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jin Jeung Dec 09. 2022

유럽에서 아침 든든히 챙겨먹기

2022년 9월 15일, 나는 생애 첫 '탈아입구'에 나섰다. 어릴때부터 꿈꿔왔지만 기회가 없어 미루고 미루던 유럽여행을 늦나이에 떠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유럽의 음식문화를 탐방한다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었다. 출발 전부터 나는 "단행본 하나는 꼭 쓰자"며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9월 14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경유지 싱가포르를 거쳐 15일 밤, 드골공항에 첫 발을 디뎠다. 

버스가 이미 끊겨 택시를 타는 우여곡절을 거치고 나서 숙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다. 일단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시간은 아침 7시. 생각보다 빠른 시차적응에 나름 신기해하며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으로 유럽에서의 첫 먹방을 개시했다. 

시리얼과 크로와상 등 각종 빵에 오렌지 주스와 사과 퓨레, 누텔라 등등..

배도 고팠고, 첫 식사라는 생각에 왠지 들떠 이것저것 집어왔다. 주스는 오렌지와 사과 두 종류였는데 프랑스에서는 이 두 종류의 주스가 가장 흔한 듯, 거의 모든 숙소에서 볼 수 있었다. 사과 퓨레도 프랑스 한정의 조식 메뉴이고(차갑게 먹는 퓨레는 너무 달지 않고 은은한 사과향이 좋다) 버터는 무염과 가염 두 종류가 있다. 무엇보다 대박이었던 건 바로 빵! 모양새야 한국 빵과 다를게 없었지만 버터를 아끼지 않은 듯 촉촉한 크로와상에 사워도우를 사용한 듯 살짝 시큼한 맛이 나는 바게트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프랑스사람들이 괜히 빵에 진심이 아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크로와상을 앞으로도 수십번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걸 당시엔 알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파리 근교에 사는 언니와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언니는 나를 위해 네임드 레스토랑의 점심을 사주고, 편한 숙소를 예약해줬다. (그날 먹은 런치 코스 얘기는 추후에...) 이비스 계열의 숙소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청결하고 서비스가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먹은 조식은 전날 묵었던 공항 근처 숙소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훨씬 정성이 들어간 느낌이라 아침부터 과식을 해버렸다. (조식에 무슨 정성..이냐고 하겠지만 장기여행을 하다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된다.) 

리옹역 근처 두 번째 숙소에서 먹은 조식

 리옹역 부근 숙소의 조식은 말 그대로 '혜자'였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다양한 빵과 치즈... 곡물빵과 크로와상, 바게트 외에 브리오슈와 직접 구운듯한 야채빵(? 사진 중간에 있는 샛노란 빵인데 정식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과 팬케이크도 있었다. 치즈 종류는 기본적으로 까망베르, 브리, 콩테, 염소치즈 등이 준비됐다. 여기에 햄과 직접 삶아먹는 달걀, 간단한 샐러드에 절인 과일 등을 곁들이니 멋모르고 과식을 해버림...음료는 앞서 언급한 오렌지와 사과주스에 커피 혹은 티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생수나 주스의 온도가 미지근했다는 것. 유럽에서는 전반적으로 아주 찬 음료를 즐기지 않는 것 같다. 모텔만 가도 미니 냉장고가 갖춰진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꽤 시설이 잘 갖춰진 숙소도 개인 냉장고를 두는 곳이 드물다. 

오르차타(왼쪽)과 오렌지 주스

커피를 크게 즐기지는 않다 보니 내가 선택하는 음료는 거의 대부분 주스 혹은 탄산음료였다. 유럽에서 반드시 마셔봐야 할 주스는 바로 오렌지다. 금방 짜낸 주스를 숙소는 물론이고 작은 동네 슈퍼에서도 맛볼 수 있다. (오렌지 산지가 아닌 프랑스 등은 제외) 주스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물타지 않은 과즙"이라는 문구를 이 지역 사람들은 아예 넣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탈리아에는 붉은빛을 띠는 블러드 오렌지가 항상 함께 제공됐는데 보통 오렌지보다 신맛이 적고 달콤하며 왠지 더 고급스러운 맛과 향을 지녔다. 시칠리아나 스페인 남부 같은 경우 아예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를 심어 놓았을 정도로 흔한 과일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감나무와 비슷한 위치인 듯. 왼쪽 사진 속 하얀 음료는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라 특별히 선택한, 스페인의 오르차타이다. 기름골(타이거넛)로 만든 뽀얀색의 음료로 두유와 비슷하지만 두유 특유의 콩비린내가 나지 않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막 튀겨낸 츄러스에 곁들이면 별미. 

대부분의 경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른 아침부터 맛집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결국 제일 만만한 방법은 기차역 등에서 간단한 세트메뉴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리 만들어놨던 샌드위치는 맛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살짝 데워 달라고 하면 나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다만 대도시의 중앙역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대기 시간이 꽤 걸리므로 장거리를 이동한다면 미리 식량을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2~3번째 사진 속 가게는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간 곳인데 제이미 올리버가 다녀갔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맛집인지는...각종 빵에 곁들이는 속재료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프로슈토, 잠봉 같은 생햄이 가장 많이 쓰이며 이탈리아에서는 시금치, 토마토, 치즈 등을 채워서 굽는 식사용 빵이 많았다. (이들 재료는 그대로 아란치니에도 들어간다) 스페인은 지역 특성상 버터보다는 올리브유를 선호하는데 담백한 빵에 잘게 다진 토마토, 올리브유, 하몽이 기본이며 오믈렛도 자주 곁들여진다. 토마토가 듬뿍 들어가서인지 다른 지역의 빵보다 왠지 건강한 느낌이다. 참고로 호스텔이나 호텔이 아닌 B&B숙소에 묵으면 보다 가정식에 가까운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식재료를 사다 놓고 알아서 차려 먹도록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살레르노 숙소에서는 주인 할머니가 직접 바나나 케이크를 굽고 커피를 내려 주기도 했다. 

기차 여행을 할 때는 이렇게 음료수와 빵, 과자 등이 갖춰진 도시락 세트?를 구매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일반적으로 '컨티넨탈 블랙퍼스트' 하면 크로와상과 커피 등으로 간단하게 제공된다. 리코타 치즈, 초콜릿 등 토핑이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다만 같은 메뉴가 질린다면 일찍 문을 여는 카페나 타파스 바를 찾아보자. 빵과 커피만으로 부족한 이들을 위해 '영국식 아침식사'를 비롯한 다양한 식사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적지 않다. 스페인에서는 특히 오믈렛이 최고의 아침식사 중 하나이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즉석에서 부쳐주는 따끈한 오믈렛은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위 사진 속 오믈렛은(발렌시아) 그날그날 남는 재료를 활용하므로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날은 하몽과 버섯이 들어 있었다. 센 불에 슥슥 볶아냈을 뿐인데도 신기하게 맛있다. 끝으로, 흰 콩과 소시지, 오믈렛, 돼지고기가 나오는 카탈루냐식 조식도 있다. 맛있고 푸짐하긴 하지만 양이 생각보다 많으니 두사람에 1접시가 적당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