스를 쓰면 베일리스 커피가 된다.
작가 메이브 빈치는 2012년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아일랜드 총리였던 엔다 케니는 “아일랜드의 보물이 떠났다”며 국민을 대표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아일랜드는 물론 영국,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아일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죽음”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생전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나는 운이 좋았고 아직 좋은 친구와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국내 독자들에게 메이브 빈치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