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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an 19. 2023

패션의 도시, 호화로운 밀라노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부자들의 요리

밀라노 두오모 앞 광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내가 여행한 첫 도시는 '패션의 수도'라고 불리는 밀라노였다. 아쉽게도 전 세계 스타들을 잔뜩 볼 수 있는 패션위크는 내가 체류한 후 바로 다음주 개시였다는...ㅠㅠ  하지만 두오모 대성당은 명성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했다. 성당 옆에 자리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광장은 온갖 명품 브랜드들이 모인 장소로 패션 마니아라면 반드시 한번 둘러볼 것을 권한다. 패션위크 전이었지만 오며가며 화보 촬영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먼저 물을 권하며 "Still or sparkling?"이라고 묻는다. 스틸은 우리가 흔히 먹는 정수를 가리키며 스파클링은 페리에, 산펠리그리노 같은 탄산수를 뜻한다. 물 역시 돈을 받으니 아예 와인이나 다른 음료만 시켜도 되는데, 다양한 탄산수의 매력을 즐기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식전빵 역시 나중에 계산서를 보면 알겠지만 유료고, 식당에 따라 생략 가능한 곳도 있는듯...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랑스나 스페인에 비해 이탈리아 식전빵은 유독 별 맛이 없었다. 밍밍, 담백은 메인 요리와 곁들여 먹는 유럽식 빵의 공통점이지만 유독 이탈리아 빵만은 다른곳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물론 주관적 관점이긴 하다.) 빵과 함께 자주 딸려 나오는 막대기 형태의 과자는 '그리시니'라는 것으로 나폴레옹이 즐겨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먹다보면 왠지 건빵과 비슷하다...) 


밀라노에서 먹은 첫 끼는 '리조토 멜라네즈', 즉 밀라노식 리조또였다. 샛노란 색깔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사프란을 이용해 내며 치즈와 버터의 풍미가 꽤 진하다. 참고로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이 메뉴가 등장하는데, 송중기가 밀라노 우피치(우피치는 피렌체에 있는 미술관)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사기치는 요리사 가게를 찾았다 '먹뱉'했던 바로 그 리조또다. 사프란을 요리에 쓰는 건 밀라노가 예로부터 부유한 지역이다 보니 일종의 '돈지랄' 목적이었다고 한다. 다만 야채나 건더기류가 전혀 씹히지 않다 보니 한국인에게는 좀 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먹다보면 은근 양이 많다...)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는 명품도 많지만 고급진 레스토랑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비싼 식당만 있는건 아니고 서서 먹는 핫도그나 간단한 패스트푸드, 아이스크림 혹은 이태리인들이 질색한다는 '아아'를 파는 곳도 있다. 대부분 메뉴와 가격이 적혀 있으니 잘 보고 들어가면 된다. 이날은 하우스 로제와인 한잔을 곁들여 조개, 새우를 곁들이고 보타르가를 뿌린 깔라마라타를 먹었다. 깔라마라타는 '오징어 링'이라는 의미로 말 그대로 오징어 몸통을 둥글게 잘라낸 듯한 모양의 생면이다. 보타르가는 사르디니아 원산의 이탈리아식 어란인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드는 과정이 꽤나 까다로워 가격이 비싸다. 그럼에도 하나 사오고 싶었으나 세관에 걸릴지 모름+타이밍 놓침을 이유로 챙기질 못했다...아꿉...ㅠㅠ 

패션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인만큼 밀라노에는 무려 1865년...에 설립된 리나센테 백화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막 집권한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시작하고, 일본에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해이다. 밀라노 외에도 로마, 피렌체 등 대도시에 체인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백화점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급 식료품이 가득한 식품관이 볼거리다. (한국과는 반대로, 식품매장이 가장 윗층) 밀라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키르 임페리얼(샴페인+프랑보와즈 리큐어)을 홀짝이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기본 안주는 트러플 감자칩과 아몬드였는데 이렇게 술한잔+간단안주를 제공하는 바를 이탈리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가게에 따라 기본안주는 올리브, 견과류 등으로 조금씩 다르다. 


아래 사진 속 빵은 브리오슈에 술이 들어간 시럽을 흠뻑 적신 바바인데 원조는 프랑스로 알려져 있지만 왠지 이탈리아에서 더 자주 본 것 같다. 럼이 들어간 바바오럼 외에 리몬첼로, 혹은 다른 리큐어가 들어가거나 알코올 성분이 없는 것도 있다.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을 보면 생크림에 곁들여 먹는 장면이 나옴) 한개 포장해서 나오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시럽이 줄줄 새는 낭패를 겪었다. 이 때문인지 왼쪽 사진처럼 아예 시럽에 담근 병조림 제품도 나온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물가가 비싼 곳이지만, 잘만 찾으면 저렴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내가 묵었던 첸트랄로 역 부근의 한 식당은 마치 푸드코트처럼, 만들어진 음식을 하나씩 골라 계산하는 곳인데 퀄리티가 일반 레스토랑에 비해 좋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든든한 한 끼가 필요하다면 강추. (이런 비슷한 식당들이 어느 도시에나 한둘씩은 있었다..) 맨 위 사진은 차가운 로스트 비프에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 호박 등을 익힌 보리쌀과 함께 먹는 샐러드다. 든든한 꽁보리밥을 먹는 기분에 각종 야채가 곁들여져 왠지 건강해지는 듯한 메뉴다. 채소 하나하나가 맛있고 올리브유의 풍미가 재료들과 매우 잘 어울린다. 여기에 작은 와인 한병을 곁들여서 13.30유로로 저렴하다.


또 다른 저렴이 메뉴로는 밀라노식 커틀릿이 있다. 연한 송아지고기를 이용해 버터에 부치듯 익히는 방식이 오스트리아의 비너 슈니첼과 비슷하다. (원조가 이쪽이라는 설이 유력...) 감자를 곁들여 먹는 것도 공통점. 송아지를 거의 도축하지 않는 한국에선 일단 희소성이 있어서 시켜봤는데 고기가 연하고 잡내가 없다는 점을 빼면 우리가 아는 비프까스와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고, 가성비도 좋은 식전주로는 아페롤이 있다. 용담, 키니네, 루바브 등 약초가 주재료라는데 정작 맛은 과일류가 들어간 음료수를 마시는 듯 하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술술 넘어가고 양도 많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주류전문점 등에서 판매한다. 

밀라노 시그니처 메뉴 오소부코

이보다 좀 더 고급진, 밀라노의 시그니처 메뉴를 꼽는다면 송아지 정강이 뼈로 만든 오소부코가 있다. 걸죽하게 끓여낸 토마토 베이스의 스튜인데 뼈 속에 숨어 있는 골수가 풍미를 보다 진하게 한다. 이것 자체만 먹는 경우는 없고 거의 대부분 앞서 설명한 리조또 밀라네제와 함께 나온다. 혹은 쌀밥이나 빵과 더 어울린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밀라노식 요리는 가볍고 산뜻한 맛을 추구하는 여행객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 다만 이 지역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한번쯤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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