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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l 27. 2023

테르미도르의 바닷가재

랍스터 요리와 프랑스 혁명

1794년 7월 27일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 공포정치를 주도하던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된 날이다.

테르미도르(Thermidor)란 혁명 때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 중 11번째 달을 의미한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사실상 프랑스 혁명은 종료된 셈이다.


그런데 이 테르미도르라는 단어가 들어간 요리도 있다. 바로 랍스터 테르미도르.

아니, 무슨 요리이름이 이렇게 혁명적(?)일 일인가...^^;;;;

유래를 따져보면 랍스터 테르미도르는 역사적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1896년 파리의 포르트 생 마르텡 극장에서는 '테르미도르'라는 제목의 연극이 인기를 끌었다.

빅토리앙 사르두가 쓴 이 작품은 초연 당시 민감한 내용 때문에 공연이 중단됐다 다시 무대에 오른 것.


흥행이 성공하자 극장 인근 레스토랑 '라 메종 메르'의 오너 페야르는 신메뉴에 연극 제목을 붙인다.

이 메뉴를 고안한 사람은 바로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로 있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누벨 퀴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라 메종 메르에서 와인과 선지가 든 오리고기,

페리고르 소스 마카로니, 크림감자 등의 메뉴를 선보이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랍스터 테르미도르는 삶은 바닷가재살을 큐브형이나 도톰하게 슬라이스한다.

머스타드를 넣은 베르시 소스(버터, 브라운 스톡, 레몬주스, 파슬리, 화이트와인 등으로 만듬)

혹은 크림소스로 버무린 후 껍데기에 다시 채운다. 그뤼에르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우면 완성.

머스타드 소스는 반드시 들어가며, 버섯을 첨가하는 등 레시피를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사실 이 요리의 맛은 랍스터 자체보다는 들어간 소스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닷가재살 자체는 특별히 강한 풍미가 없어 버터와 치즈, 각종 향신료로 맛을 끌어올리는 것.


랍스터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 하나미국에서 한때 빈민층이나 죄수가 먹는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잣집 하인들이 일주일에 3번 이상 랍스터를 주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말도 있다.

가난한 이민자들은 테르미도르 같은 복잡한 조리법을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간단히 물에 삶아 먹었으니 육즙이 빠지고 비린내를 잡지 못해 맛이 없었던 것.

아무튼 철도가 개설되고 제대로 된 조리법이 알려지면서 랍스터의 몸값도 올라가게 된다.

 

랍스터가 귀해지면서 양식 시도도 이뤄졌다. 1950년대 대서양 양쪽 연안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랍스터는 성장 속도가 워낙 느린데다 좁은 곳에 갇혀 있으면 동족끼리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양식이 어렵다보니 오늘날까지도 랍스터 하면 고급 음식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랍스터를 고를 때는 무게가 더 나가고 맛이 좋은 암컷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집게발을 묶어 고정시킨 후 삶아야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심슨가족'에서 호머가 작은 랍스터를 키워서 먹으려다가 그만 정이 드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랍스터가 크다고 꼭 맛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테르미도르와 비슷한 요리로는 오마르 아 라메리켄이 있다.  

랍스터를 반으로 가르고 꼬리 부분과 집게발을 버터에 볶는다.  

샬롯, 양파, 마늘, 허브, 토마토, 카이옌 페퍼 등을 볶다가 랍스터 내장과 화이트 와인,

코냑 등을 섞어 아메리켄 소스를 만든다. 랍스터살을 소스에 넣어 데우면 된다.

아메리켄 소스는 피에르 프레스 셰프가 만든 것으로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다

파리로 돌아온 직후에 이 소스를 고안했다고 알려졌다


랍스터는 이제 대형마트에서도 냉동 제품을 찾아볼 수 있을만큼 흔해졌다.

다만 요즘은 대게나 킹크랩에 수요가 쏠리면서 예전만한 대접은 아닌 듯하다.

만약 랍스터를 구했는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모른다면 버터와 마늘, 치즈를 곁들여

구워주면 된다. 파슬리, 올리브유, 레몬즙도 랍스터 양념으로 잘 어울린다.

그밖에 샐러드, 아스픽 젤리, 크로켓, 수플레, 무스 등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결국 혁명사의 테르미도르와 랍스터는 직접 관련이 없는 셈인데.....

랍스터 테르미도르의 호화스러운 조리법은 혁명 이후 과거로의 회귀,

즉 사치스러운 귀족문화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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