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툴루즈에서의 레스토랑 탐방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코스로 제공되는 요리다. 다만 나는 여행 경비에 신경쓰느라 매끼 3가지 풀코스를 즐기지는 못했고, 보통 단품 하나만 시키거나 디저트를 곁들이는 정도로 타협했다. 전채+메인, 전채+메인+디저트, 전채+디저트 등의 선택지가 있는데 그래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코스 요리는 바로 '오늘의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여행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대다수의 나라에서 이런 방식의 코스 요리를 운영한다. 오늘의 메뉴를 선택하면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강점도 있으며, 이탈리아의 식당들은 아예 그날 사용할 식재료들을 전시해 놓기도 한다.
파리에서 언니의 안내로 찾은 식당은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 자리잡은 bouillon camille chartier였다. 이 레스토랑은 한때 소르본 대학의 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으며, 영미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로도 이름이 높다. 가게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실내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채로 나온 차가운 완두콩 수프. 차조기 잎과 비슷한 향의 붉은색 가니쉬가 있는데 정확히 어떤 허브인지는 모르겠다..
메인인 오리 콩피. 콩피란 저온의 기름에 익힌 고기를 가리키며 오리 자체에서 나온 기름을 사용한다. 기름으로 익혔는데도 오히려 식감은 기름기가 안느껴지고 바삭하다. 언니는 이 요리를 추천했는데 맛은 있지만 왠지 익숙한 맛이어서 아래 생선요리와 바꿔 먹었다. 곁들여 나온 흰 콩의 양이 상당히 많다. (캠벨 통조림의 그 콩과 같은 종류. 이후 나는 이 콩을 매우 자주 보게 되었다.)
가장 맛있었던 메뉴는 레드와인 소스를 곁들인 생선이었다. gorge noire란 이름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나오질 않아서 영어 메뉴판을 보고 다시 검색했더니 blackthroat seaperch, 일본어로는 '노도구로'라고 불리는 눈볼대(금태)였다. 상당히 비싼 고급 생선인데 딱 알맞은 정도로 소테해 맛과 식감을 살렸고, 아래 깔린 시금치 버터도 감칠맛이 배어 순삭했다.
마무리는 크림 브륄레. 따뜻한 설탕옷 밑에 차가운 크림의 농후함이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디저트만 더 먹고 싶은걸 참음...ㅎㅎ
이튿날 찾아간 생 제르맹 거리의 레스토랑. 관광객들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많다. 사진과 영어 설명도 붙어 있어 고르는 데 어려움은 없음. 치즈 퐁듀처럼, 일반적으로 코스 요리에는 잘 나오지 않는 메뉴들도 있다. 유럽에서 본 거의 모든 식당에 버거 메뉴가 있어 역시 관광객을 노린건가..했는데 알고보니 10여년 전부터 수제버거가 유행한 영향이라고 한다. 첫 번째 메뉴는 전채요리의 대표주자격인 에스카르고. 달팽이 자체에는 별 맛이 없다고 하지만 허브 버터의 짭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식욕을 돋운다. 에스카르고 양념으로는 파슬리 버터 외에도 칼바도스를 사용한 것, 크림소스를 곁들인 것 등 종류가 다양하다.
프랑스식 육회인 타르타르 스테이크. 다만 이 메뉴는 다소 실망이었다. 고기를 너무 곱게 다져놓으니 씹는 맛이 없고 그냥 고기 스프레드를 먹는 느낌이다. 다른 곳에서 먹어 볼까도 생각했는데 혹시나 또 실패할지 몰라서 더이상 이 메뉴를 시키는 일은 없었다. 타르타르 재료로는 연어와 참치 등도 있다. 잘게 다진 생선회를 먹는 셈인데, 생선을 겉만 익힌 타다키의 경우 서양인들에게도 거부감이 적은 것인지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스테이크는 별로였지만 곁들여 나오는 프렌치 프라이는 패스트푸드점 것보다 훨씬 맛있다.
디저트는 생크림을 곁들인 타르트 타탱. 새콤한 사과에 향긋한 버터의 풍미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행복해지게 만드는 맛이다. 따뜻할 때 먹는 게 포인트. 이 요리는 달달한 국산 사과보다는 신맛이 강한 홍옥 등이 더 어울린다.
프랑스에서 맛본 세번째 코스요리는 툴루즈에서였다. 전채로 나온 메뉴는 염소치즈와 트러플을 올린 샐러드. 잘게 다져 마리네이드한 토마토가 치즈의 느끼함을 중화시켜 준다. 프랑스 남부 지역이라서 그런지 버터보다는 올리브유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편이다.
메인으로 나온 송아지 간 스테이크. 유럽에서는 내장 요리를 할 때 어린 동물을 사용하는데 이는 내장 특유의 냄새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송아지 때 도축하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다 자란 소 내장이 쓰이는 것. 간요리답게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만 마늘과 허브 양념이 냄새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성장한 소의 간보다 훨씬 부드러운 것도 장점이다.
디저트는 바바오럼. 옆에 곁들인 아이스크림에도 럼레이즌이 들어있고, 캬라멜 소스를 뿌렸다. 럼주에 흠뻑 젖은 아주 달달하고 부드러운 빵이 나오는데 때에 따라선 술냄새가 좀 독할 때도 있다. 디저트를 먹고 얼근하니 취하는 것은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참고로, 코스 요리에 와인을 곁들일 때는 좋아하는 와인을 리스트에서 고르거나, 직접 추천해주는 와인을 선택하면 된다. 하우스와인의 경우 한 잔씩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물도 보통 돈을 받으므로 '수돗물'을 달라고 하거나 그냥 와인만 마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유럽에서 지내는 내내, 물값이 비싸다 보니 왠지 음료수를 시켜야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식당에 따라 한 가지만 나오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두세 종류 중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식당을 찾을 때는 가능하면 브레이크 타임이 임박하기 전에 시간여유를 잡고 가는 것이 좋다. 인기 있는 메뉴일수록 재료가 빨리 소진되기 때문.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